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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떠날 줄 모르는 이에게

기자명 성원 스님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 일러스트=강병호

먼데 사는 사람과의 이야기는 계절의 이야기로 항상 시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야 아름다워
숱한 추한 모습에 국민만 아파
계절처럼 갈 길 스스로 안다면
마지막 모습 조금은 나을텐데

언제나 계절 앞에서 나약한 우리 인간은 습관적으로 계절의 안부와 건강의 안부를 물으며 존재의 건강함을 확인해야만 하나봅니다.

날씨가 한참 쌀쌀해 졌습니다.

저야 깡깡 언 얼음이 찡하고 울리듯 기분이 좋지만 추위를 많이 타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겨울이야기로 시작한 편지글이 벌써 겨울로 되돌아 왔나봅니다.

아무튼 연고도 없고 낯설기만 하신 분과 1년을 두고 편지를 나누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아주 잘 알고 지낸 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자아의식이 강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쓰는 글에 나의 모습을 온전히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기를 바라며 노력했습니다.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마치 스스로가 고고한 무엇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고 그러한 자신감 충만한 자아를 어떻게든 표출하고자 글과 말과 행동에 힘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쉬멍쉬멍 세월이 흘러 언젠가 문득 지난시절의 글들을 바라보니 한편의 글이 아니라 단 하나의 문단 어디에도 초라한 젊은 날의 초상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어보였습니다.

정말 낯이 화끈한 지난날의 모습들이 알알이 박혀들어 스스로를 부끄러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토록 자신을 투영하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매일을 아쉬워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긁적여 놓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와서 알 것 같습니다. 그 글들에 표출되어 있는 그 모습이 그 당시 나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아무리 아무리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글을 쓰려고 해도 결국은 부끄러운 자아상이 알알이 박혀 드러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글을 쓰면서 늘 어떡하면 초라하고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있을까 애써보지만 만천하에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늘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자꾸 글 쓰는 일이 힘겨워 집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경지가 펼쳐질까요? 아무리 글을 써도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경지 말입니다.

어릴 때 본 ‘채근담’에 ‘속세를 떠났노라 하는 사람은 진정 속세를 떠나지 못한 사람이다. 진정 속세를 떠난 사람은 속세를 떠났다는 말을 운운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지고지순한 글이구나 라고 생각 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글을 쓰면서 글에 매이지 않는 경지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 내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가르침과 글들이 하도 많아서 거들먹거리면 오히려 사족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되 하지 않는 경지에 들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불교는 여기에 머물지 아니하니 저의 모든 유희적 사유는 경전의 작은 구절 앞에 무참해지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경지를 더듬대고 있다가 또 다른 한 구절을 접하면 숨이 탁 막힌답니다.

예식 때 마다 독송하는 ‘천수경’의 관음보살의 찬탄구 중에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非心)’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하는바없는 그 마음에서 자비심을 일으키신다.’니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겨우 하는 바 없는 마음 일으키는 수행에 몸부림쳐야 하는 우리들에게 언제나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세상을 늘 펼쳐 보이시니 말입니다.

그토록 위대한 대자비심을 하는 바 없이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 듭니다.

길지 않은 글귀 얼마에 자신을 담아보려 했던 지난시절의 마음이나, 자신을 담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지금의 모습이나 매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나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긴 한숨이 나옵니다.
아련한 마음만 전하다 잠깐 하늘을 보니 깨어질 듯 파랗습니다.

실은 오늘은 아침에도 이랬습니다. 일찍 하늘을 보고 누군가에게 오늘 하늘만큼 행복하라고 마음 담아 축원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늘빛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있는 참으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정겹게도 느껴집니다.

삼일 만에 삼성각 기와까지 다 이고는 오늘 바닥 보일러까지 공사하였습니다. 돌아서 큰법당을 바라보니 점심나절부터 겨울에 기운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발버둥치는 마지막 가을이 저 하늘에 아쉬움을 뿌려두고 서운히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서울도 이러 할지 궁금합니다만 차가운 대기의 기운에 깨어질 듯 파아란 하늘 빛! 하지만 이 고운 빛도 새로운 계절에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납니다. 지금 떠나야 할 때를 잃고 허둥대면서 숱한 추한 모습만을 뿌리고 있는 한 사람의 그림자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아는지 하늘이 나서 우리들을 위로하는 듯합니다.

계절처럼, 일과처럼, 처연히 갈 길을 떠날 줄 안다면 우리의 마지막 모습도 아름답지 않을까요? 오늘은 오래전 표연히 사바를 떠나신 사형스님을 추모하였습니다. 늘 아련한 모습을 던지시더니 그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듯이 떠나가신 비구에게 무슨 아쉬움이 있겠습니까마는 마저 보내드리지 못한 마음 남겨진 우리들은 서운함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하오에 우리 불교계가 떠나보내야 하는 대중들의 처절한 마음을 뚜렷이 담을 메시지를 이 사회에 던졌네요. 떠나야 하는 사람의 서운함이야 있겠지만 낙화의 아쉬움은 결실의 충만함으로 보상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을이 지난 자리에 차가운 북풍한설이 닥쳐올지라도 그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봄이 자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금의 주저함이 없이 가을을 던져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행복합니다.

제가 떠나야 더 행복해지는 사람들보다 머물러 더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언젠가 우리들에게도 머물러 힘겨워지는 이웃들이 많아질 때도 다가오겠지요. 가을처럼, 파아란 하늘처럼 왔다가 그림자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텅 비워져 내가 내가 아닌 세상의 자유를 늘 갈망합니다. 계절이 바뀌듯, 세상 바뀌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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