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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직 일심,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기자명 정운 스님

중생과 부처 성품 같다는 가르침
“깨달으면 부처”라는 선 출발점

수천년 출가해 수행한 이유
부처와 성품 같다 믿음 때문
황벽 스님의 주요 가르침은
부처·중생 성품이 모두 일심

원문:선사께서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부처와 더불어 일체중생은 오직 마음이요, 다른 법이 없다. 이 마음은 무시이래 생겨난 것도 소멸되는 것도 아니고, 푸르거나 누런 것도 아니며, 형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고, 유ㆍ무에 속박되지도 않으며, 옛것이니 새것이란 것도 아니고, 길거나 짧은 것도 아니며, 크고 작은 것도 아니다. 명칭이나 언어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으로 그 당체가 곧 진실함이니, 생각을 일으키면 어긋난다.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므로 헤아려 알 수가 없다. 오직 일심이 부처이다. 마음 차원에서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다만 중생은 형상에 집착해 외부에서 구하고 있으니, 구하려고 하면 오히려 잃을 뿐이다. 부처를 구하려고 하면, 부처를 잃을 것이요, 마음으로 마음을 찾으려고 하면 겁이 다하고 육신이 다해도 얻지 못한다. 망념을 쉬기만 하면, 부처가 현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설: ‘모든 부처와 더불어 일체중생은 오직 마음이요, 다른 법이 없다’라고 하는 부분은 마음 차원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동일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중생과 부처가 동일한 성품[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승경전에 연원을 둔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천안으로 일체 중생을 관찰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중생이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어리석고 미혹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마땅히 중생들에게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여의케 하고 자기의 몸속에 있는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다름이 없다[與佛無異]’는 것을 가르쳐야 하리라.”

‘법화경’에서는 부처님 입장에서 중생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세운 서원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다름없이 평등하다[如我等無異]’는 것을 (중생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또 ‘여래장경’에서도 “지혜의 눈으로 일체중생을 관찰하니, 비록 일체중생이 수많은 번뇌로 가득 차 있지만 여래장이 있어 청정하며, 덕상(德相)을 온전히 구족하고 있으니, 바로 여래인 나와 더불어 다를 바 없구나[如我無異].”라고 하였다.

초조 달마도 ‘이입사행론’에서 “이입(理入)이란 경전에 의해서 도의 근본정신을 깨닫고 범부와 성인이 모두가 동일한 진성(眞性)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깊이 믿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곧 달마는 중생과 부처가 똑같은 진성을 갖고 있으니 이를 굳게 자각하는 심신(深信)을 강조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법화경’의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 ‘화엄경’의 ‘여불무이(與佛無異)’, ‘여래장경’의 ‘여아무이(如我無異)’라는 차원은 바로 중생과 부처가 동등한 성품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부처’라는 존재는 저 꼭대기위에 있는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 중생의 성품과 동등하기 때문에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선(禪)’의 기본 테제는 여기서부터 발단이 된다.

수천년 동안 승려들이 출가해서 수행했던 것도 부처와 동등한 성품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부처가 갖고 있는 본성과 같음을 선사들이 인식하고, 수행하는 것은 간화선 제창자인 대혜가 강조했던 신심을 말한다. 부처와 중생의 성품이 일심이요, 그 일심 이외에 다른 법을 설할 것이 없다는 것은 황벽의 주요 설법이요, ‘전심법요’의 주된 근간이다.

원문의 ‘(마음은) 푸르거나 누런 것도 아니다’는 마음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란 존재가 어떤 형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어떤 모습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고, 길고 짧다거나 소멸하고 생성된다고 하는 세간적인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 당체가 곧 진실함이니, 생각을 일으키면 어긋난다’는 표현은 심법 자체가 있는 그대로 참된 것이므로 거기에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거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에서 ‘생각’이라는 용어는 망상이나 쓸데없는 사유(思惟)를 지칭한다. 

정운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saribull@hanmail.net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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