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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그것은 숲이고 구름이고 비였다

기자명 최원형

선물포장으로 잠시 쓰이고 버려진 자연

설 연휴가 끝나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재활용을 분리수거하는 날이 있었다. 박스들이며 선물포장으로 쓰였던 것들이 산을 이루었다. 그토록 엄청난 양은 해마다 명절이 지나고 한차례씩 볼거리를 제공한다. 박스들 대부분은 찌그러진 곳도 없이 멀쩡해보였다. 고급스럽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박스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선물만 빼고 고스란히 버려진 그 광경을 보면서 가을에 밤송이를 양쪽으로 벌려 밤톨만 빼어간 형상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밤송이에 비유했던 생각을 얼른 취소했다. 밤송이와 선물포장용 박스는 애당초 격이 다르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밤송이는 그야말로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와 땅 속의 양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알맹이는 털렸지만 땅바닥에 남겨진 겉껍질은 가을이 지나고 눈에 덮여 겨울을 맞고 따스한 봄, 여름을 차례차례 맞이하며 몇 해가 흐르면 흔적도 없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또 다른 밤송이를 키울 것이다. 자연에서 나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온전한 순환을 하는 밤송이인 것이다.

명절 후 재활용 분리수거 하는 날
산처럼 쌓인 박스와 선물포장 용품
짧은 생명의 포장재 운명은 쓰레기
체면 세우고 과장하는 욕망의 물건

얼마 전 내가 받은 어떤 선물도 포장이 정말 근사했다. 예쁜 리본으로 장식한데다 포장지는 고상한 무늬가 인쇄된 얇으면서도 잘 찢어지지 않고 반들거리는 고급 종이였다. 이런 선물을 받으면 포장을 푸는데 망설여진다. 내용물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나 포장을 풀자마자 곧장 쓰레기를 남기게 되니 마음속이 복잡하다. 단지 포장해서 나에게 와 닿는 딱 그만큼의 시간만 쓰인 리본과 종이가 아까워 늘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둔다. 다음에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리본과 종이는 뭔가를 묶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포장으로 다시 쓰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지는 것도 사실이나 지구 전체로 볼 때 이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다. 종이라면 재활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재활용을 영원히 되풀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재활용하려 종이를 수집하고 운반하고 새롭게 재생지로 만드는 과정에도 에너지는 꾸준히 쓰인다. 게다가 ‘재활용’이라는 것이 소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어느 정도 축소시켜준 측면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무를 베고 제지공장에서 펄프를 만들고 운반해서 종이를 인쇄하고 포장지로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지구 단위로 계산해보면 어떨까? 포장재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물건이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쓰인 뒤 곧장 쓰레기가 될 운명을 지닌 물건이다. 포장재는 그것이 감싸고 있는 내용물이 소비자에게 가 닿는 순간 쓸모없어지는 특이한 물건이다. 소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생존을 위한 소비도 있고 오직 소비만이 목적인 그래서 애시 당초 없던 필요를 만들어 하는 소비도 있고, 자신이 지닌 부를 과시할 목적으로 행하는 소비도 있다. 포장이란 것이 예의를 지키려는 목적도 있겠으나 대부분이 체면 혹은 권위를 내세우고 과장하려는 욕망이 덧붙여진 물건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이에 덧붙여 기업의 광고효과와 소비를 부추기려는 의도까지 포장에 포함되어 있다.

소비라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지구에서 무언가를 가져다 쓴다는 개념이 깔려있다. 지구에서 무언가를 가져다 쓴다는 것이 마냥 허용될 수도 없거니와 쓰고 남겨진 것들을 지구가 마냥 받아줘야 한다는 함의가 전제된 것에도 동의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생산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와 닿기도 전에 소비되고 폐기되는 것들 또한 엄청나다. 소비할 물건의 원료를 캐고 정제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고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손에 온전히 물건이 되어 닿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쉴 새 없이 버려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른다는 것을 분명히 볼 것입니다. 구름이 없다면 비는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면 종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구름이 필수입니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다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는 서로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풀어쓴 반야심경 구절을 읽으며 선물포장으로 아주 짧은 순간 쓰고 내다버린 저 숲과 구름과 비를 생각한다. 그들과의 공존을 위해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되어야할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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