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4.29 토 21:31
> 오피니언 > 법보시론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광전 스님  |  chungkwang@yaho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1.09  13:30:2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1년 전쯤 유럽을 한 달 정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자연환경과 건축물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나라 곳곳에 오래된 사찰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듯 유럽의 곳곳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성당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기다려 입장권을 구입해 내부에 들어가 보면,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사를 연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때에는 마침 미사시간이라 신부님과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대부분이 연세 드신 노인뿐이어서 초하루 우리법당의 모습이 떠올라 쓴 웃음이 나왔다. 성당밖에는 성당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 몇 백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정작 성당 안에는 20~30명의 신도만이 초라하게 미사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쩜 이리도 우리 절집의 모습을 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지상에서 본대로 유럽의 성당은 이미 관광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끔 도반스님들과 만나면 우리 절집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난 그때마다 우리가 노스님이 될 즈음엔 아마 스님들이 부업으로 다른 직업을 가져야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20년 전 은사스님을 모시고 미국에서 지낼 때, 은사스님께서는 절의 재정자립을 위해 과일나무를 많이 심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분재를 키우셨다. 그 때 우리 절에 나무를 가꾸는 분을 고용했었는데 그 분은 목사님이었다. 주중에는 우리 절에 와 일하고 주말엔 교회에 가서 목회를 했었다. 교회에서 주는 수입으로는 가정을 꾸릴 수 없어서 우리 절에서 일을 했던 것이었다. 그 당시엔 미국이라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스님들도 부업을 해야 살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백양사는 본사도 형편이 어렵지만 말사는 더 어렵다. 몇 안 되는 수말사 정도에서 공양주도 두고 부전스님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말사는 주지스님 혼자 사는 절이 많다. 그 나마도 요즘은 살기가 어려워 주지가 공석인 절이 생길 지경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문해 보았다. 부처님은 대의왕(大醫王)이자 대법왕(大法王)이셨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아픈 곳을 살피고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다. 오죽하면 천수천안이라, 두 개의 눈과 손으로는 하실 일이 너무 많아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고 천개의 손으로 중생을 보살피신다고 하지 않는가? 반면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는 대부분의 관심이 중생들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쏠려있다. 우리 절에 불사는 어떻게 하고, 누가 절의 주지를 하고 등등. 우리 내부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외부문제는 이익과 관계있는 경우에만 관심을 두어왔다. 그 인과응보가 아닐까? 병원이 환자의 증세와 치료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병원 건물의 치장이나 누가 병원장을 할지 등 병원 내부문제에만 관심을 둔다면 어떤 환자가 그 병원을 찾겠는가? 병원은 환자의 병을 치료해 주는 곳이다. 병원의 존재 이유는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이지, 그 곳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의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다.

달라이라마나 프란시스코 교황은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이다. 그 분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하고 겸손하며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려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이 분들은 훌륭한 종교지도자이기도 하지만 노련하고 세련된 정치가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종단에서 석가여래 부촉법 몇 세 운운하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진부한 지도자가 아닌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노련하고 세련된 종교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종교가 종교 내부의 논리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통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절집을 위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필요해 절집을 찾아야 절집의 생명력이 유지된다. 이제 고민해보자.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광전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chungkwang@yahoo.com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불자 2017-01-13 11:04:08

    세태의 본질을 평이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인 것 같다. 불교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도 세상사람의 눈높이와 국민의 지적수준에 못미치는 일부 성직자와 재가신도의 막말과 행태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뛰어난 수행스님과 신도를 발굴해 등불로 삼는 것이 시급한 것같다.신고 | 삭제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편집국 : 02-725-7014  |  광고문의 : 02-725-7013  |  구독신청 : 02-725-7010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