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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대중과 함께 하는 삶-상

“육화승단의 대중수행에서 최우선은 화합입니다”

▲ 불광산 대중들이 2014년 새해를 맞아 대중 울력을 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붓글씨를 쓸 때 ‘나는 대중 속에 있다(我在衆中)’ ‘대중 속에 내가 있다(衆中有我)’라는 글을 자주 썼는데 이 역시 자신 스스로에 대한 기대라고도 하겠습니다. 승가를 본래 ‘화합의 무리(和合衆)’라고 부르는데 소위 말하는 ‘육화승단’으로 불교의 교단은 바로 이 ‘화합’에 의거하여야 합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은 단체 속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화합(和)을 숭상한다(尙)’가 바로 화상(和尙)입니다.”

빈승은 항상 대중 속에 있었고 대중 속에 제가 있었습니다. 혼자의 즐거움보다 대중과 함께 즐거운 것이 가장 수승한 일입니다.

빈승은 어려서부터 일대일 개인적인 왕래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개인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단체 생활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어려서 집에 형제자매가 많아 마치 단체와도 같았고 출가해서는 승단 속에서, 큰방에서 대중과 잠을 자고 수백 명이 함께 발우공양을 했으며 조석예불도 보통 100~200명 정도가 함께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내는 생활에서도 아주 즐겁게 지냈습니다.

대만으로 건너 온 이후 아동반, 학생회, 합창단, 홍법단, 문예반, 보습반과 염불회의 남녀노소 신도들과 함께 하면서 대중을 벗어나지 않고 날마다 함께 생활했습니다. 40세에 불광산을 개산(開山)하면서 더욱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매일 찾아오는 손님들 외에도 사중에서 함께하는 승속의 사부대중이 100명에서 1000명이 넘게 되면서 저는 더욱 더 대중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빈승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어디로 저를 데려가 달라고 남에게 운전을 부탁해 본 적이 없었으며 저의 위치를 남들이 5분이라도 모른 적이 없었습니다. 매번 차가 움직이면 차속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했습니다. 예전에는 고속철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고 수시로 타이베이와 가오슝 남북으로 왕래해야 했습니다. 가오슝에서 제가 출발을 하면 제자들은 바로 전화를 해서 타이베이에 알려주었는데 만약 길에서 차가 고장이 나거나 시간을 지체하게 되어 타이베이에 도착하면 어떻게 30분이나 늦었냐고 제자들이 바로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을 ‘속달우편’이라고 스스로를 풍자하였고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아지면서 고속철을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도 하면서는 ‘특송’으로 바꾸었습니다.

단체라고 하는 팀워크는 빈승이 어떤 곳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저는 붓글씨를 쓸 때 “나는 대중 속에 있다(我在衆中)” “대중 속에 내가 있다(衆中有我)”라는 글을 자주 썼는데 이 역시 자신 스스로에 대한 기대라고도 하겠습니다. 천성적으로 대중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활동인 대중수행을 좋아하는데 빈승 일생의 살아온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가를 본래 ‘화합의 무리(和合衆)’라고 부르는데 소위 말하는 ‘육화승단’으로 불교의 교단은 바로 이 ‘화합’에 의거하여야 합니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은 단체 속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화합(和)을 숭상한다(尙)’가 바로 화상(和尙)인 것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단체가 어떻게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중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불광산의 종지(宗旨)는 ‘문화로 불법을 널리 펼치고, 교육으로 인재를 키우며, 자선으로 사회를 복지하고, 대중수행으로 인심을 정화한다(以文化弘揚佛法 以育培養人才 以慈善福利社會 以共修淨化人心)’ 등 네 가지입니다. 네 가지 종지에서 앞의 세 가지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네 번째 ‘대중수행으로 인심을 정화한다’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빈승이 금생에서 지은 모든 건축물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서 지은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불학원인 총림학원을 남성학부와 여성학부로 나누어 동서지역으로 각기 따로 지었습니다. 그 가운데 신도들이 모이는 장소를 거쳐야만 합니다. 비록 남녀 대중이 살고 있지만 심지어 다리를 건너가야 하기 때문에 피차간에 서로 이름을 알기도 어렵고 서로 왕래를 하지 않습니다.

남회근(南懷瑾 : 중국현대 철학자이자 불학대가. 역자 주) 선생이 불광산에 와서 불광산의 산세지형이 마치 한 송이 난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불광산은 마치 손의 손가락처럼 다섯 줄기 산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 동쪽 산은 남성대중들의 지역이고 서쪽의 줄기는 여성대중들의 지역입니다. 그 가운데 대웅보전과 신도들이 다녀가고 숙식하는 공간인 조산회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대웅보전 뒤편으로 참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선방이 있어서 좌선을 할 수 있으며 염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염불당이 있어서 날마다 염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외에 동떨어진 곳에 육아원과 양로원이 위치하고 있으니 각자가 자신의 구역을 갖고 모두가 단체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 중국대륙 총림의 건축구조는 주지 대화상 방장실 이외에 서당(西堂), 후당(後堂)이 있으며 대다수가 노스님들이 주거하는 공간입니다. 불광산은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서 생각지 못했고 또한 혼자 기거하는 방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대중이 단체 생활을 하고 있으니 바로 ‘대중 속에 내가 있다’라는 말이고 저 역시 대중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빈승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불광산에서는 여러 종류의 대상을 위해 각기 다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연장자들을 위해 노인 여름캠프와 겨울캠프 및 독거노인 식사모임을 거행하고 수천 명이 넘는 독거노인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빈승이 육십 회갑이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제가 생일잔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 저의 회갑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회갑을 맞은 사람들 1000명을 함께 초청해 행사를 하겠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대중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저도 받아들였고 저의 60세 당일에 정말 1300명의 회갑을 맞은 노인들이 함께 와서 잔치를 하였는데 저는 매우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홀로 즐거운 것보다 대중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다”라는 말로, 저는 대중 속에서 지내고 있고 대중은 우리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예전에 불광산 개산초기 설비가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을 때 불광산에서는 구국단과 함께 ‘대학청년 불교여름캠프’를 여러 번 공동 개최하였습니다. 당시 참석했던 많은 학생들이 지금은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거나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간 이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오슝 창겅의원 진조륭(陳肇隆) 원장, 대만석유공사 임성충(林聖忠) 이사장, 타이베이룽민총의원 임방욱(林芳郁) 원장, 중화총회 북부협회 조취혜(趙翠慧) 회장, 운림지역 당위원장이었던 설정직(薛正直) 등 다들 한 영역에서 성취를 이루었으니 실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각 불광회에서 청년단을 성립하였고 자용, 혜전, 각배, 여빈 등 스님들이 매년 세계 여러 곳에서 ‘국제불광청년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유엔회의장,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LA, 호주 시드니, 말레이시아, 일본 등지가 모두 그들이 배움을 쌓아가는 회의장소가 되었고 저는 현대의 청년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시야를 넓혀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랐습니다. 말레이시아 미네스리조트시티(Mines Resort City)에서 혜현 스님이 개최한 불광청년단 대표자 대회에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청년단 대표 8000명이 참가 하였습니다. 비록 저는 부처님의 “영산회상에 인간계와 천상계에서 100만명이 동참한 성황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그 8000명의 청년들이 함께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서 불교의 미래와 앞날을 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자혜, 묘범, 묘광 등 스님은 해마다 수십 개 국가, 지역과 하버드대학교, 런던대학교, 북경대학교, 싱가포르대학교 등 세계 400여개 대학교 1000여명이 넘는 대학생 청년들을 위해 ‘국제청년생명선학캠프’를 개최하여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입과 귀로 전해지면서 이제는 각 지역 청년학생들이 해마다 참가를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30여년 전 자용 스님이 타이베이 보문사에서 부녀들을 위한 ‘부녀법회’를 거행하였고 선생님들을 위한 ‘교사연수캠프’를 거행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또 ‘생명교육수련캠프’가 생겨났고 예술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문예캠프’ 등 여러 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20여년 이래로 매년 대만의 북부, 중부와 남부 세 지역으로 나누어 ‘선정공수(禪淨共修) 법회’를 거행하였는데 매번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여 마음의 등불을 켜고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축원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매년 1000명이 넘는 교직에 몸담은 이들의 모임이 있고 대만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2000여개 독서회 회원들은 더욱 수시로 모임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각종 신도 강습회, 자원봉사자 강습회, 단기출가 수련회 등은 수십 년 이래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기출가 같은 행사는 1만명 이상의 신청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는데 불광산 행사들이 군중을 불러들이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교육부에 재직하였던 이요순(李耀淳) 선생은 불광산을 따르는 불자인데 불광회에서 ‘불광보이스카우트’ 업무를 맡아 추진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모두 세계스카우트연맹에 정식 가입하면서 세계 각처에서 열리는 체험행사와 잼버리에 수시로 참석하고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 민심을 정화하는 대중수행의 활동을 하루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수고하는 사람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봉사자들입니다. 2014년 여름방학 2개월 동안 운거루 공양처에서 식사를 한 사람이 20만 명이 넘는다고 당시 음식 만드는 책임을 맡은 제자 혜전(慧專) 스님이 말해주었습니다. 빈승은 이 많은 불자들이 봉사하러 와 준 것에 감사하고자 수시로 과일과 과자를 준비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격려한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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