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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은유와마음연구소대표 명법 스님

철학과 실천, 학문과 수행으로 불교와 현대 잇는 보현행원의 다리

▲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에 전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쓰고 해석해야 한다. 명법 스님에게 그 길은 이번 한 생을 바칠 만한 의미있는 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 순간도 세상과 괴리된 적 없었기 때문이다.

원허명법(圓虛明法) 스님을 수식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은유와마음연구소는 명상과 은유스토리텔링이라는 방법을 통해 심리적 문제에 접근하고 개개인의 자기치유와 성장을 돕는 곳이다. 관련 프로그램 개발과 지도자 양성 등이 병행된다. ‘지도법사’소임을 맡고 있는 ‘무빙템플’은 새로운 형태의 불자 모임이다. 의례나 형식에 치중한 신행활동보다는 경전공부 등 기존과는 다른 법회 모델을 제시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불자다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은유·명상으로 자기치유 시도
새로운 법회·신행 모델도 제시
문화운동단체 미르문화원 개원
“현실서 부딪히는 문제에 주목
불교-현실연계 학문의 출발점”

고어로 된 경전 현대인과 괴리
‘혼자만의 해탈’ 구할 수 없어
현대에 불교 전하는 교학 선택
‘선-명상’은 불교와 현대 접점
“지금의 명상 옳은 방향인가
점검하고 실험하는 노력 필요”

최근에는 이 두 모임이 함께한 복합문화운동단체 ‘미르문화원’을 개원했다. 한국 전통 활법 및 태극권, 요가 등을 통해 심신을 닦는 수행단체 ‘땅과얼’, 재해와 기아를 비롯해 기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 및 기부활동을 전개하는 실천단체 ‘삶ㅇ’이 미르문화원 안에서 함께 활동한다. 30년 지기를 비롯해 오랫동안 고민을 나눠온 대학 후배들의 뜻이 모인 결과다. 이들의 중심에는, 또 다른 수식어 ‘수행자’이자 ‘학자’로 불리는 명법 스님이 있다.

이쯤 되면 조금 헛갈리기도 한다. ‘지향점이 어디일까.’

“언제나 과거보다는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 종단의 과제, 불교의 역할같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더 주목하죠. 학문의 출발점도 불교와 현실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였고, 그 해결법을 철학, 미학, 심리학 등에서 찾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까지 모색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바라보는 이가 세상 밖에 있을 수는 없다. 아파트단지에서 무빙템플이 시작됐듯 미르문화원도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의 이력도 지금의 위치와 비교적 잘 어울린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연구로 석사학위를, 송대의 예술과 선종의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미스컬리지에서 1년 반 동안 박사 후 연수과정을 거치며 현대예술과 선의 관계를 조명했다. 서울대, 동국대, 홍익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이후 심리치료, 의식의 문제 등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잘 다져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자의 전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겹 더 들춰보면 의문 부호를 삽입해야 할 만한 마디들이 눈에 띈다. 석사학위 취득 후 1993년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사승가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서울대대학원 박사과정에 복학했다.

▲미학을 전공하고 곧이어 출가했다.
“전공과 출가가 직접적으론 관련이 없다. 학부 때부터 전공인 불문학보다는 철학과 미학이 흥미로웠을 뿐이다. 사실은 동양철학, 그리고 수행이 주된 관심사였다. 특히 수행을 하면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목했다. 하지만 ‘선정’ 수준의 체험을 한다고 해서 우리 삶의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 설명해 줄 스승이 필요했고 나를 본격적으로 바꾸기 위한 선택이 불가피했다.”

출가 후의 생활은 일시적인 수행체험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방법부터 달랐다. ‘일하지 않는 중은 중도 아니다’는 서릿발 원칙의 스승, 국일암 불사를 이끌어 비구니계에 명성이 자자했던 은사 성원 스님 회상에서의 수행은 몸이 부서질 듯 고된 노동의 일상이었다. 생각했던 수행과는 달랐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상의 노동이 가져오는 변화였다. 에너지가 차올랐고 몸이 반응했다. 분명한 변화였다.

“은사스님은 말로 가르치는 법이 없었지만 그랬기에 더 알고 싶었고 스스로 찾아 나서게 만드셨죠. 은사스님의 가르침이 선과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훨씬 오래 세월이 지나서였습니다.”

단단하게 담금질된 행자생활을 거친 후 운문사승가대학에서 만난 경전은 퍼 올려도 끝을 알 수 없는 샘물 같았다. 하지만 경전의 언어는 오늘날의 말, 글과는 너무 달랐다. 스님도, 재가자도 그 가르침의 진짜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상의 언어로 풀고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했다.  세상은 고통으로 뒤덮여 있는데 절집 안에서 혼자만의 해탈을 구할 수는 없었다. 출가 후 한결같이 품고 있던 ‘선방’이라는 목적지를 다시 점검했다. 식음을 전폐할 만큼 치열했던 고민을 마무리 지은 것은 화엄반 때였다. 세상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불교가 아닌 미학이 박사 주제다.
“선종이 송대 문인들의 예술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가 초점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송대라는 시대 배경에서 사대부와 선승들의 활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야 했다. 사대부의 예술과 선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미적 체험과 선적 체험의 상관성을 경전과 어록에서 찾았고, 회화와 시를 통해 그것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도 찾았다. 결국 불교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예술적 체험이라는 분야에서 살펴본 것이다.”

불교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찾는 첫 작업이었다. “처음부터 목표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를 세상에 전하겠다는 원력은 자연스럽게 방향타를 움직였고 풀어야할 문제를 향해 항로를 잡았다. 박사논문을 마칠 무렵, 한국미와 불교에 대한 세미나에 발표자로 초청되었다. 선과 예술, 동양미학에 대한 논의는 하나같이 낭만적인, 신비화된 담론이었다. 지금까지 연구했던 것과는 달랐다. ‘선불교가 현대화 되면서 변형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현대사회에서 형성돼 있는 선불교와 예술에 대한 담론이 무엇인지를 우선 확인해야 했다. 미국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의 주제로 정하고 오리엔탈리즘에 주목했다.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서구의 시선, 특히 선을 일본문화의 정수로 선전하려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사회에 받아들여지면서 형성된 프레임이 중국의 문화, 나아가 아시아의 문화를 해석하는 데 적용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점이 오히려 우리 사회에 역수입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스스로도 선불교에 대한 추상적 담론에 익숙해져 버렸다는데 있었다. 또 다시 논문을 썼다. ‘서양 현대예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과 오리엔탈리즘’이 잇따라 발표됐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밖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우리 속에, 우리 스스로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현대화라는 이름,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선이 해석되고 체험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선의 변형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적용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나.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가 체험화 되는 현상은 세상과, 현대인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변화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두참선에 대한 해석조차 변형된 측면은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방향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불교가 전하는 궁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변형이든, 적응이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파악해야만 그 다음을 고민할 수 있다.”

▲선수행과 명상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과 같은 명상이 우리의 삶을 정말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방법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깨달은 선사가 다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명상을 한다면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깨달음 지상주의를 비판했던 것과 똑같은 문제가 명상에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때의 그 파장은 불교도 비껴갈 수 없다.”

결국 연결고리 찾기의 연장선이다. 불교와 현대사회는 선과 명상이라는 지점에서 소통의 창을 발견했다. 불교는 명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진입의 통로를 찾았고 현대인들은 선을 ‘오래된 미래’라 여기며 열광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이라 여겼던 통로에서 역류가 일어난 것일까. 선은 현대사회의 잣대로 평가되고 불교로 포장된 명상은 체험프로그램으로 여겨지고 있다. 명법 스님은 그 통로에서 역류가 아닌 교류가 이뤄지기 위한 다리를 만들고 싶었다. 학술적, 이론적 분석과 규명만으로는 부족했다. 무빙템플과 은유와마음연구소는 문제를 개선하고 가능성을 찾아가는 활동무대다.


▲ 명법 스님은 2008년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받았다.

▲무빙템플은 법회모임인가.
“경전 공부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대안을 찾는 새로운 신행 모임이다. 불교사상의 현대적 적용을 실험하지만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경전공부를 함께 하며 불교적 관점들을 현실 삶에 적용해보도록 한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은유와마음연구소의 역할은.
“은유스토리텔링이라는 심리치료의 기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보다는 사람을 보는 눈,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은유스토리텔링은 상담자가 피상담자의 변화를 목적으로 진단과 처방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피상담자를 바라보는 상담자의 자세, 관점을 바꿈으로써 피상담자 심리상태의 변화에 함께 동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배워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길 바란다.”

미학에서 출발한 학문의 여정은 선, 오리엔탈리즘, 심리학, 심리치료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서양을 오가고 전통과 현대, 이론과 실천 사이를 끝없이 넘나들고 있다. 서양철학계에서는 동양철학자로, 불교학계에서는 사회학자로, 실천운동분야에서는 이론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고 불교는 사회를 외면할 수 없다. 철학은 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다리가 필요하고 다리가 되기 위해 끝없이 양쪽을 오가는 이유다.

▲처음부터 학문과 실천의 로드맵을 갖고 시작한 것인가.
“아니다. 그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주목했고 발견되는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고 싶었다. 다만 이론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또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을 뿐이다. 그렇게 의식과 학문이 확장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지향점은 뚜렷한가.
“처음과 마찬가지다. 불교와 우리의 삶, 현실을 어떻게 이어줄 것인가. 불교를 어떻게 전하고 그 안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해줄 것인가이다.”

▲대안을 찾았는가.
“의식의 변화, 철학의 변화다. 철학은 현실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자 변화의 매듭이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철학이 바뀌면 삶, 현실의 모습이 바뀐다. 현대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이 지배해 왔다.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단어를 중첩된 의미로 해석하는 ‘아재개그’까지도 그 뿌리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이 깔려있다. 따라서 어떤 철학을 갖는가는 어떤 사회, 어떤 세상을 만드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학자의 의무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행자라면 나로부터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력을 가져볼만 하다. 그 원력을 품은 학자이자 수행자 명법 스님은 그 스스로가 ‘다리’가 되고 있다.

▲ 지난해 10월 열린 복합문화운동단체 ‘미르문화원’ 개원식.

“‘보현행원품’이었습니다. 교학자를 결심했을 때 이 또한 수행자의 길이라는 확신을 ‘보현행원품’에서 찾았습니다. 수행자의 삶을 세상과 연결하는 길이 보현행원의 길이었습니다. 다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입니다.”

스님은 여전히 고민한다. “스님 책 너무 재밌어 하룻밤에 다 읽었습니다” 인사를 들으면 ‘내 글이 사유의 주제를 던져주지 못한 것 아닌가’를 생각한다. 경전공부 모임에는 쉽고 편하게 읽는 경전 재해석이 아닌 불교의 철학적 해석들이 잘 전달되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앞으로 더 많은 접점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스님은 더 많은 다리를 놓기 위해 더 바쁘게 양쪽을 오가야할지도 모른다. 이번 한 생을 바칠만한 일이지만, 이번 한 생을 다 바쳐도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 튼튼한 다리를 건너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명법 스님의 정토 아닐까.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현대 언어로 불교 전해…불자의 길 새롭게 제시

내가 본 명법 스님

효신 스님 전 교육원불학연구소 상임연구원=운문사승가대학에서 명법 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출가 후 갖고 있던 고민들을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학인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문학이나 철학 등 다방면에 풍부한 소양을 갖추고 계셨기 때문에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표현과 언어를 사용하셨다. 이런 능력이야 말로 요즘사회에 가장 필요하고 앞으로도 더욱 중요한 요건이 될 것이다. 스님은 학제 간 연구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불교와 다양한 학문의 연계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훌륭히 해낸다. 스님이기 때문이 아닌, 실력 있는 학자로서 학자들에게 더 존경받는 스님이다.

정복주 무빙템플 회원= ‘미술관에 간 붓다’를 읽고 스님이 강의하는 공부모임을 찾아가게 됐다. ‘금강경’과 명상 등을 배우며 무빙템플에 참여했는데 새로운 불교와의 만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불자였지만 사찰에서의 신행 활동은 언제나 기도 열심히 하고 제사 잘 지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불교대학도 다녀봤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무빙템플에서는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학문적인 깊이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도 제시됐다. 소소하게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것부터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까지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고 내 자신이 불자임이 더욱 자랑스러워졌다. 사실 무빙템플에서는 인등도 켜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늘 편안하게 대해주고 조금이라도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 애쓰시는 것이 고맙지만 어떻게 운영을 하고 생활 하는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현중 머니투데이 부장=처음 명법 스님을 만난 것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목동 국제선센터였다. 이후 ‘미국부처님은 몇 살입니까’라는 책을 보고 스님의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불자로서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배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분이 참다운 스승이라는 점에서 스님은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함께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종교가 갖는 기복의 측면이 공공의 영역 속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가의 문제는 현대 사회가 갖는 종교의 역할인데 은유와마음연구소나 무빙템플 등은 그런 고민을 풀어내는 장이 되었다. 스님과 함께 이런 문제를 모색하면서 불자로서, 그리고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부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불자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는데 스님을 보면서 불교와 인문학의 결합이 해법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더욱 많은 부분에서 스님의 활동을 돕고 싶다.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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