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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경계 만나 마음을 놓친 비구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이 엉망이 되었군”

▲ 그림=근호

부처님 당시에 상카락키타라는 비구에게는 세속에 사는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아들을 낳자 오라버니의 이름을 따서 상카락키타라고 지었다. 어른이 된 조카 상카락키타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어 삼촌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공상하다 스승 내리친 비구
대상 향해감이 마음의 특성
경계 지난 뒤 알면 이미 늦어
매 순간 정신 일깨워 살아야

어느 해에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부처님으로부터 수행 주제를 받아 삼촌과 떨어져서 안거를 났다. 석 달 동안의 안거 수행을 마치는 날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신자로부터 가사 두 벌을 보시 받았다.

마침 자신의 가사가 낡은 상태였으므로 그는 한 벌은 자기가 입고, 나머지 한 벌은 삼촌이자 스승인 상카락키타 비구에게 보시하기로 했다. 불교는 보시 공덕을 예찬한다. 그렇지만 모든 보시가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보시를 했다고 해도 보시 받는 분의 경지가 높을수록 보시 공덕이 더 크다.

그것은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것과 같다. 맑고 투명한 거울은 빛을 잘 반사하지만 때가 끼어 어두워진 거울은 빛을 잘 반사하지 못한다. 마치 그와도 같이 맑은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보시 공덕을 성취시켜 준다.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삼촌의 수행 경지가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 또한 어서 빨리 높은 경지를 성취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수행은 생각대로 잘 진전되지 않았고, 그래서 신자로부터 보시 받은 가사를 스승께 보시함으로써 공덕을 성취하여 그 공덕의 힘으로 수행을 진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촌에게로 돌아온 날, 그는 스승께 삼배를 올린 다음 자신의 가사를 바쳤다. 그렇지만 일은 그가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삼촌 상카락키타 비구는 “나는 이미 가사가 있으니 이 가사는 다른 스님께 드리도록 하여라”라고 말하며 그가 바치는 가사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자신의 보시물을 받아주실 것을 두 번, 세 번 스승께 부탁했지만 스승은 끝까지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크게 낙담했다. 마침 날씨가 매우 무더웠다. 그는 스승 곁에 서서 스승을 위해 부채를 부쳐 드리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하시는 이런 분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내가 수행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쯤에서 차라리 환속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그의 상념은 이어졌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얼마 안 지나 마음에 드는 처녀를 만나 혼인을 하게 되겠지. 몇 년이 지나면 아내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들을 삼촌께 보여 드리기 위해 아내와 함께 사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사원으로 가는 동안 나는 마차를 몰고 아내는 아들을 안고 있겠지. 그런데 중간 쯤에서 내가 아내에게 아들을 좀 안아보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아내는 ‘아기는 제가 안을 게요’라고 말하며 내 청을 거절하겠지. 그래서 실랑이가 벌어져 서로 아기를 안으려 다투는 과정에서 아내는 아기를 놓치게 되고, 그러면 아기는 길바닥으로 떨어져 크게 다치고 말 것이다.

나는 화를 내며 ‘어떻게 아기 하나 제대로 안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소리치며 아내를 손으로 내리칠 것이다.”

그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의 손이 생각을 따라 움직여 삼촌의 머리를 힘껏 내리치고 말았다. 퍽! 하는 소리에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황한 그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우선 살고 보자는 생각에서 현장을 벗어나 무턱대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원 안에서 가사를 입은 채 허겁지겁 달리는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다른 비구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구들에게 제지되어 부처님 앞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에게 왜 사원을 달렸느냐고 물으셨고, 그가 전후 사정을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는 마음이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해야만 하느니라”하고 말씀하신 다음 게송 한 편을 읊으시었다.

‘마음은 방황하고 홀로 움직이며
물질이 아니면서 물질 속에 숨는다.
누구든 그것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염라 사자의 손에서 풀려나리라.’

불교는 마음을 알고,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마음에는 여러 특성이 있지만 이 예화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마음은 다스리지 않고 내버려두면 가볍게 움직여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는 마음이 잘 다스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이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은 제가 가고 싶은 대로 마구 흘러갔다. 그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기회가 있었다. 스승이 그가 바치는 가사를 거절했을 때가 그때이다. 마음은 자주 순경계와 역경계에 마주친다. 순경계는 자기 마음에 드는 상황이 닥쳐오는 것을, 역경계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닥쳐오는 것을 가리킨다.

스승이 그가 바치는 가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역경계에 마주쳤었다. 그때 그는 자기가 역경계에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만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가장 좋은 방향으로 돌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세상에는 많은 조카 상카락키타 비구가 있다. 역경계를 맞아 자신이 역경계에 마주친 줄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경계가 지난 다음에야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경계에 마주친 순간 알아차렸더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은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다. 과거는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겠는가.

그리하여 결론은 매 순간 정신을 일깨워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마음을 지금에 머물러 미래나 과거에서 떠돌지 않도록 하는 것, 마음을 당처(當處)에 머물러 다른 데서 떠돌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마음 다스리기의 기초인 것이다.

지난 잘못을 후회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나치면 마음이 지금을 떠나 떠돌게 된다. 앞으로 올 미래를 구상하고 꿈꾸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또한 지나치면 마음이 지금을 떠나 떠돌게 된다. 평상시 현재에 잘 머무는 마음이 경계를 당해서도 현재를 잘 지킬 수 있다. 평상시 현재에 마음을 머물러 깨어 있는 연습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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