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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중의 ‘노래가 없고 보면’

기자명 신현득

일제 징용 피해 금강산에 머물며
노래로 어우러질 수 있음을 노래

노래가 없고 보면 무슨 재미로
냇물이 돌 틈으로 흘러 다니며
노래가 없고 보면 무슨 맛으로
바람이 숲 사이로 지나다니랴.

노래가 없고 보면 귀뚜리들이
기나긴 가을밤을 어이 새우며
노래가 없고 보면 기러기 떼가
머나먼 하늘 길을 어이 나르랴.

노래가 없고 보면 무슨 흥으로
달밤에 고깃배를 물에 띄우며
노래가 없고 보면 무슨 재주로
여럿의 힘을 모아 터를 다지랴.

한국 현대문학사는, 특히 한국 현대아동문학사는  윤석중 시인(1911~2003)을 가진 것이 자랑스럽다. 세계 아동문학사를 다 살펴도 동시, 동요의 질과 양에서 윤석중과 견줄 만한 시인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부터 아동문학 연구자들은 윤석중을 세계 제일의 동요 시인, 세계 제일의 동시 시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책상 위의 오뚜기 우습구나야’의 동요시 ‘오뚜기’(박태준 곡)는 윤석중 시인이  열네 살이던, 서울 교동보통학교 5학년 때 소파의 ‘어린이’지 1925년 4월호에 발표된 시작품이다.
 

세계 제일의 동요시인 평가
작품 질과 양에서도 압도적
한국인 애창 동요로도 으뜸
일제에 협력치 않은 애국자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에서 시작되는 ‘새 나라의 어린이’(박태준 곡)는 광복을 맞던 날 밤 윤석중 시인이 해방의 기쁨 속에서 지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정순철 곡)는 광복이 되고, 첫 졸업식에 내놓은 노래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의 신명나는 ‘어린이날 노래’(윤극영 곡)는 광복 후 첫 어린이날에 내놓은 노래다. 스승의 날이 정해지자 윤석중 시인은 ‘스승의 날 노래’(김대현 곡)를 내놓았다.

‘고향 땅’ ‘기찻길 옆’ ‘달맞이’ ‘달 따러 가자’ ‘산바람 강바람’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윤석중 시인의 동요를 부르면서 자랐다.

1988년에는 ‘윤석중전집’(웅진출판사) 30권이 나왔다. 그의 동요시, 동시가 몇 편이나 될까는 전집의 부피로 짐작이 된다. 그의 출생일 5월25일(1911년)의 숫자에 맞춘 ‘윤석중 동요 525곡’(1979, 세광출판사)이 있다.

동요시를 쓰면서 아흔 넘도록 살았던 윤석중 시인은 자신을 일컬어 ‘노래 나그네’라 했다. 앞의 시 ‘노래가 없고 보면’은, 노래 나그네 윤석중 시인이 자신을 있게 해준 노래의 효용을 짚어본 작품이다. 노래가 없고 보면 냇물이 돌 틈으로 흘러 다닐 재미가 없다고 노래했다.  노래가 없고 보면 바람이 숲 사이로 지나다닐 맛이 없다고 노래했다.

노래가 없고 보면 귀뚜라미가 기나긴 가을밤을 어찌 새우겠나, 새울 수 없다. 노래가 없고 보면 기러기들이 먼 하늘 길을 어찌 날겠나, 날 수 없다. 노래가 없고 보면 어부들이 달밤에 고깃배를 띄울 수 없다. 노래가 없고 보면 여럿이 힘을 모아 터를 다질 수 없다.

노래가 있고 보니 이 모두가 이루어지고, 세상이 어우러져 살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이 시는 노래 나그네 윤석중 시인이 일본 유학을 갔다가, 징용 영장이 나오자 고국으로 돌아와 금강산에 숨어서 쓴 작품이다. 이걸 알면 이 작품의 역사적 의미도 알게 될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명사들은 어쩌지 못해 몇 마디의 말, 몇 줄의 글로 일제에 협력하는 척한 예가 있다. 그러나 윤석중 시인은 단 한 마디의 말로나, 글로나, 행동으로도 일제에 협력한 일이 없었다. 꼿꼿하게 우리 글, 우리말을 지키면서 노래 나그네의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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