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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독립운동가 초월 스님 웹툰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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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9  13: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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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가 독립운동가 초월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웹툰을 제작한다고 한다. 광복절을 즈음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교계의 관심이 벌써부터 집중되고 있다. 은평구가 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선양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9년부터다. 초월 스님이 독립운동 당시 제작한 태극기가 2009년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보수 과정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직후부터 은평구는 초월 스님의 추모재를 비롯해 학술세미나, 진관사 태극기 도로 가로기 게양 등의 사업을 추진해 왔다.

초월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각황사,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 등의 강단서 명성을 떨쳤던 대강백이었다. 그럼에도 초월 스님의 가슴 속에 자리한 것은 오직 하나 독립이었다. 1919년 중국 상해신문에 실린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의 초안도 초월 스님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선언문의 일부만 보더라도 독립에 대한 의지와 포부를 엿볼 수 있다.

‘평등과 자비는 불법의 종지이다. 일본은 겉으로는 불법을 숭상한다고 하면서 지난 세기의 유물인 침략주의·군국주의에 빠져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인류의 평화를 교란시켰으며 그 강포(强暴) 함만 믿고 과거에 은혜를 받은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멸하고, 그 자유를 빼앗고(중략) 7천의 대한승려는 결속하고 일어섰으니 큰 소원을 성취하기까지 오직 전진하고 피로서 싸울 뿐이다.’

일제 경찰의 시퍼런 감시 속에서도 초월 스님은 젊은 사람을 만날 때면 으레 독립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의 설법에 감동한 사람들은 독립의 희망을 안고 만주, 상해로 떠났는데, 길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계를 내려 수지케 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의 가피 속에  ‘무사히 다녀오라’는 당부요, 기도였을 것이다. 초월 스님은 진관사에 주석하면서도 법회에서 모아진 정재를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다. 또한 직접 상해로 건너가 이종욱, 백성욱, 김법윤 등과 함께 불교계의 독립운동 묘책을 강구하기도 했다.  

영화 ‘암살’에서 상하이 피스톨이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고 묻자 안옥윤은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라고 답한다. ‘초월 스님의 일대기’ 웹툰을 계기로 독립운동가가 품었던 뜻을 올곧게 세우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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