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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즉무남북(佛性卽無南北)

조계사 밝힌 트리

12월13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혔다. 16년째다. 행사에는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조계사 어린이합창단 어린이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앞에서 신나게 캐럴을 불렀다. 전통등 형식으로 제작된 트리와 사슴, 소년, 소녀는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서양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불과 20여년 전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올수록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극성스런 개신교인들로 인한 방화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손을 잡고 각자의 명절에 축하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화합의 노력을 보인 결과 불미스런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조계사 트리는 차이와 차별의 의미를 일깨우는 소중한 상징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곧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다름을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림은 옳음에서 벗어난 잘못됨을 의미한다. 차이를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이해하는 순간 다툼은 시작된다. 종교가 다르다가 아니고 틀리다고 말한 순간 사탄이 되고 마군이 된다. 피부색이 다른 것이 아니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종차별은 시작된다.

‘육조단경’에 인즉유남북(人卽有南北) 불성즉무남북(佛性卽無南北)이라는 구절이 있다. 혜능 스님이 홍인 스님을 만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자 홍인 스님이 물었다. “너는 영남 사람이며 오랑캐인데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혜능이 말했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겠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남북이 없습니다.” 사는 곳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불성에는 차별이 없다는 의미다.

우리 주변에는 다른 성적 취향이나 종교, 피부색으로 차별받는 이들이 많다. 이주민 300만 시대라지만 차이를 틀림으로 이해하고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불성을 가진 귀한 존재들이다. 전통과 현대,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트리를 탄생시켰듯이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더욱 화려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조계사 트리는 일깨우고 있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372호 / 2016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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