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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정신적 불구 이기고 본래 회복하기 ②

기자명 김용규

희망은 관계 속 상처 극복한 결과물

모든 것에서 드러나는 ‘지금의 모습’은 단순히 지금의 모습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오직 그가 건너온 긴 시간 위에서, 그리고 주고받은 수많은 관계의 작용 위에서만이 온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 역시 내가 건너온 삶의 긴 시간 위에서 나와 마주하고 주고받은 온갖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조금 더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의 오두막, 백오산방(白烏山房) 마당한 구석에 놓인 돌덩어리며 그 옆에 살고 있는 소나무며 산수유며 앵두나무며 배롱나무 역시 그렇게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모습은 시간, 관계의 산물
훼손된 본래 모습 용(用)에 불과
상처지점 마주하고 어루만질 때
체(體) 회복해 불구되지 않을 것

그 돌덩어리의 한 구석은 뾰족하고 반대쪽 면은 도톰하니 부드러운데 지금 그 모습을 나는 나와 인연이 되어 함께 머물고 있는 10년의 시간으로는 다 해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돌덩어리는 어쩌면 수억 년 전 대륙이 움직이기 전 어느 거대한 돌 산맥의 실한 살점이었거나 뼈대를 이루었던 존재였는데 그곳에서 비롯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 그 돌덩이 옆에 몸 붙이고 사는 소나무며 산수유며 배롱나무 역시 그가 살아온 시간 위에서 겪어온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가 오두막을 완성하고 들어와 심은 생명들입니다. 따라서 그 소나무 모양이 왜 왼쪽으로 더 치우쳤는지, 산수유는 왜 오른쪽으로만 더 뻗어가는 모양새인지, 배롱나무는 왜 한 줄기가 아니고 여러 줄기를 비비꼬듯 자라고 있는지를 나는 비교적 정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는 길가로 뻗은 오른쪽의 가지들을 경운기며 짐차에 부딪히면서 잃은 탓이고, 산수유는 왼쪽을 차지한 복사나무 위세에 치어 왼쪽 가지를 많이 잃은 탓입니다. 배롱나무는 몹시도 춥던 어느 겨울 두 번이나 얼어서 죽었는데, 다행이 제 뿌리를 겨우 지켰다가 뿌리에서 줄기 몇 가닥을 새롭게 뽑아 올려 살아낸 탓입니다.

사람이란 존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한 제자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스무 살 때 읍사무소 홈페이지에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마을버스의 시간표가 어디에도 안내돼 있지 않아 불편하니 운행시간표를 정류소나 마을에 붙여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날 이장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갔고 저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긴 시간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서른 몇 살을 살아온 모양이었습니다. 자기를 표현했다가는 자칫 납득할 수 없는 상처를 반복적으로 얻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목소리를 낮추고 눈치를 살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 것이지요.

본래적 자기는 그렇게 시간과 관계 속에서 훼손되기 쉽습니다. 인간의 경우 그 훼손의 계기 속에서 본래의 정신을 놓치면 정신적 불구의 지점들을 갖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정신적 불구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정치권력을 가질 경우 그 국가와 사회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우리는 지금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불구를 이겨내고 본래적 자기를 회복하지 못한 나와 당신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불행과 지내게 되는지 한두 개 쯤의 사례가 우리 각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희망은 정신적 불구의 극복과 본래적 자기의 회복에 있습니다.

지난 글 말미에 언급한 신갈나무 기억하시죠? 빛이 부족한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 신갈나무가 제 삶을 지켜보고자 본래 손바닥만 한 제 잎을 오동나무처럼 크게 키우며 살아낸다던. 하지만 그 어린 신갈나무가 치열한 숲의 하층부와 중층부를 극복하고 마침내 상층부의 공간으로 자신의 가지를 뻗어 제 하늘을 열어내면 신갈나무는 다시 본래의 잎 크기를 회복합니다. 신갈나무에게 있어 삶의 과정에서 겪는 훼손과 왜곡의 형상은 단지 용(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일시적 불균형이 체(體)를 흔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도 상처는 극복되어야 할 무엇입니다. 상처의 지점들을 용맹하게 마주하고 어루만져야 합니다. 마음을 잃어 불구에 이르면 자칫 괴물로 일생을 살게 되니까요. 지금 우리 사회의 어느 부패한 권력자들과 그 부역자들처럼 말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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