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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에게 길을 묻다] 9. 진영으로 본 원효 대사

기자명 김호석
  • 새해특집
  • 입력 2017.01.04 10:54
  • 수정 2017.01.05 13:36
  • 댓글 0

스스로 한계 깨버린 원효의 파격적 사상과 명쾌함 담아

▲ 1762년 수리된 일본 고잔지가 소장하고 있는 원효 스님의 진영.

원효 대사는 한국불교의 정점이자, 앎을 고민하고 그것을 삶에 실천하신 분이다. 또 스님은 인간의 삶 속 갈등과 분쟁을 시시비비가 아닌 화쟁으로 풀어내었다. 스님의 훌륭함은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대자유인이자 세상을 끌어안으려 괴로워한 수행자로 이해한다. 원효 대사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버리고 일신하는 모습과 그 파격의 사상이 넓게 영향을 미쳤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흘러 새로운 희망과 생명력이 되었다. 그렇게 원효 대사는 순수한 자비를 실현하는 보살로 세상을 아울렀다. 스님의 위대함이다. 나는 한 인물의 사상과 행적에 대한 연구는 그 시대가 요구했던 수행과 인간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 시대와 원효 대사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원효 대사의 이미지를 상상해보았다. 스님은 그 삶처럼 장식 없이 단순 명쾌한 분이셨으리라. 또 기골이 있고 강인하나 유연한 내면을 갖추셨을 것이다. 역사가들도 원효 대사를 이와 유사하게 추론하는데, 나는 그것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日 고잔지 진영엔 가부좌로 앉아
스님의 높은 위엄과 권위 나타내

범어사 소장 진영에선 정면 응시
외곬수와 기백 있는 인상이 특징

국가표준 진영, 반신상 좌측응시
눈꼬리 내려 온화하고 유순하게  
  

분석 대상으로 삼은 원효 대사의 진영은 3점이다. 1762년 수리된 일본 고잔지(高山寺) 소장본, 조선시대에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범어사 진영 그리고 1980년대 그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가 표준영정 등이 그것이다. 이 3점에 대해 작품의 특징적 요소를 분석해 보았다.

먼저 제일 오래 된 일본 고잔지 소장본부터 살펴보자. 이 진영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 위에 스님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다. 넓고 큰 화려한 의자는 스님의 높은 위엄이나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신발은 의자 아래 신발 대 위에 단정히 놓여있다. 스님의 자세는 좌측을 바라보고 있으며 두 손을 맞잡고 있는 공손한 자세로 그려있다. 의상은 가사 장삼을 착용하고 있다. 가사는 단순하게 주름만 있을 뿐 단조롭고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힘이 있으면서 담박하다. 이런 간명함은 원효 대사의 본질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범어사 소장 진영에서 원효 스님은 등받이 의자에 앉아 있다. 범어사 제공

얼굴은 좌측을 바라보고 있어 우측 뺨이 4분의3이 보이는 좌안7분 형상이다. 이마는 넓다. 머리는 벗겨져 있다. 이마 선은 죽은 데가 없고 가파르다. 뼈의 윤곽이 여실하며 고약하다는 인상이 나타나있다. 이런 점은 예측하기 힘든 예지와 돌출 행동을 예견하게 한다. 호락호락할 인상이 아니다. 또 이마에는 골 깊은 주름이 패어 있다. 가늠하기 어려운 내면과 깊은 고뇌의 성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상으로 이해된다.

눈썹은 끝이 길게 표현되어 신성한 이미지를 자아낸다. 아울러 눈썹 털이 세밀하게 살아있다. 선묘에 긴장감이 들어 있어 독특한 성정을 은유하고 있다. 눈은 길고 양끝이 치켜 올라가 있으며 동공은 뚜렷하다. 눈매가 반짝반짝 살아 있어 총기가 느껴진다. 눈의 흰자위도 하얗게 강조되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강인한 인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눈 아래에 웃음선이 만들어 낸 주름은 선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코는 크다. 턱 선에 힘이 집중되어 있다. 입은 꽉 다물고 있어 침묵이 번진다. 귀는 크고 살이 두툼해 덕스럽다. 이 진영의 얼굴에서 보이는 느낌은 명석한 두뇌에서 오는 긴장과 골상에서 자아내는 기운생동이다. 그러면서 상호엔 무언가를 감추고 있지 않은 호쾌함이 있다.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가부좌 자세는 편안하고 여유가 있다. 두 손은 맞잡은 형태이다. 정본으로서의 예의와 예배자에 대한 속 깊은 배려가 나타나 있다. 가사 표현은 장식이 거의 없이 절제미가 흐른다. 그래서 더욱 자신만만하게 보인다. 손과 신발은 작게 표현되어 있다. 다른 요소와 달리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부조화가 느껴진다. 아마 일본 사회의 형식적 도상이 지니는 양식이 아닌가 추정한다.

이 진영은 원효 대사가 성질이 칼칼하고 강하며 급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호인이거나 덕이 있는 사람의 모습도 함께 깃들게 표현하고 있다. 눈가에 나타난 작은 주름은 자비로운 덕상임을 의미한다. 눈이 강한 독수리처럼 예리하긴 하나 그가 눈을 사용할 때는 자비로운 눈길을 보낸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범어사 소장 원효 진영을 살펴보자. 이 진영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스님이 앉아있다. 얼굴은 거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우안 9분상이다.

상호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마가 좁다. 이런 점은 뜻과 이상이 옹졸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마 선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외곬수의 기질과 더불어 기백 있는 인상으로 느껴지게 한다. 얼굴 표현에서 특히 두드러진 곳은 코다. 이런 요소 때문인지 남성다운 힘이 느껴진다. 이 점은 턱과 눈썹 표현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등신으로 보았을 때 얼굴이 지나치게 크고 자세가 엉거주춤하여 불안정하다. 동세 표현은 표현 대상자의 전형적인 삶의 양태를 집약시켜 상징성이 배가 되도록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의습 표현은 장식이 너무 과하다. 지나친 장식은 수행자다운 면모를 감소시킨다. 간명함은 수행자의 기상을 드러내는데 더 주효한 화법일지 모른다. 당당한 자신감은 역설적이게도 붓을 줄였을 때 증폭되어 나타난다. 왜 이런 사판승 같은 느낌이 났을까를 생각해 보니 자세가 시끄럽고 도상의 구성이 짜 맞추고 조립한 것 같은 불안정성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 국가표준 영정은 반신상으로 좌측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은 국가표준 영정이다. 진영은 반신상으로 좌측을 바라보고 있는 우안7분상이다. 얼굴은 길쭉하며 의상은 회색 장삼에 주황색 가사를 걸쳤다. 이 가사의 장식은 범어사 소장본을 참고로 한 듯 유사성이 확인된다.

이마는 길고 이마선의 각도와 머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머리의 윤곽선은 중간 부분이 함몰되어 있다. 더욱 삭발한 머리 모양에서 모근 표현은 매우 중요한 조형 요소이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의 표현에서 생명력이 약하다.

눈썹은 형태가 길고 약간 아래로 쳐져있지만 털은 부드럽게 묘사되어 있다. 눈썹은 털의 모양과 배열 방식을 통해 한 인물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낼 수 있다. 기백 있는 눈썹의 형태와 성성한 눈썹 털의 생김새 그리고 이것의 붓질에 의한 묘사가 얼마나 특유의 인상을 드러낼 수 있는지는 상상 이상이다. 눈썹의 형태가 예쁘게 다듬어져 있고 눈과 눈썹과의 거리가 짧으며 눈두덩이 꺼진 모습은 길고 깊게 파인 코 옆 팔자주름, 특이한 입 모양 표현 등과 더불어 원효 대사의 이미지 발현에 어떤 의미만을 부여해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원효 대사의 표준 영정에서 두드러진 점은 눈에 있다. 눈의 형태에서 눈꼬리가 내려가 있고 검은 동공이 위를 향하여 흰자위의 아랫부분이 하얗게 드러나 있다. 이 점은 온화하고 유순하게 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힘이 빠져 있는 모습으로 보이게도 한다. 시대의 한계를 넘나든 선각자로서의 총기가 부족해 보인다. 코는 서양인의 코처럼 일자로 긴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음영이 지나치게 적용되어 있어 초상화가 가지는 특성이 조금 약화되어 나타난다. 입술 선은 뚜렷하지 않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합쳐져 모호하다. 이런 표현 방식은 입에 국한하지 않고 턱 선에서도 나타난다.

이 표준 영정은 기교와 기법 구사가 매우 안정적이다. 그러나 형태에서 오는 기운과 맥이 화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법보다 중요한 것은 전신사조를 통한 이미지의 구현이다.

이상으로 원효 진영 3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일본 고단지 소장본이 정련된 필묵과 채색을 통해, 기운생동하는 인물의 내면까지 담아낸 진영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원효 대사 다운 풍모와 기질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 판단하였다.

초상인물화는 대상자의 외모는 물론 그 사람의 정신까지 배어 나오도록 표현하고 복식 등을 통해 시대성을 나타내는 것이 한국적 전통이다. 또한 한 인물을 표현 대상으로 할 때는 대상 인물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태내고 있는 시기의 모습으로 묘사해야 한다. 진영이 표현 대상자의 행적과 뜻을 기리기 위한 정교·감계·기록·숭배의 성격을 가진 그림 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원효 대사의 진영은 그분의 대자유인의 이미지와 삶을 관통한 정신의 정점까지 표현 되었으면 한다.

▲ 김호석
수묵화가

새로운 진영제작은 문화 중흥의 뜻과 가치를 아는 선지자와 의식이 있는 작가에 의해 가능하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발견이고 세계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었음의 반증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시대에 불교문화의 진작이 이루어져 원효 대사의 진영이 다시금 제작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원효 대사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일 것이다.

inkpainter@gmail.com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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