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혜민 스님의 설법 노하우 ③
45. 혜민 스님의 설법 노하우 ③
  • 박상건 교수
  • 승인 2016.12.14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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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함으로 바다 같은 평화와 감동을 주다

혜민 스님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연역법과 귀납법을 시의 적절하게 사용한다. 솔직담백한 체험담은 유연하게 흘러가 마침내 불교정신과 맞닿는다. 비유법과 인용법을 스토리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잘 다듬어진 스토리는 찰지고 팽팽하게 당기는 힘이 있다. 그것이 문장의 생명력이다.

추론 방법 시의적절하게 사용
궁극적 설법은 진정한 마음 표현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스님이 될 용기를 냈느냐고요.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잣대에 맞춰 평생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며 죽을 때까지 헐떡이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마음의 본성을 제대로 보고 스스로 깨닫고 싶었어요. 그래요. 어떻게 보면 좀 이기적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번쯤은, 내 평생 단 한순간쯤은 그래도 내가 진정한 ‘갑’인 인생을 살아봐야 하잖아요. 그리고 내 가슴 한 곳에서는 솔직히 미치도록 그렇게 살고 싶잖아요? 원이 있는 삶, 후회가 남지 않는 삶, 한 번쯤은 그런 인생을 꿈꾸잖아요?”(‘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130~131쪽)

모노드라마는 대화체로 전환되며 격의 없이 청중의 가슴을 파고든다. 남들 의식하며 헐떡이며 살고 싶지 않았다, ‘갑’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 손가락질해도 나만의 소중한 삶을 살고 싶었다는 대목은 진정성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렇게 살자는 우회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학에 들어가 종교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진정한 부처님은 형상을 가지고 볼 수 없다’라는 ‘금강경’ 속 가르침을 만나게 되었다.”는 스님은 부처님께 절하는 것은 “내 몸 안과 밖으로 깨어 있는 무형상의 본성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며 “깨달았다고 해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깨달음은 곧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체험이 녹아든 ‘금강경’ 이야기에 감동을 더한다. 지식은 잘 쓸 줄도 알아야 하고 깨달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부분은 스토리의 대반전이다. 천상, 스님은 스님이라는 이미지가 오버랩 되면서, 부단한 수양의 정도를 실감케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비주류 삶을 사는 외곽에서 일어나기 쉬워요. 주류가 정해놓은 규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도전하고 철학하기 때문입니다. 주류가 아니라도 내 삶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뭐든 내 식으로 꾸준히 해보세요.”라는 메시지도 번뜩이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열광하는 이유이고 그들은 곧 비주류 인생을 사는 민초들이다.

혜민 스님은 이런 문화적 현상의 연장선에서 불교적 본성으로 삶을 깨치게 한다. 민초들의 소소한 삶에서 감동과 문화적 실험을 하게 해준다. 불교의 개방성과 종교적 진화의 속도를 더불어 체감토록 해준다. 그런 과정에서 종교적 편견이나 마찰이 생길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먼저 헤아리고 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은 되레 공감과 공동체 여백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강물처럼 경계 없는 삶이 흐른다. 스님은 늘 사람들을 어머니 대하듯 대한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을 두 팔로 안아 주고 함께 기도하며 지혜롭고 강하게 거듭나자고 말한다. 이것은 자비의 실천이고 설법의 궁극적인 길도 능수능란한 웅변술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표현에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로마 교부철학의 대성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자들이 웅변술의 제1, 제2, 제3의 법칙을 ‘발음’이라고 주장하자, 진정한 웅변술은 처음도 끝도 늘 ‘겸손’이라고 강조했다. 팔만대장경에는 “부자의 겸손은 가난한 자의 벗이 된다”고 했다. 탈무드에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려앉으시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올라앉으시오’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고 일러줬다. 구약성서의 잠언은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했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기호다. 특히 동양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언어는 그 자체보다 표현에 담긴 마음을 읽는다는 점이다. 기호 하나가 수많은 감정과 의미를 해석하게 한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기호는 교만과 멸시, 부정과 비리, 증오와 위선을 구구절절 지적하지 않아도 하늘과 바다 같은 평화와 감동을 준다. 그렇게 꺼이꺼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촛불이 되고 횃불이 된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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