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장군의 운명과 인과법

동전 하나로 병사들 사기 최고치 끌어올리다

▲ 그림=근호

한 장군이 열 배나 되는 적과 싸우게 되었다. 전투가 있던 날, 전장으로 가던 도중 장군은 행군을 멈추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조처한 다음 가까운 데 있는 사찰을 찾았다. 그 사찰은 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영험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인간의 자유의지 활용해
운명의 신 속여 전쟁승리
결과에 중심을 두는 운명
과정에 중심을 두는 인과

장군은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복전함에 시주하고나서 부처님 전에 향불을 피워 올린 다음 정중하게 세 번 절했다. 삼배를 올린 그는 좌복 위에 단정히 앉아 잠시 선정에 들었다.

장군이 병사들에게로 돌아왔다. 그의 눈은 한편으로는 평온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한 의지로 빛났다. 장군에게서 풍겨나오는 강력한 아우라를 본 병사들의 가슴은 장군에 대한 믿음과 충성으로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여!” 하고 장군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말했다. “운명이 우리 앞에 닥쳤고, 우리는 출정했다. 열 배나 되는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생각해보면 우리의 운명은 철벽처럼 견고하고, 가시덤불처럼 가혹하다.

그러나 병사들이여, 삶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것이다. 나는 조금 전에 법당에서 좌선하는 동안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허공을 가득 채우는 빛 속에 나타난 그 미래는 놀랍게도 드높이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 있는 운명은 살든가 혹은 죽든가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전까지 열 배나 되는 적을 이길 수는 없다는,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운명의 신은 장난을 좋아한다. 그는 여늬 사람은 상상하지 못하는 기이한 방식으로 비논리적인 결과를 창출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운명의 신이 어떤 방식으로 오늘 전투의 결과를 예측 불가능한 쪽으로 뒤집을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대들과 더불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살기를 잊고 오직 죽기로 싸우고자 싶을 뿐이다.

병사들이여, 비록 오늘 죽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삶의 끝은 죽음이다. 그를 기억하며, 나는 삼십 년 후에 닥쳐올 죽음을 오늘로 앞당기려 한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오직 오늘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병사들이여, 나는 조금 전 법당에서 진실로 죽으면 진실로 산다는 진리를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철저하게 죽으심으로서 눈부신 붓다로 다시 태어나셨다. 병사들이여, 부처님처럼 우리도 오늘 죽자. 철저하게 죽자. 그리하여 다행하게도 내일 우리가 살아 있다면, 병사들이여, 그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나와 함께 죽음으로써 싸운 그대들의 영광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법당에서 본 영광스러운 내일을 점쳐보려 한다. 그럼으로써 나의 영광을 그대들과, 국민들과, 조국과 나누려 한다.”

병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장군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어 높이 쳐들었다.

“이 동전을 하늘로 던지도록 하겠다. 동전의 앞이 나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뒤가 나오면, 억울하지만,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장군은 비장한 표정으로 동전을 하늘 높이 던졌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동전의 궤적을 따라가며 주시했다. 동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군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던 군사들이 떨어진 동전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보니 동전은 앞면이 위로 올라와 있었다. “앞면이다! 우리가 이긴다!”

기쁜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장군이 동전을 받아들어 앞면을 높이 쳐들어 보였다. 그는 동전을 흔들며 외쳤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 말을 병사들이 따라서 외쳤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렇게 사기를 한껏 북돋은 다음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고, 얼마 후 벌어진 전투에서 비록 쉽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은 승리했다.

그날 밤, 승리를 축하는 잔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수석 장교가 장군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장군님이 병사들은 속이셨을진 몰라도 저를 속이진 못하십니다.”
“자넨 알고 있었단 말이지?” 하고 장군이 빙긋 웃었다. 장교가 말했다.
“예, 장군님.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동전은 양쪽이 모두 앞면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장군이 수석장교의 등을 툭치며 말했다.
“자넨 운명의 신보다도 더 현명하군그래. 아무려나, 난 자네를 속이진 못했지만 운명의 신을 속일 수는 있었어.”

수석 장교가 웃으며 물었다.

“과연 운명이 있을까요?”

장군이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있겠지.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운명은 있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야.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그리고 아마도 자네 같은 사람에게는 말야.”

2에 3을 곱하면 6이 된다. 이것은 수학 법칙이고, 이 법칙이 사람살이에  적용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이 된다. 2×3=6이라는 수학 법칙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과법 또한 고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다행하게도 인과법은 한편으로는 수학 법칙과 같지만 다른 면도 있다. 인간에게는 수의 세계에는 없는 자유가 있다. 자유가 없는 수의 세계에서 2에 3을 곱하면 항상 6이 산출되지만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계에서는 그 답이 -6이 될 수도 있고, +27이 될 수도 있다.

개변이 불가능한 인과법과 개변이 가능한 인과법의 차이는 운명이 2×3의 답인 6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인과법이 그 과정인 2×3에 중점을 두는 데세 생긴다.

인과법은 6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으로서의 2에 어떤 수를 곱할지를 결정하라는 의미에서 설해진다. 예화로 돌아가, 장군에게는 매우 불리한 조건, 예컨대 -9가 주어져 있었다. 그는 이 조건에 9을 곱하여 -81를 산출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의 군대가 적의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눅들어 있었다면, 즉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유를 활용했다. 그는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평상적인 생각으로서의 9 대신 창의적인 생각으로서의 -9를 떠올렸다. 그럼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최고치로 끌어 올려 -9×-9=81이라는 결과를, 즉 믿을 수 없는 승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 불제자로서의 우리가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금 닥쳐 있는 조건이 니라 그 조건을 어떻게 개변해나갈까를 묻는 뜨거운 의욕과 그 의욕으로부터 샘솟아나는 신선한 창의성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