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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해, 동물의 권리

기자명 심원 스님

올해는 닭의 해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조합으로 표현되는 60간지 중 34번째 정유(丁酉)년이라 닭의 해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닭들이 살처분 되어 가히 ‘닭의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그래서 올해는 닭의 해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16일 처음 발생한 고병원성(H5N6형 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어느 정도 진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AI에 감염되었거나 예방적 조치로 인해 살처분 된 가금류는 총 3123만 마리로 집계됐다. 또 매일 평균 60만 마리가 몰살돼 사상 최단기 최악의 피해를 기록했다. 애초 AI가 대통령 탄핵정국과 촛불시위 여파로 한 줄짜리 기사로 등장했을 때, 필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잠시 어느 한곳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끝나길 간절히 발원했다. 그런데 그 불길한 예측은 어김없어 말 그대로 사상초유의 살처분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몇 년 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소와 돼지 등 네발 달린 가축들이 무더기로 생매장되던 지옥 같은 광경이 떠올라 이번 사태의 진행 추이를 관심 있게 보았다. 그런데 보도되는 기사내용에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어 가고 있는데도 언론의 관심사는 죽어가는 생명이 아니라 ‘살처분 보상금 2300억 웃돈다’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했다’ 등 경제적인 손실에만 초점을 뒀다. 이제는 ‘달걀대란 달걀수입’이라는 말을 보도의 중심에 두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AI와 대량 살처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주된 원인으로 ‘공장식 대량축산방식(Factory Farming)’에 있다고 지적한다. 1930년대 달걀의 대량생산을 위해 도입된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 사육방식은 가로 세로 50cm의 닭장을 층층이 쌓아 대규모로 달걀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닭 한마리가 겨우 A4용지 3분의 2정도의 공간에 밀집된 채, 오로지 달걀만 생산한다. 뿐만 아니라 달걀을 많이 낳게 하려고 밤에도 전등을 켜 두었다.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곳에서 닭들은 잠도 못 자고 알만 낳아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닭들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무방비로 감염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종(種)의 생명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드는 종우월주의(Speciesism)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동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정당화해 온 오래된 논리이다. 덕분에 인간은 단지 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 된 그 많은 생명들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과연 그래도 되는 걸까?

이 악순환을 벗어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 육식문화를 탈피하여 가축을 사육하지 않아도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다. 그렇다면 우선 사육환경이라도 개선하여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2008년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복지를 개선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통과시켜 배터리 케이지 등 공장식 형태의 밀집사육을 개선하였다. 우리보다 먼저 구제역과 광우병 등을 겪은 유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2013년 ‘동물복지농장’등과 같은 대안적인 사육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면서 동물복지축산농장인증제와 축산물인증표시제를 도입했으나 실행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동물도 생명체라는 최소한의 합의라도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이, 다른 살아 있는 존재를 희생시킨 대가로부터 나온 것이어서는 안 되며, 진정 나은 삶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똑같이 해당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 마크 베코프의 ‘동물권리 선언’이 실현되고,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정유년 새해, 닭의 절규에 한없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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