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에서 사찰 다비장에 화장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검토돼 왔다. 사찰에서 다비의식을 통해 불교적으로 삶을 회향하고자 하는 스님들이 많지만 입적한 모든 스님들에게 다비의식을 제공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비의식에 소요되는 막대한 돈은 사찰에 재정적인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다비의식 3천만원 소요
사찰 경제적 부담 가중
소규모 다비장 건립할땐
스님·신도 등 모두 혜택
스님들의 다비의식을 전문적으로 진행해 온 연화회에 따르면 한 번 다비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00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이렇다보니 종단에서 주요소임을 맡았거나 문중을 대표하는 스님이 아닌 경우 입적한 이후 사찰에서 다비의식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최근 5년간 조계종 사찰에서 다비를 진행한 경우는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계종에 따르면 2012~2016년까지 사미·사미니·비구·비구니를 합쳐 179명의 스님들이 입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사찰에서 다비의식을 진행한 스님은 30명 안팎으로 17%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조계종 내부에서도 사찰 다비장에 화장시설을 갖춰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반 스님들도 다비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다비장에 화장시설을 건립하는 문제는 재원마련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데다 스님들의 관심부족으로 논의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따라서 최근 사회적으로 화장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일반스님들에게도 다비의식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찰 다비장 이용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장례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사찰 다비장에 1~2기의 화로를 갖춘 소규모 화장시설을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정식 화장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법령을 피할 수 있고, 초기 건설비용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례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보급된 화장시설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발된 ‘대차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개발된 ‘캐비넷’ 방식을 도입할 경우 설비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대차식은 시신을 실은 대차가 화장로에 들어간 뒤 완전히 연소된 이후 다시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대차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장소로 이동해 유골을 수습하는 데는 장점이 있지만 냉각기, 백필터 등 많은 주변장치가 필요해 공간도 크게 차지한다. 반면 캐비넷 방식은 대차가 따로 없고 화장과 유골수습이 한꺼번에 진행된다. 화장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고 배기관 외에 특별한 주변시설이 필요 없어 공간 활용에도 효과적이다.화장로 1기 설치비용도 캐비넷 방식은 대차식의 20~30%인 3억원 수준이어서 초기설치 비용에 대한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
사찰 다비장의 경우 일반 화장장과 달리 법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등에 따르면 정식 화장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부대시설뿐 아니라 공해방지 및 오수처리 시설 등을 갖춰야 하고,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 ‘수도법’ ‘문화재보호법’ 등 20여개가 넘는 관련법령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사찰에서 다비의식을 진행할 경우 이에 대한 예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다비의식에 대한 세부내용이 없어 스님뿐 아니라 사찰신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다비의식이라면 이렇다 할 법적제약도 없다. 따라서 사찰 다비장에 소규모 화장시설을 갖추고 스님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비영리방식으로 다비의식을 진행한다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화장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불교 포교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비의식과 더불어 진행되는 49재와 천도재 등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 사찰재정확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장례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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