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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행호·보우·지안 스님 유배지 제주서 타살

  • 교계
  • 입력 2017.02.20 11:36
  • 수정 2017.02.20 11:39
  • 댓글 1

▲ 제주 불사리탑사에는 나암보우 스님과 환성지안 스님의 비 및 석상이 모셔져 있다. 조선불교 삼성(三聖)으로 일컬어지는 행호, 보우, 지안 스님이 제주에서 순교했다.  제주불교 사진제공

한국불교사에 있어 순교는 불교 전래와 탄압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순례와 관련한 기록들 중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례는 단연 이차돈(506~527) 성사다.

한국불교사 속 순교자들
이차돈 성사 대표 인물
고려 나옹 스님 시작으로
유생들, 고승 탄압 앞장
죽음으로 맞서 후세에 전해

이차돈은 법흥왕의 신하로 ‘내사사인’이라는 관직에 있었다.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으려 했으나 토착신앙을 신봉하는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자 이차돈은 불교 공인을 주장하며 불교를 배척하던 세력에 순교로 맞섰다. “만약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이차돈의 목이 떨어지자 붉은 피가 아닌 흰 피가 솟구쳤고,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꽃비가 내렸다. 신라는 이차돈의 순교정신을 기려 818년 육각기둥 비석에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고 좌우에 꽃송이가 날리며 땅이 흔들리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조각하고, 나머지 5면에는 사적을 기록한 ‘이차돈 순교비’를 경주 백률사에 세웠다.

불교에 대한 탄압은 고려 말부터 시작됐다. 그 첫 희생자는 나옹혜근(1320~1376) 스님이었다. 사대와 자주, 보수와 혁신, 유교와 불교 등 갖가지 이념이 충돌하며 국운이 흥망의 기로에 섰던 공민왕 시절, 나옹 스님은 스승 지공 스님과 함께 살아있는 부처로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진 유교세력의 모함과 유약한 고려 우왕의 굴복으로 결국 살해됐다.

나옹 스님의 순교는 이후 발생할 불교탄압의 신호탄이었다. 특히 조선불교 삼성(三聖)으로 불리는 천태행호, 나암보우, 환성지안 스님이 대표적이다. 행호(?~1446) 스님은 조선 초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왕실의 원찰인 원주 각림사와 고양 대자암의 주지를 지냈다. 강진 백련사 중창을 이끌었고, 서울 흥천사 주지로 있을 때는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수만명이 운집했다. 이에 성균관 유생 이영산 등 648명이 요승이 삿된 말로 백성들을 현혹한다며 집단 상소했다. 세종 28년 불법을 중흥시켰다는 죄목으로 제주에 유배된 행호 스님은 얼마 뒤 제주관리들에 의해 참수됐다.

유교시책이 강화된 성종 때는 무수히 많은 스님들이 장형이나 참형에 처해졌다. 설산, 원심, 계엄 스님 등이 불법을 홍포한 죄로 참수됐고 설은, 지성, 상명 스님은 위서(僞書)를 작성했다는 모함으로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설잠 김시습의 스승이자 신미대사의 도반이었던 설준 스님도 유생들의 탄핵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당시 유생들은 설준 스님의 참형에 앞서 장형 80대에 처하고, 죽인 후 머리는 저잣거리에 매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불교를 지켜내고 중흥시킨 이는 나암보우(1506~1565) 스님이다. 스님은 선교양종과 도첩제를 부활시켜 불교인재를 양성하고, 전국 300여 사찰을 국가공인으로 지정하는 등 불교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스님을 후원하던 문정왕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고, 제주로 보내진 지 7일 만에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타살됐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엄종장 환성지안(1664~1729) 스님도 법을 위해 순교한 대표적 인물이다. 학식이 뛰어나고 경전에 해박했던 선승 지안 스님은 27살 때 직지사 화엄법회에 참석해 당시 강주였던 모운진언 스님에게 법석을 물려받았다. 1725년 금산사에서 열린 화엄법회에는 1400여명의 대중이 모여들었고, 해박함과 정연한 논리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크게 놀란 유생들은 영조를 부정한 이인좌의 난에 관여했다고 모함했다. 반역죄로 제주에 유배된 지안 스님은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고 일주일 만에 가부좌를 한 채 입적에 들었다.

이처럼 1700년 역사 속에 수많은 고승들이 목숨조차 내놓으며 불교를 지켰기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불교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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