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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식습관 변화가 생명을 살린다

기자명 최원형

애꿋은 철새 탓 말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 바꿔야

자연은 계절과 무관하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다만 그 경이로움은 그것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 그 가운데 거창오리의 군무는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몇 만 마리가 일제히 위로 날아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며 펼치는 장관을 보고 있자면 그 감동을 표현할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군무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혹자는 장엄한 군무가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만의 소통이라 한다. 군무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가득 덮을 듯 장엄한 군무가 실은 몸집이 작은 오리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 만들어냈다는 걸 알고 나면 그 생명 하나하나에 또한 경배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라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몇백만 마리의 닭, 오리, 메추리 등이 살처분되고 있다. 마치 철새가 병원균을 가지고 온 듯한 뉘앙스의 보도를 접하며 은근히 철새에게 원인을 돌리려는 저의가 볼썽사납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해마다 반복되고 애꿎은 철새에게 그 탓을 돌리는 걸까?

조류인플루엔자 인한 도살 전
가축 밀집 사육 먼저 살펴야
급성장 육류소비 변화 가지면
모든 생명 존중받을 수 있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서 엄청난 수의 가축들이 살처분 되고 있는 현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 왜 저토록 많은 가축을 살처분 할까? 그건 그렇게 많은 수의 가축들이 밀집되어 사육되고 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예전에 집에서 한두 마리 키우던 가축들은 농사일도 거들고 새끼를 낳아 살림에 보탬이 되다가 어쩌다 있는 경사스런 날에 요긴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러니 고기는 드물게 먹는 호사스런 음식이었다. 오늘날 가장 싸고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는 고기다. 한집건너 커피가게 만큼이나 고깃집이 널려있다. 일정기간 성장할 시간이 필요한 고기들이 대체 어떻게 이토록 많이 공급될 수 있을까? 공장식 축산이 이 의문에 답을 준다. 좁고 빽빽한 축사 혹은 케이지에다 가축들을 밀어 넣고는 마치 공장에서 상품이 나오듯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다. 마트에 가면 마블링이 선명하게 새겨진 고기가 랩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그걸 집어 드는 사람 가운데 과연 몇 명이 그게 얼마 전까지 살아 숨 쉬는 생명이란 걸 느낄까? 이런 생각보다는 붉은 고깃 덩어리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달걀을 먹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화해서 어엿한 한 생명일 수 있는 기회를 내가 앗아간 거니까. 살아있는 동안 좁은 케이지 안에서 알만 낳다가 더 이상 알을 생산할 수 없을 때 ‘폐계’라는 이름이 붙여져 사라졌을 그 닭을 또한 생각해본다.

세계적으로 육류소비가 50년 사이에 100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한 명당 1년에 먹어치우는 고기 양이 자그마치 35kg이다. 흔히 고기는 근으로 양을 어림하는 경우가 많으니 600그램을 한 근이라 치면 거의 60근에 가까운 양이다. 최근 새로운 지질시대로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지질시대는 바로 ‘인류세’인데 이 말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파울 크뤼첸이 2000년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지난 8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연합 국제지질학회에서 이미 인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돌입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인류세라는 근거로 제시된 게 방사능 핵종, 플라스틱, 콘크리트와 함께 ‘닭뼈’였다. 한해에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닭을 600억 마리로 추산하고 있다. 70억 인구가 한 해에 닭을 8마리 반 먹는 셈이다. 여기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제외하면 닭고기 먹을 형편이 되는 이들이 한 해에 먹는 닭고기양은 훨씬 늘어난다. 이렇게 많은 닭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게 바로 공장형 양계와 품종개량 덕분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구제역도 마찬가지다. 감염된 개체가 발견되면 그 일대 반경 몇 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가축은 산 채로 매장이 된다. 해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왜 공장식 축산, 공장형 양계 시스템에는 변화가 없는가. 왜 그게 철새들의 탓인가? 철새들도 점차 줄어드는 서식지 때문에 한곳에 조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확률이 높아질 따름이다. 이 모든 조건을 만든 게 누군가?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얘기가 아니라 육식의 식습관에 변화가 온다면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단 하나의 생명도 예외 없이 존중받아 마땅하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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