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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교육·교학 분야를 마무리하며

배움 토대 위에 활짝 펼친 교단의 한쪽 날개 만난 환희로운 여정

▲ 1년여의 연재를 통해 만난 23명의 스님들.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왼쪽 위부터) 명성, 묘순, 일초, 도혜, 대우, 능인, 본각, 일연, 지형, 상덕, 혜원, 일진, 해주, 대현, 진광, 일장, 적연, 수경, 오인, 벽공, 정운, 법성, 명법 스님.

기록은 역사의 씨앗이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는 전설이고 설화다. 민담이나 야사가 되어 떠돌다 사라지기도 한다. 중국격언에 ‘총명하다 해도 둔필만 못하다(총명불여둔필. 總名不如鈍筆)’고 하는 이유다.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하면 기억에도, 역사에도 남을 수 없다. 그렇기에 한편 기록은 두렵고도 조심스럽다.

강의·불교학연구·역경 등
다양한 분야 23명 인터뷰
스러진 강원 일으켜 세우고
견고하던 차별의 벽 넘어
스스로 배움의 길 개척한
선각자 자취에 묵직한 감동
후학들 계승·발전도 눈부셔

2016년 1월 시작한 기획연재 ‘한국의 비구니리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구니스님들에 대한 기록이다. 불교계 안팎에서 원력을 세우고 정진하며, 세상을 정토로 일궈가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의 행적을 찾아 소개하고 기록한 것은 기억하기 위함이다. 두 날개로 나는 새의 한쪽 날개처럼,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의 한쪽 바퀴처럼 부처님의 정법을 잇고 펼쳐온 비구니스님들의 발자취가 역사로 기억되길 희망하며 돛을 올린 긴 여정의 출발이었다.

그 첫걸음이었던 지난 1년은 교육·교학 분야를 집중 조명했다. 강의, 불교학 연구, 역경 등 교육과 교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을 소개했다. 각 승가대학 강사, 대학 교수 등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님들도 있었지만 재야의 학자, 연구자로 활동하며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와 저술, 역경 등의 활동을 펼친 스님들도 다수 포함됐다. 또 학문의 성과를 전법의 방편으로 활용, 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들도 폭넓게 아울렀다.

교육·교학 분야에서 만난 비구니스님들의 발자취는 비구니교육의 정착, 나아가 비구니 위상의 확대와도 맞닿아 있었다. 이는 오늘날 비구니승가의 위상이 교육의 토대 위에서 정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환희의 여정이기도 했다.

인터뷰는 비구니교육의 산 역사이자 비구니에게 강맥을 전함으로써 비구니전강 시대를 연 명성 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남성이라고 우월하고 여성이라고 낮은 곳에 머무르거나 무시돼서는 안 된다. 비구와 비구니는 새의 두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겸손하되 여성이라고 해서 소극적이거나 뒤떨어지면 안 된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해야 종단도 발전할 수 있다”는 명성 스님의 당부는 이 기획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어야 되는가를 잊지 않게 이끌어 준 1년간의 나침반이었다.

이 뒤를 이은 삼선불학승가대학원장 묘순,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장 일초, 청암사승가대학장 지형·상덕 스님 등은 모두 오늘날 비구니승가대학의 뿌리가 된 비구니강원을 일구고 정착시킨 주역들이었다. 묘순 스님은 통학강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강원을 개설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스님들에게 단비가 되어주었다. 일초, 지형, 상덕 스님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형편 속에서 강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던 동학사승가대학과 청암사승가대학을 일신시키며 비구니교육동량으로 우뚝 세운 비구니교육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유마사 선학 승가대학원장 일장 스님 또한 비구니승가대학이 없던 호남 지방에서 오직 원력과 정진으로 비구니교육 도량을 개척한 선각자였다.

이와 함께 강원 전통교육 계승과 현대와의 조화를 통해 출가수행자들의 첫 걸음을 올곧게 이끌어주는 스님들의 묵묵한 걸음도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묘엄 스님의 향훈이 깊게 스며들어있는 봉녕사승가대학에서 만난 있는 도혜, 적연 스님의 이야기는 한국불교 현대사를 대표하는 비구니강사이자 율사인 묘엄 스님의 원력이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가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또 묘엄 스님의 가르침과 학풍을 올곧게 이어가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탁마하는 스님들의 이야기는 한국불교가 품고 있는 전통의 힘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봉녕사뿐만이 아니었다. 운문사승가대학 일진·진광 스님이 들려준 고민과 노력들은 오늘날 올곧게 이어지고 있는 승가대학 전통의 교육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의 결과물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혜원, 본각, 해주 스님 등은 대학의 벽을 뛰어넘어 비구니 박사, 교수의 시대를 연 선두주자들이었다. 비구니 두 번째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혜원 스님, 비구니연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본각 스님, 그리고 비구니 최초로 동국대 교수에 임용된 해주 스님은 비구니스님들의 역량이 비구스님이나 사회인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스님들의 발자취는 이후 수많은 비구니스님들의 대학진학과 박사학위 취득, 해외유학 등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교육·교학 분야의 스님들이라고 해서 그 발걸음이 학문의 틀 안에만 머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교학의 기틀을 단단히 다진 스님들은 이를 바탕으로 포교와 전법에 더욱 매진하며 교학이 수행과 포교의 든든한 밑거름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묘엄 스님의 율맥을 전수 받아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장을 역임한 대우 스님은 선교율을 겸수한 수행자로 괴산 남화사에 주석하며 포교와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동학사승가대학장 겸 주지를 역임한 일연 스님은 특유의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쇠락했던 완주 안심사를 중창, 지역 중심 사찰로 성장시켰다. 의정부 석림사 주지 능인 스님은 일찍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고 연마한 학문의 힘을 복지관의 성공적인 운영에 회향했다. 칠곡 정암사 주지 대현 스님 또한 경전에 기반한 신도교육으로 포교의 원력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들 스님들이 이룩한 성과는 무엇 하나 넉넉하지 못한 여건 속에서 맺은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배움을 향한 쉼 없는 노력을 이어온 스님들의 사연을 면에 다 담아내기에 역부족인 경우도 많았다.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빠짐없이 수록함으로써 당시 불교계의 상황과 시대상, 정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주력했다.

이밖에도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에 임명된 수경 스님을 비롯해 불교문화사 연구의 오인, 비구니 교단사 연구의 벽공, ‘대지도론’ 등 경전 역경의 석법성 스님 등은 불교학의 지평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운 스님과 명법 스님은 대중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현대의 불교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옛 스님들이 일군 교육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학문의 결실을 맺고 있는 이들 스님의 활동은 다음 세대 비구니스님들이 보여줄 눈부신 성과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1년여에 걸쳐 진행된 교육·교학 분야에 대한 조명을 마치고 올해에는 전법과 불사에서 정진하고 있는 비구니스님들을 만나는 ‘한국의 비구니 리더-시즌 2, 전법·불사’가 시작된다. 어린이, 청소년, 병원, 재소자, 군법당 등 전법과 포교 분야서 활동하는 비구니스님들의 활약상은 미래 불교의 희망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비구니전’을 저술한 6세기 중국 양나라의 보창 스님은 서두에서 “시간이 변해 옮겨가면서 청정한 규범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니 당신들의 뛰어난 덕화야말로 천년 세월 속의 모범이 될 터이지만 당신들이 지녔던 뜻이나 벌였던 일들을 책에 모으지 못했음을 매양 슬퍼하고 한탄한 지가 꽤 오래되었다”고 밝혔다. 보창 스님이 ‘좀 더 일찍 기록하지 못했음’을 한탄한 지 무려 1500여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도 같은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고각하(照顧脚下)하며 시즌 2를 시작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78호 / 2016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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