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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1세기, 정월대보름 의미는?

기자명 최원형

대보름에는 주민들 모여 대청소 해보세요

지난 토요일은 정월대보름날이었다. 내 기억에 대보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럼 깨물기였다. 새벽에 잠이 깬 기척을 들은 어머니는 아직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우리에게 깐 밤을 건네주시며 ‘부럼을 깨물자’를 세 번 말하라고 하셨다. 눈이 채 떠지지도 않아 눈을 감은 채 밤을 씹다보면 잠은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러고 있는 모습을 식구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폭소를 터뜨리던 때도 있었다.

마을 명절이었던 대보름 풍속
이제는 내 가족행사로만 한정
공공 위한 새 아이디어 필요
이웃과 함께하는 문화 창출

부럼의 뜻도 모른 채 그저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아침은 부럼을 깨물며 하루를 시작하는 줄로만 알았다. 다만 그런 것들이 내게 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 보름 전날 저녁에는 이웃들과 오곡밥이며 나물반찬을 서로 나누었다. 그러니 그날 저녁은 이웃이 모두 우리집 밥상에 모인 셈이었다.

일년 달력에 보름을 기리는 날이 크게 두 번 있다. 정월대보름과 추석인데, 추석은 추수감사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날이다. 그렇다면 새해가 시작되면서 처음 맞이하는 정월대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더위를 판다. 보름달이 동산에 둥실 떠오르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활동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건강기원이다. 모든 것을 다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복을 비는 것에 앞서 건강을 기원하는 이런저런 행위를 했던 것 같다. 마을을 단위로 살아가던 때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이었다. 대보름에 하는 놀이의 핵심은 농사의 풍년을 비는 마음과 마을 주민들의 화합이었다. 그 근저에도 역시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풍요로움이 차고 넘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굶는 이들이 있는데 산업이 진일보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배고픔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새해 첫 보름날에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 한마음이지 않았을까? 각종 기계를 써서 농사를 짓던 때도 아니고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울력하며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했던 시절이었으니 마을 주민들의 화합은 농사일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일은 마을 안에 살고 있는 초목, 생물들의 안녕과도 맞닿아 있다. 농사일은 모든 유정, 무정물이 합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의 이러한 바람들은 추석에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러니 두 보름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농부는 정월대보름을 한마디로 하루 종일 먹고 노는 날이라 표현했다. 그가 정월대보름을 이렇게 묘사한 까닭은 대보름을 기점으로 농사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리라. 농사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몸을 잘 돌보는 날이 바로 대보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보름에는 먹어야할 것들도 많고 흥이 나는 놀이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인구가 농촌인구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 후반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농경사회에 내린 뿌리는 깊다. 다만 그 뿌리가 내 집과 내 식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을 전체의 ‘건강과 풍요’라는 이 귀한 발원이 현관문 닫고 들어와 오곡밥과 묵나물반찬에만 갇혀있는 게 많이 아쉽다.

오늘날 큰 보름을 기리는 것에 새로운 의미부여가 필요하지 않을까? 떠들썩한 동제까진 아니어도 마을 공동의 장소에 쌓인 묵은 낙엽을 함께 청소하면서 대보름을 맞이하는 건 어떨까? 주민들이 모여 동네에 살고 있는 나무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 수목소독을 멈추고 건강하게 아파트 화단을 가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눠보는 건 또 어떨까? 땅이 건강해야 그 땅을 딛고 사는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한 땅은 곧 건강한 흙이다. 화학약품으로 오염된 흙이 아니라 지렁이가 숨 쉬며 살 수 있는 땅인 것이다. 더위를 파는 일을 대신할 수 있도록 아파트 공동 옥상에 태양광발전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태양과 달과 지구가 일직선으로 있을 때 지구에서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달의 인력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년 9월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는 “지난 20년간 규모 5.5 이상의 대형 지진을 분석한 결과 12차례 중 9차례가 보름달이 뜨는 시기와 일치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보름달이 뜨는 날 지구에 미치는 달의 인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조류 활동이 거세지고, 이 힘이 단층에 전달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름달의 메시지는 단순명료하다. 인드라망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곁에 살고 있는 이웃과의 연결은 두 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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