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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

“한국불교 찬란한 역사 여러분은 제대로 아십니까”

▲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은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의 전통보다 앞선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한 나머지 자국의 역사를 애써 축소한 경향이 짙었다”며 “이제는 이런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전통에 대해 자부심과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사무처 제공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우리 역사에 대해 바르게 알자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중국 전래설은
고정관념서 못 벗어났기 때문
발타라·허황후 등 기록 보면
한국불교가 중국보다 빨라

역대 스님들 법문의 상당수
중국선사들만 인용해 아쉬워
원효·의상 등 뛰어난 한국스님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외면
한국불교에 자부심 가져야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견해는 사학자들이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가 오직 중국으로부터만 왔을까요? 역사기록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는 존자암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부처님 사리탑이 봉안돼 있습니다. ‘고려대장경 법주기’에는 “부처님의 16존자 가운데 6번째인 발타라 존자가 탐몰라주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탐몰라주’는 제주의 옛 이름이고 그 절터가 바로 존자암인 것입니다. 발타라 존자는 부처님 당시 계셨던 분이니까, 이걸 토대로 하면 한국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이 넘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학계에서 여러 의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교학자와 역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해 규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규명된다면 우리나라는 한중일 삼국 가운데 제일 먼저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전래와 관련해 또 다른 기록은 가락국 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가 아유타국에서 와서 불교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허황후의 친정오빠인 장유화상은 불교를 홍포하고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또 허황후의 일곱 왕자는 출가를 해서 쌍계사 말사인 칠불암에서 수행해 성불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듯 허황후가 불교를 전한 것은 서기 5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와 비슷합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후한 명제 때인 서기 50~70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뿌리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가 중국에서 들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인도를 통해 직접 들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발타라 존자가 전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하겠지만 허황후가 가락국에 불교를 전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불교에 편중된 인식은 현재의 수행풍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현재 조계종이 표방하고 있는 선종의 전통은 중국불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선종은 달마대사에서 비롯돼 육조혜능 스님 때 크게 활성화된 불교종파입니다. 이런 전통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이어져 불교의 한 종파에 불과한 선종이 불교를 대표하게 되고, 참선만이 불교의 전부인 것처럼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의 큰스님들이 법상에 올라 하는 법문의 80~90%가 중국 스님들의 행적이나 어록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운문 스님이 어떻고, 조주·임제 스님이 어떻다’라는 식의 법문을 듣다 보니 한국 스님들은 늘 가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스님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훌륭한 분이시고 존경하고 배우고 따라야 할 큰스님들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는 역대로 큰스님들이 없었냐는 것입니다. 해동성사로 불렸던 원효 스님이 계셨고, 화엄학의 대가로 꼽히는 의상 스님도 계셨습니다.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훌륭한 스님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 스님들을 우리 스스로 등한시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초발심자경문’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삭발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초발심자경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발심자경문’은 어떤 책입니까? 바로 우리 스님들이 후학들을 위해 남긴 저술을 모은 책입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 보조 스님의 ‘계초심학입문’, 야운 스님의 ‘자경문’을 한 데 모아 엮은 것이 바로 ‘초발심자경문’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 스님들의 행적과 어록, 저술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야 합니다. 중국불교가 최고라는 편중된 시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불교가 중국불교보다 역사적으로 더 오래됐다는 기록은 또 있습니다. 바로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 스님입니다. 마라난타 스님은 서기 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영광 법성포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마라난타 스님은 인도의 고승이었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부파불교 시대가 점차 저물고 용수, 무착 스님에 이어 세친이라는 엄청난 논사가 있었습니다. 세친 스님은 무착 스님에 이어 유식학을 정리한 분이었습니다. 특히 세친 스님은 부처님이 계셨던 도솔천 내원궁에서 미륵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미륵사상과 유식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착, 세친 스님의 영향으로 당시 인도에는 유식학이 성행했었습니다. 이 때 마라난타 스님도 유식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백제에 전했습니다. 그래서 백제불교는 교리적으로는 유식불교이고, 신앙적으로는 미륵신앙이 성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불교에 유식사상이 성행한 것이 언제이지 아십니까? 대게는 7세기 후반 중국 당나라 때 현장 스님이 인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 나란타 대학에서 15년간 공부한 현장 스님은 이후 다시 당나라로 돌아와 유식학을 전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유식학이 중국보다 앞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에 뒤처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국을 대국으로, 상국으로 여기면서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축소시켰습니다. 한국 유식불교의 기원도 백제불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유식학을 배워온 태현 스님에서 찾고 있습니다. 물론 태현 스님은 신라의 유학승이자 중국 현장 스님의 제자였던 원측 스님에게서 유식학을 배우고 돌아와 한국 유식학을 크게 융성시킨 스님이십니다. 그렇더라도 찬란했던 백제불교를 모조리 지우고 중국불교에서 유식학을 배운 스님을 한국 유식학의 개조로 보는 것은 바른 인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선종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불교에서 수많은 선사들이 있었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스님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육조혜능 스님의 제자들 밑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스님들이 여기저기 선방을 열어 그것을 근거로 선종의 원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동등한 관계였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는 중국과 비슷했고, 전쟁에서도 대등했습니다.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수나라는 고구려 침공의 후유증으로 멸망했습니다. 뒤이어 당나라도 세 차례의 공격을 가했지만 고구려는 이를 거뜬히 막아냈습니다. 그러다 신라가 통일을 하면서 만주의 거대한 영토를 모두 중국에게 내주고 작은 한반도로 축소된 것입니다. 비록 영토가 줄었더라도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계속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자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위기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기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과 북이 갈라져 있고 동서로 갈리고,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합입니다. 국민이 하나로 뭉치면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우리 민족은 살아왔습니다. 비록 갈등을 겪더라도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면 하나로 뭉쳐 싸워 이긴 저력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떤 나라도 우리나라를 함부로 보지 못할 겁니다.

불교적으로도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한국불교의 전통은 중국과 대등합니다. 오히려 원효·의상 스님과 같은 뛰어난 스님의 사상과 저술 등은 한국불교가 중국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찬란한 역사를 애써 축소하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계속된다면 혼란하고 어려운 이 시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함께 열어 가면 좋겠습니다. 성불하세요.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내용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이 1월15일 서울 조계사 일요법회에서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378호 / 2016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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