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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시아문

기자명 이제열

대승의 ‘여시아문’은 수행 통한 깨달음 지칭

‘유마경’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의미의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한다. 여시아문은 모든 불교경전의 시작을 알린다. 결집(結集)이라고 표현되는 경전의 성립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다. 최초의 결집은 라자그리하의 칠엽굴에서 마하가섭 존자의 주재 아래 500명의 아라한들에 의해 행해졌다. 이때 우팔리존자가 율을, 아난존자가 경을 암송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는 아난의 기억에 의존
대승은 법신의 부처님 기반
불멸 150년 후 근본분열도
서로 다른 관점 차이 때문

이 가운데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면서 부처님을 25년 동안 보필했던 제자다.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던 그는 500명의 아라한들 앞에서 부처님을 모시면서 자신이 듣고 겪었던 모든 사건과 가르침들을 낱낱이 기억하여 구술하였다. 그리고 아난존자의 구술들은 우팔리존자의 율과 함께 500아라한들의 인준을 거쳐 불설로 선포되었다. 경전 첫머리의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할 때에 ‘나’란 다름 아닌 아난존자를 지칭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팔만사천경이라고 칭할 만큼 방대한 양의 경전들이 모두 아난존자의 암기에 의존하여 나왔느냐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서 아난존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나온 경전들은 경전 전부가 아닌 니까야 계통의 초기경전들에 국한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의 대승 경전들은 아난존자의 기억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이 때문에 니까야 계통의 경전만이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대승경전들을 비불설로 규정하고 신봉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는 한다. 아난존자를 비롯한 부처님의 직제자들을 통과하지 않은 여시아문은 정통성이 없으므로 불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의 경전들은 누구에 의해 여시아문이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부처님의 설법으로 채택 될 수 있었을까?

대승은 나름대로 여시아문에 대한 정당한 논리를 펼친다. 대승에서는 초기불교야말로 부처님의 본뜻을 다 펼치지 못한 불완전한 경전이고 소승의 법이니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여시아문에 있어서도 아난존자의 기억보다는 수행을 통해 확인된 깨달음의 내용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대승의 여시아문은 초기불교와는 다른 불타관에서 비롯되었다. 초기불교의 시각에서 부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비록 해탈을 성취한 최고의 성인이지만 부처님에게도 나고 죽음이 있고 목숨을 버린 후에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부처님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승에서의 부처님은 진리 그 자체로 나고 죽음이 없고 목숨을 버린 후에도 인격을 뛰어 넘어 법신불로써 세상에 항상 머무른다. 참된 부처님은 육신불이 아니라 법신불로 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부처님의 설법도 살아 있을 때의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성으로 이어진다.

대승은 바로 이 같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것이다. 아난존자처럼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깨달음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초기불교의 내용과는 차원이 다른 설법을 들었다. 대승의 수행자들은 자신이 성취한 깨달음 속에서 법신의 부처를 만나고, 그 부처님에 내재하는 갖가지 공덕들을 여시아문의 형식을 빌려 경전을 새롭게 편찬했던 것이다.

대승의 교설은 부처님 입멸 후 새삼스럽게 나타난 교리가 아니다. 초기경전 곳곳에도 대승의 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가르침들이 충분히 있었으며, 1차 결집 때 참여하지 않은 아라한들이 다른 결집을 감행하였다는 일화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이들은 칠엽굴의 결집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름대로의 교리를 정립했다고 전해진다. 불멸후 150여년 경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는 부파불교의 시작은 이미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다.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두 종류의 깨달음이 근본 분열을 통해 본격적으로 충돌했다고 볼 수 있다. 여시아문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관점이 깊이 투영돼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77호 / 2017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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