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어느 도시가 아름다운 것은

기자명 조정육

이 자리서 충실하다면 누군가의 구원이 된다

▲ 신홍직, ‘포지타노’, 193.9×112.1cm, oil on canvas, 2015 : 이탈리아 포지타노는 모든 여행객들이 추천하는 명소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기억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풍경은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파리도, 홍콩도, 뉴욕도, 싱가포르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풍경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우람한 나무들이 도로 양쪽으로 끝도 없이 늘어서있다. 나무들은 단순히 조경을 위해 심어놓은 것 같지 않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서 나고 자란 듯 수많은 가지가 사방팔방으로 거침없이 뻗어있다. 인공이 느껴지지 않는 생태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거대한 고목들은 더부살이하는 식물에게도 넉넉한 어깨를 빌려 주어 고목 줄기에 고사리 같은 기생식물들이 곳곳에 붙어 있고 넝쿨식물들은 사다리처럼 늘어져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품에 안긴 느낌이다. 도로 폭이 결코 좁지 않음에도 넓은 나무들이 감싸 안으니 원시림 속에 작은 길을 뚫어놓은 것 같다.

싱가포르 넉넉한 풍경 감탄하다
친구에게 사회 부조리 전해 들어
친절함 보여준 도서관 사서 만나
맡은 일 최선 다할 때 그 자리가
곧 유토피아가 된다는 것 깨달아

싱가포르에 도착해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나는 감탄을 거듭했다. 싱싱한 나무들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홍콩에서 빽빽한 고층빌딩의 숲만 보다 진짜 나무숲을 볼 수 있어 더욱 감동받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쳐다보면 군데군데 서 있는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그마저도 울창한 나무숲에 에워싸여 상층부만 겨우 보일 뿐이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게다.

“우리 나중에 여기 와서 살까?”

공항에서부터 싱가포르에 매료된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넉넉한 환경에서 사는 싱가포르 사람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기 마련이다. 도착한 날 밤 만난 친구는 뜻밖의 얘기를 했다. 싱가포르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은 친구는 그곳의 부조리함을 줄줄 늘어놓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종차별이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등이 섞여 사는 다민족 국가인데 그들 사이의 갈등과 알력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했다. 싱가포르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도 아주 큰 사회문제였다. 얼마 전에는 연약한 외국인 가정부가 젊은 싱가포르 군인의 군장을 짊어지고 뒤따라가는 사진이 공개되어 비웃음을 산 적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외국인 가정부에 대한 신체적 학대와 임금체불 그리고 빈번한 성폭행은 척결되지 않는 범죄였다. 심지어는 외국인 가정부를 굶겨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들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문제가 많다.

친구가 한 얘기는 그 다음 날 도서관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나는 영어 잘하는 남편의 통역으로 도서관 사서와 대화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남편과 내가 전공분야가 달라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열람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순전히 남편 ‘빽’만 믿고 도서관에 간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남편이 나간 후 드디어 말도 안 되는 나의 영어가 시작되었다. 영어가 막히면 중국어로 필담을 했다. 그러나 나의 중국어 실력도 영어만큼 서툴기는 마찬가지여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허비했다. 아, 진짜 못해먹겠네. 관광이나 할 걸.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이람. 오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도서관 건물에 있는 카페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서빙하는 직원 얼굴이 어쩐지 익숙하다. 한국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카페 직원이란다. 그가 우리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관광하러 온 김에 도서관에 들렀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충고한다. “이곳은 사람 살 곳이 못 되요. 다시는 오지 마세요.”

우리 부부는 적이 놀랐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이 나라에 문제가 있어도 아주 많이 있는 것 같다. 어젯밤에 친구가 한 말이 사실이었다.  턱없이 비싼 돈을 내고 먹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속도 불편했다.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그냥 갈 수가 없어 다시 열람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내 자리에 돌아와 보니 영어로 적힌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아까 만났던 사서가, 내가 찾던 자료목록을 뽑아서 올려다 놓았다. 갑자기 마음이 환해졌다. 어젯밤에 친구를 만나 들었던 얘기, 카페 한국 직원의 얘기, 피곤함 등등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는 메모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사서가 자기 돈을 들여 자료까지 복사해줬다고 했다. 낯선 도시에 가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 의해 그 도시의 인상이 결정될 때가 많다. 이날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의 행동이 그랬다.

생텍쥐페리가 쓴 ‘인간의 대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비행기 조종사인데 스페인으로 떠나는 처녀비행을 앞둔 상태에서 이 항공로를 앞서 내왕한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그 선배는 지도를 펼치고 스페인의 지리나 수로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의 시골에 있는 하찮은 농가와 농가부부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농가부부는 비행기가 불시착이라도 하면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 농부 내외가, 우리들이 지금 있는 데에서 1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문제가 많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 어떤 나라보다 따뜻하고 훌륭한 나라로 기억되는 이유는 울창한 나무와, 불시착하여 헤매는 내게 스페인의 농가부부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서가 있기 때문이다. 1500킬로미터보다 열 배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어느 도시가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이다. 내가 홍콩을 그리워하지 않은 이유는 그곳의 빌딩이 닭장집 같아서가 아니다. 싱가포르의 사서 같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일 뿐이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라고 했던 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문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온 세상이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가 붙어 있다. 우리는 부처님처럼 온 세상의 고통을 평안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스페인 농가부부처럼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는 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큰마음을 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된다. 싱가포르 사서처럼. 그럼 그곳이 유토피아가 된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부처가 된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