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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휴와 황벽 스님의 인연

기자명 정운 스님

툭 던진 한마디 문답속에서
스승과 제자로 꽃피운 기연

황벽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어록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이다. 이 어록을  편찬한 사람이 배휴(裵休, 797~870)이다. 배휴는 하남성 맹주 제원 출신으로 당나라 때 유명한 정치가이다. 목종 때, 진사시험을 거쳐 정치인이 되었고, 852년 중서문하평장사와 중서시랑을 역임했다. 문장에 능했고, 글씨도 잘 썼으며, 교양이 깊고 성품이 온화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배휴는 당대의 기라성 같은 선사 세분을 스승으로 섬겼다. 처음에는 규봉 종밀(圭峯宗密, 780~841)을 섬겼으며, 다음 위산 영우(山靈祐, 771~853)와 황벽 희운(黃檗希運, ?~856)을 스승으로 모셔 공부하였다.  

벽화 보며 질문 던졌던 배휴
황벽 스님 일갈에 큰 깨우침
규봉 종밀의 가르침을 넘어
선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 돼

배휴는 선종 5가 가운데 첫 개산(開山)한 위앙종(潙仰宗)의 위산 영우가 동경사에서 법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이에 위산이 동경사를 배경으로 선을 펼쳤는데, 그의 문하에 1500여명의 제자가 모였다.

황벽과 배휴와의 처음 만남은 드라마틱한 기연(機緣)으로 ‘전등록’ 권12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황벽이 대중을 떠나 이름을 감추고 대안정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낼 때이다. 마침 배휴가 와서 불전에 참배하고 벽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벽화를 보던 배휴가 주지에게 물었다.

“저 그림은 누구의 초상입니까?”
“고승의 초상입니다.”
“영정은 여기 있지만, 고승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지가 아무 말도 못하자, 배휴가 ‘이 절에 참선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요즘 어느 객승이 머물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참선하는 스님인 것 같습니다.”

곧 황벽이 도착하자, 배휴가 물었다.

“제가 아까 스님들께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스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배휴!”

황벽의 큰 일갈에 배휴가 놀라 얼떨결에 황벽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어디 있는가?”

이 이야기는 황벽형의(黃檗形儀)라는 공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배휴가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몰라서 황벽이 소리쳐 불렀을까? 스스로 불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염념(念念)에 잊지 않고 자각시키는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황벽이 배휴에게 “고승의 초상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그 고승을 보고 있는 주인공, 그 본성을 자각하는 주체자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함을 경책하는 것이다.

황벽의 시호는 ‘단제’인데, 배휴의 권유로 당나라 선종(在位 846~859)이 내린 것이다. 선종이 황제가 되기 전, 염관사라는 절에 머문 적이 있는데, 당시 황벽도 그 절에 있었다. 황벽이 예불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선종이 “왜 부처를 신봉하지 말라고 하면서 예불을 올리느냐?”고 물었다. 황벽은 선종에게 대답은 하지 않고, 다짜고짜로 뺨을 몇 차례 때렸다. 수년 후 선종이 황궁으로 돌아와 황제가 되었다. 몇 년 후 재상인 배휴가 선종에게 황벽의 시호를 하나 내려달라고 하자, 선종은 황벽에게 뺨 맞았던 옛일을 떠올리며 추행사문(麤行沙門)이라는 호를 내렸다. 이에 맞서 배휴가 ‘폐하에게 3번 손찌검을 한 것은 3제의 윤회를 끊어주기(斷) 위함입니다.’라고 하자, 선종이 마음을 돌려 단제(斷際)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

배휴는 황벽을 만나기 이전 규봉 종밀(화엄종의 5조이며 하택종의 5조)에게 가르침을 배웠으며, 종밀의 여러 저서에 서문을 지었다. 그런데 배휴가 황벽을 만난 이후로는 황벽의 선기(禪機)에 마음에 큰 변화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배휴가 황벽에 대해 평을 하였는데, ‘전등록’에 이렇게 전한다.

“나는 규봉 종밀 선사가 선과 교에 달통한 분으로 매우 존경했지만, 황벽선사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보니, (이전 종밀에 귀의했던 것과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배휴는 황벽을 통해 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으며, 황벽을 통해 새롭게 선을 배울 수 있는 계기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76호 / 2016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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