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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환희천 또는 가네샤

성공·행운을 주는 조력자와 수행 훼방꾼의 양면적 존재

▲ 9세기경 인도네시아 자바(Java)에서 조성된 가네샤.

대부분 불경의 첫 구절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 evaṃ mayā śrutam)’로 시작한다. 이는 다 알다시피, 아난(阿難)이 들었던 부처님 과거의 법문 내용이 경전을 읽는 현재에 즉시 현전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반대로 많은 힌두 경전의 시작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즉, ‘고귀한 가네샤에게 경배하나이다(oṃśri ganeṣāya namaḥ)’와 같은 구절이다. 경문에 나타나는 이 첫 구절은 사실 네팔과 같이 불교와 힌두교가 잘 혼합된 곳에서는 불경의 앞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 첫 예경문(禮敬文)에 등장하는 가네샤 신은 불교도나 힌두교도 모두에게 환영받는 신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신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기억력이 가장 뛰어났던 아난이 불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처럼, 힌두의 경문 앞에도 기억력과 학식이 뛰어난 가네샤 신이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가네샤 또는 환희천의 의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불경 앞 아난처럼 힌두경전 앞에
기억력 뛰어난 가네샤 먼저 등장

인도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신
코끼리 머리 모양·부푼 배가 특징

불교 유입돼 동아시아까지 전래
한역 밀교경전 환희천으로 표기
비나야카·비그네샤로 혼용하기도

인도에서는 일의 성공 여부 결정
힌두·불교·자이나교 등 제 종교
수행자보다 신자들이 더욱 찾아

가네샤(Gaṇeṣa)는 현재 인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회사나 상점의 출입구에, 또는 자동차 운전석 위쪽에 인형이나 카드 형태로 달려 있곤 한다. 그 뿐인가. 경전의 삽화에서 어린이 장남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사람들이 끔찍이 사랑하는 크리킷 대회 티셔츠에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신이 바로 가네샤다. 이 신의 특징은 한 눈에 들어온다. 바로 코끼리 머리다. 그리고 마치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가지고 있다.

가네샤 또는 가나파티(Gaṇapati)라 부르는 이 신은 본래 힌두교의 신이었지만 불교에 유입되어 동아시아까지 잘 전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가끔 신중탱화의 한 구석에 이 신이 그려진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 유입된 경로는 대체로 밀교를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역된 밀교경전 속에서 이 신은 환희천(歡喜天) 또는 비나야가(毘那夜迦) 등으로 부른다. 가네샤 또는 가나파티가 가장 일반적인 이 신의 이름이지만 비나야카(Vināyaka) 또는 비그네샤(Vighneśa) 등도 흔히 사용하는 그의 별칭이다. 비나야카는 ‘제거자’를 의미하며 비그네샤는 ‘장애(障碍)의 왕’을 의미한다. 옛 인도사람들은(물론 현대의 대중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행운과 불운을 관장하는 신이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일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신이 바로 가네샤 신이다.

▲ 네팔 파탄(Patan)의 헤람바 가나파티(Heraṃba-gaṇapati). 헤람바 가나파티는 특별히 밀교에서 숭배되는 가네샤의 형상이다. 이 경우 보통 다섯 개의 머리를 갖지만, 여기에선 열 개의 팔과 아래쪽 사자로 확인된다. 17세기경 추정.

따라서 힌두교인뿐 아니라 불교인과 자이나교도들까지 이 신을 모시는 이유는 수행자뿐 아니라 특히 신자들에게 더 강력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크거나 작거나 인간은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실수를 하거나 의도한 대로 성공할 수 있는데 이를 관장하는 신이 바로 가네샤이기 때문이다. 본래 힌두교의 신이었지만, 상업에 많이 종사하는 자이나교도에게 이 신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경(寫經)을 하거나 회계장부나 서류를 새로 작성할 때, 사업이나 학업을 새로 시작할 때, 서류에 잉크가 처음 가 닿을 때, 사고 없이 어떠한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할 때, 이런 모든 일들에 가네샤의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신의 기원이나 코끼리 머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유사 신화들이 설명하고 있다. 이 또한 쉬바 신에게 ‘장애’가 되었던 어떤 존재를 상기시킨다. 신화에 따르면 쉬바는 자신의 부인이었던 파르바티를 홀로 집에 두고 출타해야만 했다. 그 사이 파르바티는 목욕을 하고 싶었는데 그 사이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파르바티는 진흙을 뭉쳐서(또 다른 출처에 의하면 자신의 몸에서 나온 때를 뭉쳐서) 사내 아이를 만들어냈고 집 앞에 세워놓고 낯선 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주문했다. 그 사이 집에 돌아온 쉬바는 자신을 집 앞에서 막고 서 있는 가네샤와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자신을 가로막자 화가 난 쉬바는 결국 가네샤의 머리를 잘라버린다. 뒤에 자신이 만들어낸 아이가 살해된 것을 안 파르바티는 쉬바에게 본래의 머리를 찾아와서 다시 소생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가네샤의 본래 머리를 찾을 수 없자, 쉬바는 코끼리의 머리를 잘라 붙여 소생시킨다.

또 다른 신화는 정반대로, 쉬바가 파르바티 모르게 아이를 만들어 데리고 오자 분노한 파르바티가 아이의 머리를 코끼리로 바꾸어버리는 저주를 내린다. 쉬바는 대신 이 아이를 가나(Gaṇa ‘난쟁이 무리’)들의 우두머리로 옹립하고, 성공과 실패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어떤 의례에서나 가장 먼저 경배되어야할 신으로 만들었다.

신화적 기원은 그렇다하더라도, 인도종교사 속에서 이 신의 기원은 그리 확실하지 않다. 이 신의 특징들이 가끔 후기 베다 문헌에 언급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어금니나 코끼리 형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이 가네샤의 원형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인도에서 문헌적으로나 도상적으로 가네샤의 기원을 확정지을 수 있는 시기는 대략 5세기 정도에 가능할 것이다.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야차(夜叉)의 모습을 그 이전에도 볼 수는 있지만, 코끼리 형상이라고 이것을 가네샤로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러한 코끼리 형상의 신 가네샤는 대승불교 속으로 들어와 동남아시아 전역과 동아시아 불교국가에 유포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신은 사업적 성공을 희망했던 상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신이라 불교의 유포에 큰 역할을 했던 고대 해외 상인들을 통해 여러 지역에 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크로드를 통해 티베트·네팔 등지에 유입된 신앙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바나 발리 지역에 이 가네샤 신앙이 널리 퍼진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가네샤 신앙은 인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이지만, 북방전승의 형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 네팔인과 집 외부를 장식하고 있는 가네샤의 모습. 현대.

아마도 탄트리즘의 영향을 통해 불교에 들어온 환희천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네샤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나타난다. 즉, 가네샤는 장애를 발생시키는 주요한 원인 그 자체이자, 한편으로 그것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 환희천을 조복시키거나 그 신을 잘 구슬려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외부에서 유입된 신을 바라보는 양면적 태도가 불교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네팔이나 티베트 전승의 가네샤 신앙 속에서 이 신은 성공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일반적인 역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에로틱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또는 정반대로 불교의 정신적 수행에 방해를 주는 훼방꾼 정도로 그려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후기 인도에서 기원한 탄트라 전통 속에서 재해석된 가네샤의 모습일 것이다. 어떤 티베트 경전에서는 가네샤가 다른 여신과 오랄 섹스에 참여하는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도 본래 후기 인도밀교에서 시작된 ‘더러운 것을 좋아하는 가나파티(ucchiṣṭagaṇapati)’의 도상적 전통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오염되고 더러운 것, 섹스, 분노 등의 요소는 밀교에서 긍정적으로 재해석된다. 유사한 도상은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코끼리 형상의 두 남녀 환희천(Nandikeśvara)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한역 불경에서 흔히 환희천이라 부르게 된 것은 확실히 밀교적 전통 속에서 탄생한 명칭이 분명하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네팔의 초기 조각(그래야 8세기경) 가운데에는 특이하게도 석가모니가 정각(正覺)을 얻기 위해 명상에 들었을 때 이를 ‘방해’하기 위한 마라(Mārā)의 공격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마라의 부대 가운데 가나파티 또는 비그네샤(Vighneśa)가 등장하는 것이다. 창을 들고 있는 비그네샤가 다른 야차와 마귀들과 함께 붓다를 공격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는 아마도 불교에 수용된 야차-가네샤의 초기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군(魔軍)이나 귀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방해자’ 그 자체로서 가네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가네샤는 불교 속에서 은혜롭고도 공포스러운 양면의 존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동아시아 전통 속에서 두 명칭, 즉 환희천(歡喜天)과 비나야가(毘那夜迦)는 동일한 존재를 가리키지만, 거의 대부분 구분해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희천은 밀교 속에서 인간사의 길흉과 성패를 좌우하는 숭배의 존재로서 그려지지만, 비나야가는 조복해야할 어떤 존재를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성이 각기 다른 존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다소 상상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불공(不空)이 번역한 ‘대성천환희쌍신비나야가법(大聖天歡喜雙身毘那夜迦法)’을 보면 분명히 가네샤의 조상(彫像)법이 묘사되고 있으며 재난과 재앙을 피하기 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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