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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피 머금고 핀 불교, 그러나 기억되지 않았다

  • 교계
  • 입력 2017.02.20 11:23
  • 댓글 1

집중취재-불교전승 주역 순교자들

순교자 없는 세계종교는 없다. 순교는 종교적 신념의 적극적인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교도 정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을 찬탄해왔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사업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불교전래의 주역인 순교자들을 선양하는 기념일 및 성지 지정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차돈 목숨과 맞바꾼 한국불교
스님들 불법 위해 순교로 저항
기독교는 순교자 성인으로 추앙
종단차원 선양 시급…발심 계기

2600년 전 인도의 궁벽한 지역에서 시작된 불교가 한국에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부처님 당시 목련존자와 부루나존자 등의 순교에 힘입어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중국에 불교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도 3무1종(三武一宗) 등 숱한 법난을 죽음으로 맞섰던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도 순교에 의해 비롯됐고 발전해나갔다. 4세기 후반 고구려와 백제에 들어온 불교는 토착신앙과 융합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신라는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을 머금은 후에야 공인될 수 있었다. 4세기 정방 스님을 비롯한 7명의 고구려 스님들이 신라에 불법을 전하려다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527년 이차돈 성사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될 수 있었다. 이들 순교자가 없었다면 이후 원효·의상대사와 같은 대사상가도, 찬란한 통일신라의 불교문화도 있을 수 없었다.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이차돈 성사의 묘소를 찾아 ‘만약 말세에 법을 행하기 어려운 때 만나면 나 또한 임을 따라 목숨 바치리’라고 찬탄했던 것도 법을 위해 기꺼이 죽어간 이차돈 성사가 있었기에 해동의 불교가 존재한다는 고마움에서였다.

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국교가 되면서 큰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이 개국하면서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는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조선 성종은 불법을 홍포했다는 죄목으로 설산, 월심, 계엄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고승들을 장형에 처하거나 참수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의 맥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조선불교 삼성(三聖)으로 일컬어지는 천태행호, 나암보우, 환성지안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 조선 초기와 중기, 후기를 대표하는 이들은 억불시대에도 불법을 널리 펴고 불교를 중흥시킨 주역들이다. 세 분 스님은 100년의 시차를 두고 모두 유생들의 모함으로 제주로 유배돼 혹독한 고문 속에 쓸쓸히 적멸에 들었다.

이처럼 한국불교사에도 숱한 순교자들이 존재했고, 언제가 불교가 위기를 맞을 때 법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순교자가 있어야 한국불교는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를 추모하는 행사는 영천 은해사의 ‘이차돈 성사 추모재’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 봉은사가 보우 스님의 다례재를 봉행하고 있지만, 이는 역대 조사스님들 중 한 분으로 모실 뿐 순교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순교자를 성인으로 모시며 기념행사는 물론 사업회, 기념관, 순례길 등을 만들어 신도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한 핵심사업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온몸을 던졌던 불교인들을 외면하고서 정법이나 포교를 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불교의 순교자들은 진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대승보살도의 실천자들”이라며 “불교 순교자 선양은 결국 구성원들의 재발심과 종교적 자부심 고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종단이 추모일을 정해 불교계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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