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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기연으로 시작된 청신녀의 시사랑‘꿈 그림자’ / 유동숙 지음 / 대양미디어
이재형 기자  |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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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15: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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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그림자’
여여화(如如華) 유동숙(70)씨. 지난해 봄 그는 법보신문에서 원로시인 신현득(84) 선생님의 글을 발견했다.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신 선생님은 여전히 인자해보였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음을 알았다. 유씨에게 신 선생님은 페스탈로치처럼 훌륭한 교육자로 기억됐다. 1950년대 중후반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신 선생님은 20대 젊은 교사였다. 동시로 문단에 등단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이 때 유씨도 선생님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법보신문 매개로 신현득 시인과 재회
50년대 말 글쓰기 지도했던 옛 스승
성지순례 때마다 쓴 시 엮을 것 권유
“삶에서 시적 영감 느끼게 하는 선시”

그는 선생님을 유난히 좋아했다. 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허리띠로 사용하던 소박함도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과 동시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웃 학교까지 걸어갔던 일은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20리는 족히 됨직한 거리. 어린 발걸음으로 걷다보면 지치고 목도 말랐다. 그 때 밭에서 무 하나를 쑤욱 뽑아 흙을 닦아 아이들에 건네던 선생님. 누군가 힘들어하면 선생님은 그 아이를 등에 업고 걸었다. 무 하나쯤 뽑아도 아무런 흉이 되지 않던 시대도 그립지만 선생님의 그 맑고 인자한 미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화번호를 알아낸 유씨는 곧바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인사도 드리고 맛있는 식사도 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여보세요? 저는 경북 상주초등학교 다녔던 유동숙이라고 하는데요. 선생님, 혹시 저를 기억하세요?”
“아~, 동숙이! 기억하고말고.”

그러면서 선생님은 곧바로 동시 하나를 외워나갔다.

‘나팔꽃은 심술꾸러기/ 백일홍 목을 감았네.// 백일홍은 목이 메어/ 죽겠다는데/ 나팔꽃은, 또/ 코스모스 목을 감았네.’

순간 유씨는 목이 메어왔다. 그것은 56년 전,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지은 동시였다. 선생님은 이 시를 좋아해 다른 시인의 글짓기 학습 책에 소개해 몇 차례 실렸다고도 했다. 또 선생님은 상주포교당에서 일요일마다 불교어린이회를 할 때 두어 번 찾아왔었다는 사실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유씨는 결혼 후 고향 상주를 떠나 진주에 정착했다. 이후 태안사 조실이었던 청화 스님과 인연이 닿으면서 참선수행을 시작했고, 진주에 도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부 처소도 마련했다. 그곳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 법회를 이끌고, 100평 규모의 군법당 불사를 주도할 정도로 포교에도 적극적이었다. 유씨는 이 같은 불연(佛緣)의 씨앗이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고 생각됐다.

얼마 뒤 유씨는 서울에 올라와 선생님을 만났다. 60여년의 세월이 흘러 20대 젊은 선생님은 80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있었고, 초등학생이었던 자신도 70고개에 이르렀다. 선생님은 얼굴 곳곳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도 희끗희끗했다. 그렇지만 맑은 얼굴은 그대로였다. 선생님의 큼직한 멜가방에는 두툼한 경전이 들어있었고, 얼마나 다녔는지 신발은 낡아있었다.

   
▲ 용타 스님으로부터 “놀랍다”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은 저자는 참선수행자이며 어린이, 청소년, 장병들에게 법을 펴는 전법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어 번 만났을 때였다. 선생님은 유씨에게 써둔 글이 있는지 물었다. 처음 머뭇거리던 그는 성지순례를 다닐 때 종이쪽지에 적은 ‘감상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 글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유씨의 글은 신 선생님의 손에 들려졌다.

‘이끼는 저 혼자 푸르고/ 석간수 무심히 흐르네// 도심의 새소리 어울려/ 향연으로 피어나는 중생의 염원…’(진주 의곡사의 향연 중)

‘빛바랜 낮달이/ 무심히 한가하고// 솔바람, 찬 기운이/ 홀연히 날 깨우는데// 붉은 단풍은/ 부처님 누우신 뜻// 댓돌 위 스님네 새하얀 고무신/ 적막을 보태고/ 나지막한 굴뚝 연기/ 삶을 얘기해주네.’(진주 다솔사)
‘뿌리 없는 허공에 씨를 뿌리네/ 하얀 꽃 푸른 열매/ 검은 가지가// 채색화 수묵화/ 곱고도 애달픈데// 눈 뜨니 가슴 아픈/ 헛꽃이어라// 그렇게 공들이고 가꾸었는데/ 뿌리조차 흔적 없는/ 헛꽃이어라// 한 티끌도 잡을 수 없는/ 적멸이어라.’(허공사)

유씨의 글을 읽어본 선생님은 대견해했다. 글 솜씨 좋던 아이가 노년이 되어서도 시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의 깊은 체험과 신심이 없이 결코 쓸 수 없는 뛰어난 선시였다. 선생님은 책을 엮을 것을 제안했고, 그 옛날처럼 하나하나 감수했다. 출판사도 직접 알아보고 제작과정에서 참여했다. 유씨의 시를 읽은 행복마을 조실 용타 스님도 글을 보내왔다. ‘놀랍다’, ‘경이롭다’며 “여여화의 시작품이 세상에 나가서 시를 접하는 많은 분들의 삶 곳곳에서 시적 영감을 느끼게 할 것이며, 여여화의 시향(時香)으로 천하의 기운이 한결 더 맑아지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이 책은 오랜 세월 수행과 포교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청신녀가 60여년 전 스승을 만나면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여기에는 유씨가 국내외 여러 성지를 순례하며 쓴 80편의 시가 담겨 있다. 그 놀랍운 기연이 빚어낸 시의 향연이 아름답고 고결하다. 1만3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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