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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는 영물…울음소리는 깨달음의 기연

  • 새해특집
  • 입력 2017.01.04 15:41
  • 수정 2017.01.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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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불교

▲ 만봉 스님作, 십이지 신장 중 닭신, 미기라 대장. 1977.

새벽녘 어둠을 갈라 아침을 여는 닭은 상서로운 영물로 여겨졌다. 노나라 재상 전요는 닭의 특성을 포착해 “닭 머리의 벼슬은 관을 상징하는 문, 날카로운 발톱은 무, 적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고 싸우는 용,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는 인,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는 것은 신”이라 하여 오덕을 지닌 동물로 표현했다.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로 방위로는 서쪽, 시간으로는 오후 5~7시, 달로는 음력8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문·무·용·인·신 오덕 갖춘
대단히 지혜롭고 총명한 동물

땅·하늘 오가는 경계의 존재
신라 건국신화에 등장하기도

‘줄탁동시’는 닭 관련된 선어
‘천수경’ 군다리보살의 화현

위협으로부터 스님 보호하고
사찰 이름에 닭이 명시되기도

닭은 열두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날개 달린 짐승으로 땅과 하늘을 오갈 수 있다. 닭이 우는 소리는 어둠에서 새벽으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이런 닭을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존재로 생각했다. 죽은 이의 혼령을 위한 굿에서 닭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닭은 생활 속에 있는 친근한 동물이지만 때로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건국신화에서  닭은 금빛 궤짝을 지키며 왕의 탄생과 관련된 동물로 등장한다. “탈해왕 9년(서기65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니 금빛의 작은 궤가 나무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이 궤를 가져오게 해 열어 보니 용모가 뛰어난 사내아이가 들어있었다. …”고 전한다.

불교에서는 닭의 울음소리, 병아리의 부화를 깨달음에 빗댄다.

서산대사는 큰 의문에 부딪혀 고뇌에 빠졌을 때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지리산 암자를 전전하던 서산대사는 낮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일체의 분별이 떨어져 나가 외부 현상이 그대로 마음 자체임을 깨달았다. 닭의 울음`소리가 오도의 기연이 된 것이다. 서산대사는 자신의 저서 ‘선가귀감’에서 수행자가 정진하는 모습을 닭에 비유하기도 했다. 암탉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21일간 알을 품는 것을 보고 “공안을 참구하는 마음이 마치 닭이 알을 품듯…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뚫고 나아갈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학 문답 공안집의 고전 ‘벽암록’에는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나오려면 스스로 부리로 알을 쪼아야 하는데 이를 ‘줄’이라 한다. 그러면 알을 품던 어미닭이 소리를 알아듣고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병아리가 세상에 잘 나올 수 있게 힘을 보탠다. 이를 ‘탁’이라 한다. 이상적인 사제지간의 표현으로 병아리를 깨달음을 향해가는 수행자, 어미닭은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천수경’에는 “나무 군다리보살 마하살”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군다리보살은 인간 마음 속 마귀를 잡아 불성을 지키는 신장과 같다. 혼란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무찌르는 보살이 닭이다.

닭은 깨달음뿐 아니라 지혜와 총명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본생경’의 ‘수탉의 전생이야기’에서 부처님은 어떤 숲의 닭으로 태어나 다른 닭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숲 가까이에 암코양이 한 마리가 살면서 닭들을 교묘히 속여 모두 잡아먹고 말았다. 부처님은 꾀임에 빠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암코양이는 닭에게 아내가 되겠다고 하지만 부처님은 꾀임에 빠지지 않고 게송을 읊어 고양이를 쫓아낸다. 비구들에게 “어떠한 이익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면 마치 저 닭이 그 고양이에게 벗어난 것처럼 그 적의 간사한 꾀에서 벗어난다”는 가르침이 담긴 일화다.

부처님은 물론 고승, 공안집 등에 언급될 정도로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닭은 사찰과도 연관된다. 스님들을 위협으로부터 구하거나 사찰 이름에 닭이 명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재는 폐사됐지만 황해도 장연군에 황룡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만 자고 나면 스님이 한 사람씩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를 모르는 사중 스님들은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한 고승이 지나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방책을 넌지시 전했다. “절에 닭 1000마리를 키우면 해결될 일을 …. 쯧쯧.” 스님들은 닭을 구해 키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닭을 키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닭의 부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닭이 가는데로 쫓아가 봤고 그곳에는 커다란 지네가 죽어 있었다. 스님들을 잡아먹은 것은 큰 지네였고, 닭 1000마리가 달려들어 지네를 잡은 것이었다.

경남 양산의 계원사는 사찰명에 ‘닭 계(鷄)’자를 쓰는 흔치 않은 사찰이다. 범어사 계명봉, 계명암이 닭의 형상, 울음과 관련된 것처럼 계원사로 가는 능선에는 천계암이라는 너른 바위 하나가 우뚝하니 서있다. 마을 사람들이 닭 바위라고 부르는 이 바위 아래에는 삼동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새벽이면 하늘에서 천계가 내려와 이 바위 위에서 울음을 토해 아침을 알렸다. 이 소리를 삼동리의 모든 닭들이 듣고 비로소 새벽 울음을 울었다는 오랜 전설을 전하기도 한다. 천계가 목을 축이던 작은 웅덩이가 남아 있다. 계원사는 현재 닭을 키우지 않지만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웅덩이를 메우지 않고 있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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