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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에게 길을 묻다] 10. 가상 인터뷰“거지들과 무애춤 춘 건 불국토 통일의 발원이었네”
한승원  |  yulsan4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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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4  11: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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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허재경 작가

무등산에 주석하고 있는 원효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 갔다. 1400년 전의 신라사람 원효. 원효 스님을 대하자마자 내가 삼배 하고나서 슬쩍 눙쳤다.

중생 도탄 빠지게 한 삼국전쟁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는 지성인
신라사회에는 단 한명도 없어

해골물 마시고 깨달았다는 말
훗날 사람들 지어내 잘못된 것
첫날밤엔 시체 넣어놓은 땅막
알지 못하고 고단해 달게 자
이튿날 자면서 귀신에 시달려
잠못이루다 새로운 세계 각성

요석궁에 연금이 되고 나서는
승려라는 신분 거추장스러워
자유자재한 존재로 거듭난 것


▲원효 스님께서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전쟁이 한창일 때 시장에 나가 무애춤을 추면서 ‘자루 빠진 도끼를 나에게 주려는가. 내가 그 도끼로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련다’ 하고 노래했는데 그 노래를, ‘전쟁으로 인해 과부가 된 요석공주를 나에게 주면 그 자궁의 자루 노릇을 해서, 무너지려 하는 신라 하늘을 떠받칠 큰 인재를 낳게 하겠다’는 뜻으로 ‘삼국유사’는 풀이했습니다.

원효는 고개를 젓고 나서 말했다.

“일연이 모든 것을 오독한 것이네. 하늘이 무너지려 한다는 것과 자루 빠진 도끼는, 당시 전쟁 상황에 빠져 있는 신라 사회를 말하네. 중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삼국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성인이 하나도 없는 당시의 신라 사회는 진리라는 자루가 빠져 버린 도끼 아닌가.”

▲아, 원효 스님께서 말하신 도끼는 유식론(唯識論)에서의 ‘아뢰야식[無沒],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우주적인 씨앗’의 ‘눈[胚芽]’을 말하신 건가요? 우주를 창조하는 종자가 도끼이고 눈이 그 자루라는 것입니까?
원효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님께서는 초지보살의 경지에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초지보살이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에, 자기 모습을 바꾸어 나무나 바위나 꽃으로 그를 맞이한다 하고, 그로 하여금 자기 향기를 귀로 듣게[香聞] 한다고 들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대답했다.

“그것은 중생들을 놀라게 하거나 희롱하는 오만한 자들의 번쩍번쩍하는 현학이네. 나는 달리곤 하는 ‘말’을 타고 다니지 않고 느린 ‘소’를 타고 다니네.”

▲말(馬)은 말(言)이고 소(牛)는 소(疏)이고, 말(言)은 관념이고 소(疏)는 풀이 혹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원효 스님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시로써 이야기하지 말고 산문으로 이야기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일까요?

원효 스님의 눈길은 꽃으로 가 있었다. 그의 눈길이 꽃을 피어나게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눈을 통해 나오고 눈을 통해 들어간다. 꽃이라는 이름도 저 눈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은 이름을 따라 존재하는 법’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물었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드님이 설총(薛聰)입니다. 원효 스님은 부처님의 제자인데 왜 설총은 공자의 제자가 되었습니까?

“모든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면 똑같이 짠물이 되는 법이네.”

▲스님께서 시장에서 거지들과 함께 바가지 두들기고 무애춤을 추며 반전운동을 펼쳤습니까?
“피 흘리는 전쟁을 통한 통일이 아닌 불국토 통일을 하자는 것이었네.”

▲당나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시점(660년)에서 스님은 당나라로 유학하려고 나섰습니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 당항성 앞 바다로 갔습니다. 여덟 살 아래인 의상 스님과 함께요. 의상 스님은 진골 출신이고, 원효 스님은 육두품 출신인데 그러한 스님들이 전쟁을 앞둔 때에 도피성 유학을 가려 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원효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당시 신라의 스님들이 출세하는 길은 당나라나 인도로의 구법(求法)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므로 신라의 스님들은 모두 그 유학의 꿈을 꾸었을 터입니다. 때문에 스님들은 밀항을 하여 당나라에 입국하곤 했겠지요. 요즘 사람들이 출세하려고 미국유학을 하듯, 당시 신라에서는 중국으로의 유학이 그러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원효 스님께서는 일단 당항성 근처에까지 갔다가 신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날 밤 시체 넣어 두는 땅막 안에서 흉흉한 귀신의 꿈을 꾸었다고 하기도 하고, 갈증이 나서 달콤한 물을 마시고 이튿날 보니 그것이 해골에 담긴 물이었으므로 크게 깨달아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一切唯心造)다.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하고 말하며 되돌아오고 의상 혼자서만 당나라로 갔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 참 내막을 말해주십시오.

“내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것은 훗날 사람들이 지어낸 잘못된 것이네. 우리는 사신들의 배가 떠나는 날을 기다리느라고, 시체 담아놓은 땅막 안에서 이틀 밤을 지냈는데, 첫 날밤은 그곳이 시체 넣어놓은 땅막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데다, 노독으로 떠메어가도 모르도록 달게 잤네. 한데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해골들하고 나란히 자고 있었던 거야. 전쟁으로 인해 성 근처에는 인가가 없어졌으므로, 이튿날 밤도 거기에서 마찬가지로 잤는데 나는 귀신에게 희롱당하는 악몽에 시달려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다가 문득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반짝거리는 별들을 보며 나는 새로운 세계가 환히 열리는 환희(각성)를 맛보았네. 하늘의 별빛이 사람의 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눈이 별빛을 만드는 거야. 중국의 선각자들을 만나지 않아도 나는 넉넉하게 마음의 실체를 얻은 것이었어. 그렇다면 구태여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신라 중생들을 외면하면서까지 유학의 길에 오를 까닭이 무엇인가. 신라중생들과 더불어 삶과 죽음을 같이 해야겠다, 하고 과감하게 발걸음을 돌렸어. 내 마음의 실체를 깨닫고 나자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어. 서라벌로 돌아가, 고구려와의 전쟁 반대 시위를 하다가 전쟁에 미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그 길이 진정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네. 그 길을 향한 나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그 자체가 걸림 없음(무애無碍)이었어.”

▲그런데 그 길로 돌아와 반전 시위를 하다가 군사들에게 이끌려 요석궁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내가 돌아와 반전 시위를 한다는 말이 신라 전역에 퍼지자 여기저기서 군중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었네. 당황한 대신들은 나를 죽이자고 모의를 했네. 그런데 김춘추가 그것을 막았네. 김춘추는 두 가지 효과를 노리고 나를 요석궁에 연금한 것이야. 하나는 나를, 통일 전쟁으로 인해 과부가 된 여자 요석공주와 관계를 맺은 파렴치한 파계승으로 만들어 소문내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자기의 사위로 삼아 이용하려는 것이었네. 나는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요석궁에 내내 연금이 되어 있었네.”

▲강제로 연금이 되었다면서 어찌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총이라는 아들이 태어났습니까? 만일 참으로 불제자로서 민중들의 추앙을 받으려면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전쟁 추진세력에게 저항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다 훌훌 벗고 털어버린 자유인이 되고 싶었네. 내가 반전 시위를 한 것은, 승려로서 안락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교만, 많은 저술을 남겨 역사 속에서 추앙받는 승려가 되겠다는 명예욕, 죽음이라는 공포 따위를 모두 벗어 던져버린 결과 아닌가. 요석궁에 연금이 되고나서는, 승려라는 신분마저도 거추장스러웠네. 말하자면 확실하게 자유자재한 존재, 초탈한 사람이 되고 싶었네. 그것이 무애야.”

▲저는 우주를 하나의 자궁으로 봅니다. 원효 스님께서는 자유자재한 삶을 이야기하시지만 그것은 관세음보살의 자궁 안에서의 자유자재일 뿐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그것은 요석공주의 치마폭(자궁) 안에서의 자유자재라는 것입니다.

“자네는 자네의 생각이라는 자궁 속에 갇혀 살고 있네.”

▲제 생각으로는, 요석공주는 원효 스님을 치마폭으로 가려주기 위해 현신한 관세음보살인데, 그것은 우주적인 모성성(母性性)입니다.

원효는 껄껄거리고 나서 말했다.

“자네의 논리대로 한다면, 아미타 세상도 하나의 거대한 자궁, 우주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팔 안으로 굽는식 편견 척결해 쟁송 멈춰야 비로소 화쟁”

   
▲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 스님의 삿갓. 오어사 사진제공

의상 화엄일승법계도 어려워
내 경전들 중생들 입에 맞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

참회는 탐욕과 질투 어둠에서
깨달음을 밝히는 것과 같으니
중생 그 빛 이용해 길 찾아야

화쟁 목적지는 부처님의 광명
모든것 마음 하나에 달렸으니
마음 깨닫는 게 부처의 순간

전생에 지은 부채들 갚으려면
이생에 늘 정직하고 소박해야


▲스님들은 아미타 세상으로 가는 큰 수레(大乘)를 마련하여 중생들을 태우고 가려고 합니다. 유학파인 의상 스님의 경우 그것을 시(詩)의 방법으로 선전하려 하고 국내파인 원효 스님의 경우 산문으로 홍보하려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원효 스님은 200여권의 저술을 했는데 의상 스님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系圖)’와 그에 연관된 책 한두 권이 있을 뿐입니다. 의상 스님은 부처님의 진리를 회문시(回文詩) 비슷한 것으로 모두 다 표현했다고 자부하는 것 같은데요?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를 보면, 공부를 깊이 한다고 한 나마저도 잘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차 있어. 너무 어려워. 내가 경전들을 중생들의 입에 맞도록 쉽게 풀이(소疏)하는 저술과는 많은 차이가 있네.”

▲흔히들, 원효 스님이 집필한 ‘금강삼매경’이 우주적인 총체성을 띤, 이 세상 최고의 경전이라고 말합니다. ‘금강삼매경’에는 신화가 붙어 있습니다. 왕후가 병들어 있는데 그 어떠한 약도 효험이 없으므로, 약을 구하려는 사절단이 당나라로 갑니다. 중도에 사신의 우두머리가 용궁의 사신을 따라가서 용왕을 배알합니다. 용왕이 “‘금강삼매경’은 신라의 원효 스님만 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신이 돌아오자 문무왕은 원효 스님으로 하여금 그 경을 황룡사에 나와 설하게 합니다. 왜 신화적으로 기록했을까요?

“그 경전은 전쟁이 끝난 다음 병든 신라사회를 고쳐주는 약이니까.”

▲원효 스님께서는 왜 말 아닌 소를 타고 황룡사로 갔으며 소의 뿔과 뿔 사이에 놓고 원고를 집필한 것은 무얼 말합니까?

“말(馬)은 말[觀念]이고 소(牛)는 소(疏-풀이)야.” 

▲그렇다면, 소의 두 개의 뿔[覺醒] 가운데 한 개는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착한 깨달음[本覺-불성]이고, 다른 한 개의 뿔은 후천적인 공부를 거쳐 점차 천천히 이해하여 우주의 깊은 뜻을 얻어가는 것[始覺]을 말하는데, 그것이 신화적으로 포장된 것이라고 이해해도 좋겠습니까?  ‘금강삼매경’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십시오.

“깨뜨림이 없되 깨뜨리지 않음이 없고, 세움이 없되 세우지 않음이 없으니, 이야말로 이치가 없는 지극한 이치요, 지극한 이치가 아니면서 큰 이치인 것이 ‘금강삼매경’이네. ‘진실로 그렇지 않으면서 그것이 그러하다’하는 것은 ‘고리’하고 똑 같네. 뫼비우스의 띠가 그것이네. 장자의 ‘제물론’에 ‘환중(環中)’이란 말이 나오네. 그것은, 옳고 그름이 반복되어 서로 한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고리라고 했으니, 고리의 중심은 비어 있네. 옳고 그름을 이 고리로 삼아서 중심을 얻는다면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게 된다는 것이네. 여인들이 끼는 반지도 그것일 수 있네.”

▲‘금강’을 중생들이 알기 쉽게 단 한 마디 비유로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금강은 꽈당! 하는 벼락 치는 소리 같은 것이네. 벼락 소리는 의혹을 깨뜨리는 것이고, 모든 선정(禪定)을 뚫어 버리네. 모든 보배(眞理)는 구멍을 뚫어야 목걸이나 귀걸이나 코걸이나 배꼽걸이나 팔찌나 반지 따위를 만들 수 있네. 세상의 모든 법을 다 깨뜨려버리고 가장 바르게 생각하는 것[正思]이 그것이네.”

▲‘무애(無碍)’란 무엇입니까? 슬프게도, 무애를 요즘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오입도 하고 고기도 먹고 탐욕도 챙기고 파계를 일삼아도 되는 막행막식)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아가타’라는 약이 있는데 그것은 만병통치 해독제이네. 큰 자비로 가득 찬 부처님께서는 진리 쪽으로 통할 뿐 막힘이 없으시네. 널리 중생을 구제하려고 살아 퍼덕거리는 진리를 설명하네. 모든 것을 둘이 아닌[不二] 한 가지 맛[一味]의 도로써 설하시고, 깨달음의 세상으로 작은 수레[小乘]를 혼자서 타고 가시지 않고, 큰 수레에 중생들을 모두 싣고[大乘] 가시네. 한 가지의 맛이란, 모든 중생을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고, 중생들과 더불어 세간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함께 해탈하게 한다는 것이네.”

▲그렇다면 일승(一乘)이란 무엇입니까?

“순리에 따르는 것이네. 마치 한 차례 비를 맞으면, 온갖 풀이 다 무성한 것과 같이, 각자의 다른 성정에 따라 가장 참된 진리의 비에 적셔져서 두루 충족하게 되니, 깨달음(극락)의 싹이 삐죽삐죽 자라게 되네.”

▲진리를 관념으로 말해주는 사람, 계율을 건조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교만하여 바다에 물결이 인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지네. 사라져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마음 또한 사라져 없어지네.”

▲‘삼국유사’에 사복(蛇福)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 사람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사복은 순 우리말로 ‘뱀보’인데 내가 늘 다니면서 설법을 해주었던 사람이네.”

▲하체를 쓰지 못하는 까닭에 두 손을 이용하여 배로 기어 다닌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원효 스님을 불러들인 뱀보는 원효 스님에게 자기 어머니를 가리켜, 자기들에게 공부할 경전을 실어 날라준 늙은 암소라고 말했어요. 그 늙은 암소가 죽었으므로 이제는 경전 실어다주고 먹여줄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원효 스님과 함께 장지로 간 뱀보가 어머니 시신 묻을 구덩이 속으로 함께 들어가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살했다는 것 아닙니까? 원효 스님께서 ‘나지 말지어다 그 죽음이 괴롭다. 죽지 말지어다, 그 남이 괴롭도다’ 하고 그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자 뱀보는 그 말이 번거롭다고 했고, 원효 스님께서 고쳐 말하기를 ‘죽고 삶이 모두 괴롭도다’ 하자 비로소 그가 만족했다 했는데 그때 불쾌하지 않았습니까?

“뱀보는 나를 통해 구원을 얻은 사람이네.”

▲참회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탐욕과 교만과 질투와 복수의 어둠[迷妄] 속에서 불(깨달음)을 밝히는 것과 같으므로 중생들은 그 빛을 이용하여 길을 찾네.”

▲원효 스님께서 낙산사의 남쪽 교외에 이르렀을 때 예쁜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벼를 달라고 하자 여인이 흉작이어서 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얼마쯤 가자 다리 밑에서 또 한 여인이 월경대를 빨고 있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마실 물을 달라고 하니 그 여인이 생리대 빨래한 핏물을 떠주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그 물을 버리고 손수 깨끗한 물을 떠 마시자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원효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미음과 우유를 섞어 쑨 죽을 마다고 한 화상아!’하고 놀렸습니다. 나중에 원효 스님은 자기를 희롱한 여인들이 다 관세음보살의 진신임을 알아차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효는 산정에 얹히어 있는 흰 구름장만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의상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원효 스님을 물 먹이는 설화, 말하자면 의상 스님이 친견한 관세음보살을 원효 스님은 끝내 친견하지 못했다는 설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옳습니까?
원효가 말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꿈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법이네(치인설몽痴人說夢). 꿈 이야기는 하나의 방편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달[眞理]을 말해주려 하는데, 어리석은 자는 진리를 떠올릴 수 있는 감수성 자체가 없으므로 그 방편만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네…. 동해변으로 의상을 찾아가는 도중에 두 여인에게 무안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신화로 포장되어 있는 것일 뿐, 달 그 자체는 아니네. 신화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질[方便]인 거야. 그것은 깨달음의 길을 찾아가는 원효라는 사람의 중얼거림으로 읽어야 하네. 하나는, 벼 베는 여인의 고혹(蠱惑)스러움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스스로의 안간힘을 표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하려 하는 마음에 대한 스스로의 꾸짖음이야. 그러한 안간힘과 꾸짖음의 과정을 거쳐야만 관세음보살(깨달음)을 친견하게 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하게나.”

▲화쟁(和諍)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우김질을 그치게 하고 서로를 화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쇳덩어리가 서로 부딪쳐 쨍그렁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조용해진다는 뜻[和錚]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서로 싸우던 것을 멈추고 화해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문제(진리)를 가지고 양 종파가 서로 우김질을 할 때, 그들은 각자 그것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우겨댈 것입니다. 그때 원효 스님이 나서서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하게 화해시킨다는 것이 ‘화쟁’인 것입니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우기는 이설(異說)들을 무조건 너도 옳고 그대도 옳다고 끌어안아 회통(會通)시키는 것은 화쟁이 아니네. 화쟁에는 칼 같은 비판의식이 담겨 있지 않으면 안 되네. 각기 다른 경전들은 서로 다른 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도달하는 궁극(부처님의 말씀)은 같으므로 한데 물론 회통시켜야 하지. 그러나 경전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해석하는 오류와 편견은 확철하게 척결함으로써 쟁송을 멈추게 해야 하네. 그것이 화쟁이네.”

▲좀 더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사람은 원천이나 원류를 바라보면서 곁가지 흐름(지류)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잎사귀를 잡고서 줄기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옷깃을 잘라서 소매에 붙이고, 어떤 사람은 가지를 잘라서 뿌리에 두르면서 자기가 옳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광정(匡正)시키는 것, 가령 원류를 원류라고 분명하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화쟁이네.”

▲그 화쟁은 결국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광명, 우주의 원형(元型)이 그 목적지야. 그곳에는 싸움(우김질)이 있을 수 없네[無諍].영산강물 한강물 섬진강물 압록강물 대동강물 모두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나는 대동강물이다, 한강물이다 하고 우김질하며 싸우지 않네. 더 자세히 알려면 내 저술 ‘판비량론’을 읽어보게나.”

▲화쟁은 일심으로 가는 방편이라고 하는데 일심(一心)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마음 하나에 달려 있네. 마음의 참모습을 깨닫는 순간이 부처가 되는 순간이야. 그것이 일심이네.”

▲원효 스님께서는 중생을 극진히 사랑했다고 들었습니다.

“보살이 물고기라면 중생은 물이야. 이승에서 산다는 것은 전생에서 진 부채를 갚기 위함이네. 그런데 그 부채를 알지 못한 채 소박함과 정직함을 잃고, 삿되고 잘난 체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일, 그들로 하여금 그림자 하나 없고 투명한 맑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일을 평생 함으로써 내 빚을 갚으려 했네. 그러다가 마지막에 떠나가면서는 내 한 몸뚱이를 어둠 속의 중생(들개와 늑대와 미생물)들에게 돌려주고 갔네.”

   
▲ 한승원
소설가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 원효는 자기 시신은 들개들과 미생물들에게 보시를 한 것이다. 원효 앞에 무릎을 꿇고 절했다. 나는 장황한 이야기 하나를 준비했다. 그 말을 뱉어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원효 스님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고, 서쪽 하늘에서 주황색의 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내 가슴도 노을로 인해 타오르고 있었다.

yulsan490@naver.com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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