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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에게 길을 묻다] 5. 서구에서 원효사상이 갖는 의미

  • 새해특집
  • 입력 2017.01.03 18:54
  • 수정 2017.01.05 10:23
  • 댓글 1

기독교적 사유구조 전환시킬 창조적 파괴력 지닌 메시지

▲ 지속적으로 학술회의를 열어 원효사상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효(元曉 617~686)는 단순히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학자가 아니라 국가와 시대를 넘어 인류정신사의 새벽을 연 세계의 지성인이었다. 원효는 7세기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를 선도하였고 그의 저술은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 원효사상의 의미를 서구사회의 측면에서 살펴보려는 것은 원효사상이 지닌 보편성과 범세계성 때문이다. 원효는 이제 종교를 넘어 다양한 인문학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원효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원효사상의 탁월함에 비해 그의 저술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세계인들에게 많이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여래장 일심사상을 중심으로 해
원죄설 일관한 기독교 문명권에
인간의 무한 가능성 심는 논증

화쟁 회통법으로 편견과 독단
갈등야기하는 의사결정 방법에
근원적 경종 울리고 대책 제시
참된 자기 발견의 길도 가르쳐

동국대·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원효학회
노력에도 영역은 아직 초기단계

세계인이 원효 접할 기회 부족
대중 위한 원효사상 전개 필요

현대의 원효연구는 20세기 초반부터 최남선, 정광진 등과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조명기에서 출발하여 1960년대부터는 이기영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기영 박사는 벨기에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유럽파 불교학자로서 원효를 서구 학계에 최초로 소개한 국내 학자이다. 그는 근대 불교학뿐만 아니라 세계종교와 서양철학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닌 대형 학자였다. 한편 197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박성배 교수는 본격적으로 원효 사상을 서구 사회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후 서구학계에는 루이스 랭카스터, 오법안, 로버트 버즈웰, 찰스 뮐러, 박진영, 요르그 플라센, 버나드 포르, 리차드 맥브라이드 등에 의하여 다양한 분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원효 저술의 영어번역을 비롯한 국제화 작업은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원효에 대한 본격적인 국제적 연구는 1997년 동국대학교와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교가 공동으로 국제원효학회(IAWS)를 설립한 이후부터이다. 초창기의 IAWS는 박성배가 주도적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로버트 버즈웰이 원효전서 영역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AWS는 ‘한국불교전서’를 저본으로 하여 하와이대학 출판부에서 ‘원효전서영역총서(Complete Works of Wonhyo in English)’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현재까지 ‘금강삼매경론: Cultivating Original Enlightenment: Wŏnhyo's Exposition of the Vajrasamādhi-Sūtra’(2007), ‘원효의 마음 철학: Wŏnhyo's Philosophy of Mind’(2011) 등이 발간되었고, ‘대승기신론소’ 및 원효의 종요(宗要)와 경론주석서 등이 계속 출판 작업 중에 있다. 모든 번역 작업은 오래전에 마친 상태이나, 번역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그 출간은 신중히 진행되고 있다.   

하와이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원효전서 영역본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치밀한 본문 비평과 해설, 그리고 역자의 비평적 역주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업은 향후 한국불교 고전의 영역을 위한 선도적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은 ‘Collected Works of Korean Buddhism’ 제1권에 ‘원효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원효 저술의 일부를 영역본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원효의 경론주석서 서문과 종요, 그리고 짧은 글들과 비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서구의 원효연구는 이제 겨우 출발점에 있다. IAWS의 활동으로 원효학의 국제화 시동이 걸렸으나 아직 첫걸음을 디딘데 불과하다. 원효학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먼저 ‘원효전서’의 완벽한 영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효전서에 대한 정확한 한글 번역과 비평적 역주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다음 단계로 서구인을 위한 원효관련 교양서가 영역되어야 한다. 전문 학자들을 위한 원효가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원효사상의 전개가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원효사상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통해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적 원리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국제원효학회는 1997년 국제원효학회 창립세미나.

원효전서영역은 그동안 혼란을 거듭해 온 한국불교의 용어에 대한 영역화의 전범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역경사적 중요성이 있다. 그동안 원효전서 영역자들은 원효 저술연구의 난제에 대해 수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많은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무엇보다도 신라의 원효가 사용한 불교한문 용어와 현대 영어와의 등가성 문제이다. 원효의 문장이 지닌 포괄적 표현을 영어의 명시적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유방법과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언어와 문화적 거리이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하나의 개념이 등가로 전달되기는 매우 어려우며, 여기에서 큰 오역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심’을 ‘하나의 궁극적 실체’로 번역하는 오류 등이다. 아울러 원효가 깨달은 종교체험의 깊이를 모르고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번역할 경우 그 의도 파악에 결정적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등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번역자의 학견에 따라 같은 용어가 다른 번역어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를 실제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박성배 교수는 원효사상의 국제화 작업은 ‘동·서양 대화의 한 형태이자, 세계 불교학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 서구 문명은 실로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 서구의 정신문명은 플라톤 이래의 실체론적 사유에서 연기적 사유로의 전환을 예감하는 수많은 징조가 보이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사회로 진입한 서구사회에 원효사상은 불교의 일반적 유행과 함께 한국불교의 특수성이 더하여 그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서구에서 원효사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가? 

▲ ‘원효대사전집’중 ‘원효의 마음철학’ 영문번역서.
첫째, 원효의 여래장 일심사상은 원죄설로 일관되고 있는 바울신학 중심의 기독교 문명권에 새로운 대긍정의 인간관을 심어줄 수 있다. 기독교의 원죄론적 인간관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설과 자력에 의한 구원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결국 스스로의 회심에 의한 자기구원은 불가능하므로 원죄의 회개에 의한 은총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원효는 일심과 여래장설을 인용하여 모든 인간이 본래 부처라는 대연(大然)의 인간본성을 가르쳤다. 여래장은 인간의 무한한 창조가능성과 누구나 여래와 꼭 같은 지혜와 복덕을 갖출 수 있다는 긍정의 교육사상이다.

둘째, 원효는 서구인들의 사유에 익숙한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배중율(排中律)의 논리에 대한 처방으로 ‘둘이 아니면서도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는 ‘무이이불수일(無二而不守一)’의 논리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불이(不二)사상을 넘어서는 ‘불이적이원론(不二的二元論)’의 메시지이다. 하나가 아닌 까닭에 모든 부분에 해당되고,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입장이 한 맛 속에 융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체와 부분간의 해석학적 순환 원칙은 진리 주장에 대한 이견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방법으로도 응용할 수 있다.

셋째, 원효의 진리 해석학의 중심 방법론인 ‘화쟁회통법(和諍會通法)’은 편견과 독단으로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는 인간의 의사결정 방법에 근원적인 경종을 울리며,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원효는 하나의 주장이나 입장을 고집하는 배타적 인간들에게 총체적인 진리인식 방법을 제시하였다. 일심으로 돌아가서 전체를 하나로 꿰뚫는 원리를 보는 이는 특정 견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넷째, 원효는 작은 범주의 문자주의 문명을 비판한다. 원효의 화회(和會) 해석학은 깊은 종교체험의 해석학이다. 원효는 작은 대화가 아니라 큰 대화, 즉 근원적인 심층적 대화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제법의 실상을 여실히 보는 이는 편협한 문자주의나 인습과 전통의 노예가 되지 아니한다. 원효는 일심으로의 근원적 회귀를 통한 참된 자기 발견의 길을 가르쳤다. 

이상과 같이, 원효사상은 서구인들의 사유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새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서구중심의 현대 물질주의적 문명의 병폐와 그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는 창조적 파괴력을 지닌 복음일 수 있다.

▲ 김용표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그동안 교계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구호와 논의가 무성했지만 구체적인 실천의 성과는 미약하였다. 서구불교학자들의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도 불교 자체에 대한 관심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미약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효를 비롯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외국학자들을 지원해주는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이들을 지원해주는 인재불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티베트는 망명정부의 재원으로도 외국인 티베트불교 연구자들을 대거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외국인 한국불교 연구자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면, 외국 전문 학자들을 통한 한국불교 국제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원효사상의 국제화 문제는 우리 한국불교계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근·현대 문명을 주도해 온 서구사회에 원효를 알리는 작업은 한국불자들이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미래의 대작 불사이다.

sunyata@dgu.edu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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