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5. 정신적 불구 이기고 본래 회복하기 ①

기자명 김용규

온전한 나를 잃게 하는 건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

혼란한 시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그 측근이 뿌리가 되어 빚어낸 세상의 비정상적인 줄기와 잎의 단면이 그것을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방대하고 엄청납니다. 우리 사회 곳곳이 마치 심각한 정신적 불구자들이 합종연횡하여 이룬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 국면을 요즘 아주 길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불구!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것은 합종연횡 속에 있는 그들만의 사태는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 대부분도 실은 크고 작은 정신적 불구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정신적 불구의 증상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어떤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사람마다 특정한 패턴의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내가 아는 누군가는 특정 상황에서 끊임없이 주변 사람을 의심합니다. 그녀는 이따금 집에 두었던 돈 몇 푼이나 보약 같은 것이 없어졌다며 세 들어 사는 문간방 아무개의 짓이라 버릇처럼 단정합니다. 결국 그녀는 의심에 자기 속을 썩이며 주변에 끝없이 뒷말을 하면서 여러 나날을 보내곤 합니다. 그녀는 또 한 마을 이웃 몇몇이 모여 소곤소곤 말을 하면 그들이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하여 속을 썩이고 울화를 일으켜 속상한 마음을 내게 털어놓곤 합니다. 다른 누군가는 끝없이 아내를 의심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이따금 옷차림이나 화장하는 모습에 의심의 시선을 던집니다.

기실 나 역시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도 이따금 내 스스로 정신적 불구자로 행동하는 경우를 첫 서릿발이 내린 아침의 장면처럼 알아챌 때가 있습니다. 나의 경우 주로 어떤 논쟁에서 내 논리를 납득시키기 위해 집요하리만치 용을 쓰는 불구적 행태를 스스로 알아챌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가끔 나 스스로 정신적 불구자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때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서리를 치곤합니다. ‘아 또 이러고 있구나! 여보게 백오당(나의 호입니다), 왜 또 이러시는가?’

‘왜 또 이러시는가?’ ‘그대 왜 자꾸 정신적 불구의 상태로 떨어지시는가?’ 이것은 내가 긴 세월 나를 향해 품어온 화두였습니다. 인간으로서 내 행태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구해 온 긴 세월의 화두가 숲의 생명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풀려 왔습니다. 숲의 생명들을 보며 나는 본래 내가 온전한 존재였음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당신의 본래가 그러했듯 나 역시 본래 분별의 상(相)에 끄달려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살다가 입게 된 온갖 상처가 내게 두려움과 열망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엇인가를 잃을까봐, 혹은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면서부터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온전한 나를 잃고 반복되는 어떤 패턴의 행태 속에 갇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갈나무가 맺어 떨어트린 도토리 안에 무엇이 있을까요? 의심할 여지없이 그 안에 참나무의 일종인 신갈나무가 고이 접혀 있습니다. 도토리가 뿌리를 박고 줄기와 싹을 틔우고 우람한 신갈나무가 될 때 그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도토리는 미묘한 패턴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꿉니다. 이를테면 숲 상층부에 큰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신갈나무 어린 묘목에게 떨어지는 빛이 적을 경우 신갈나무는 제 이파리를 오동나무 잎만큼이나 크게 바꿔냅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가 보편적인 신갈나무의 잎인데, 녀석은 그렇게 비정상적인 크기로 잎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빛을 확보하려는 열망이 정상적인 신갈나무의 잎과 다른 생태(生態)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내게 이것은 순간적으로 본래의 온전함을 버려 자신의 생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으로 읽힙니다.

아마도 이 시대 우리에게 두려움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크게는 목숨을 잃는 것, 혹은 밥줄을 끊기는 것,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뒤지거나 밀려나는 것, 평판을 잃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누군가로부터 또는 무엇인가로부터 소외되는 것, 내가 붙들고 있는 신념이 훼손당하는 것 등등. 두려움에 갇힌 자는 자기 고유의 정신적 불구 행태를 반복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신갈나무가 어떻게 자신을 회복하는가에서 나는 한 가지 희망을 보았습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