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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금영 작가

기자명 구담 스님

봄날은 바람처럼 온다

 
▲ 불일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인생은 달다…그리고 108번뇌’ 전시 광경.

움직일까 말까 두렵다. 한발 한발 딛고 일어선 만큼 되돌아 갈 수 없는 생(生)의 보폭, 잔뜩 움츠린 아픔이 매달리 듯 세찬 바람으로 스민다. 봄이 온다. 기지개 펴듯, 지난 산란의 아픔이 봄의 전령 되어 따숩도록 비춘다.

개구리·개구리알에 빗대어
6년간 108번뇌 시리즈 작업
우울감 속 내재된 긍정 표현

권금영의 개구리는 긴 겨울의 동면과 봄 사이에서 주저하는 번뇌를 던진다. 개구리의 원래 형태인 알 무더기의 끈끈함으로 무한 증식하는 변이적 모습은 우두커니 우리 삶의 생태와 엇비슷함을 넌지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성체가 되기 전의 순수성과 가능성만을 가진 생명에 대한 진지한 모습이야말로 봄날의 텅빈 허공처럼 규정되지 않은 공성(空性)으로 점철된다. 잔뜩 웅크린 덤벙 점액질의 몸짓으로 이내 바람이 될 봄기지개에 몹시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작가는 지난 6년간 영국에서 108 번뇌 시리즈 작업으로 개구리와 개구리알을 인간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들로 판화, 드로잉, 설치와 페인팅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 방식을 진행해왔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정서 속에 담긴 특유의 우울감 안에 내재된 긍정적 낙관론이 작품 속에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곧 그것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불교적 삶의 방식과 상통하는 것으로 달콤한 삶의 순간에 낙천적 태도를 보이는 작가의 정체성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권금영은 영국에서 처음 미술을 시작했다. 31세에 처음으로 영국 코벤트리대 학부에서 미술을 시작할 만큼 절박하게 그의 삶을 미술로 이끈 동인은 뭘까, 한국에서 전공이 철학이었던 작가에게 그 과정은 어쩌면 ‘번뇌는 곧 보리’로 연결되는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첫 개인전인 ‘인생은 달다…그리고 108번뇌’에서 판화와 회화, 설치의 20여점 작품에서 주로 반복적인 패턴이나 은유의 기법을 통한 상징화를 그 수단으로 이용했다. ‘Passions No 107’ 작품에서는 노랗고 검은 개구리 알을 만들기 위해 두 달이 넘도록 매일 7~8명이 8시간씩 손수 테이프를 감아서 완성해야만 했다. 그것은 다만 뭉쳐서 살아보려 애쓰는 개구리알의 치열한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서, 도저히 기계적 생산의 공산품과는 스스로 합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모인 각각의 개구리알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서사라고 작가는 믿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108 번뇌의 상징적 의미는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비롯되는 고민의 총합이다. 권금영은 뒷걸음질 칠 줄 모르는 개구리를 통해 은유와 상징으로 번뇌를 뛰어 넘고자 했다. 봄의 파수꾼인 개구리에게 조금은 벅찬 번뇌라는 삶의 난제들이 찰나와 영원 사이에서 비록 울대만 밤새 켜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연민의 더 따뜻한 몰입이 가능하다. 대롱 매달린 번뇌라는 우수에 가리기 전에 다시 권금영의 작가노트를 펼쳐 보자.

“거의 매일 생각했다. 사는 것이 왜 주로 고단한 것인지. 왜 고통 속에 밤과 낮을 지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인지…그렇게 이 108 번뇌 연작은 시작이 되었고, 소소하게는 나의 이야기에서 멀리는 남의 이야기까지 꺼내 놓게 된 것이다.”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구담 스님 puoom@naver.com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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