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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이경훈씨-하

기자명 법보신문

긍정으로의 전환 계기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
생 마칠 때까지 108배

▲ 67·월정인
아침은 힘들었다. 그날 하루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 예불문부터 주력까지 아침마다 108배를 포함해 30분에 이르는 수행과 기도를 하는 게 쉽진 않다. 그래도 했다. 오히려 수행을 하다보면 정신이 맑아져 좋았다.
 
간혹 부득이한 경우가 생기긴 했다. 출장을 갔을 때 같은 방을 쓰는 분이 불자가 아닌 경우다. 내가 절을 하면 상대방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만큼 웬만해선 일과수행을 빼놓지 않았다.

일과수행을 거듭하면서 달라진 부분은 적지 않다. 가장 큰 변화는 ‘긍정으로의 전환’이다. 남편과 아이들도 나에게 “달라졌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변화는 나보다 주변에서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달라보였다.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외려 고마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들은 집에서 아침마다 절을 하는 아내 혹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키운 것일까.

성품 고운 큰 아들은 정토회 국제부에서 6개월 동안 직접 경영에 동참했다. 그 경험을 살려 고려대 대학원에서 ‘조직에서 영성의 실행 기제에 대한 연구, NGO J 단체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정토회의 경영방식에 대해 풀어내기도 했다. 둘째도 참 성품이 곱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심지어 손주들까지도 찬찬히 보면 이유 없는 행동이 없었다. 모두 입장을 바꿔보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은 없었다. ‘나’를 중심으로 사고했던 일상이 아침 108배와 예불을 통해 점차 내려놓게 되자 ‘나’가 있던 자리에 ‘너’가 들어오게 됐다고 할까.

부산지역 불자 교직자들 연대모임이 있다. ‘푸루나’다. 푸루나 정기법회에서 부산 대광명사 주지 목종 스님을 만났다. 불자로서 내 인생에서 제2의 불교인생을 출발하는 계기가 됐다. 정토회를 통해 수행과 나눔의 가치에 눈을 떴고, 대광명사를 통해서는 참나를 찾는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여정에는 고맙게도 남편이 동행했다. 남편은 늘 내가 절할 때 지켜만 봐왔다. 손주들을 돌보게 되면서 절에 나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애를 쓴다. 절에 가서 항상 스님의 법문을 녹음해 오는 것이다. 남편의 정성은 내 신심과 원력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잠이 안 올 때는 언제나 남편이 녹음해 온 목종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감기지 않을 것만 같은 눈꺼풀이 법문을 듣다보면 영락없이 감긴다.

부처님 설법에 자질구레한 번뇌 부스러기들이 사라지는 것일까. 여러 생각들로 잠 못 이루던 밤이 짧아졌다. 단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무척 개운하다. 잠결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목종 스님이 목청을 높여 설명하시는 ‘참나’는 내 일상이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알게 모르게 법문이 일상에 녹아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법문이 어느새 메마른 신심에 단비처럼 나를 적시고 있다.

언제나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참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도착지에 도달하리라 확신한다. 정년퇴임을 한 뒤 손녀를 돌보는 일도, 유치원에서 이야기 봉사하는 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음이다. 가장 희망적인 것은 우리는 몇 천겁, 몇 만겁이 걸려도 결국은 모두가 목적지인 참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모두에게 공평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즈음 이 글을 썼다. 나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열심히 살았음을 되돌아본다. 그래도 틈틈이 취미생활도, 운동도 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누군가 어떤 운동을 하는가 물어보면 나는 웃으며 108배 운동이라고 말한다. 누가 뭐래도 108배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년이 되면 좋다고 소문난 ‘운동’을 찾느라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도반들이 많다. 그런 분들에게 나는 당당히 108배를 권한다.

나 역시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이 생을 다하는 날까지 매일 아침 108배를 올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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