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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

“신심 깃든 전문성으로 성보의 울림까지 전달”

▲ 제정 스님은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축적한 탄탄한 하드웨어에 불교라는 소프트웨어를 얹어 해당 불교문화유산의 울림까지 담아내기 위해 매진해왔다”고 강조했다.

2004년 6월5일 오전 10시, 고성 건봉사 내 보물 제1336호 능파교의 홍예(무지개 모양 문)가 보수공사 도중 무너져 내렸다. 안전보호시설을 하지 않은 채 석면을 쌓아올리다 하중이 반대편인 북쪽으로 쏠렸던 게 원인이었다. 국가지정문화재가 부실공사로 허물어진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불교계에서는 자성론이 대두됐다. 능파교 붕괴의 의미가 단순히 그 자체에만 머무르는 게 아닌, 문화재 이전에 성보로서의 인식과 관리 부족을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는 참회의 목소리였다.

조계종 불교문화유산 전문기관
2002년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성보 보존 방안의 획기적 전기
16만3300여점 목록화 ‘대불사’

2013년부터 목판 일제조사도
목판 관리·훼손 방지 전기 마련
교구본사 종합정비계획 수립
인각사 의식구 발굴 등 ‘쾌거’

무궁무진한 불교 소프트웨어로
역사적·정신적 활용 방안 제시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현재,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은 신심을 기반으로 한 책임감과 주인의식 부재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문화재 보수·정비 관련 사업의 저가입찰·지역제한 제도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성보 훼손과 부실한 관리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각 불교문화유산이 조성된 역사적 맥락과 함께 그것에 깃든 선조들의 신심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전문성이 투여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스님이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대한 불교계의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2000년 창립된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이 전신이다. 조계종이 설립한 전문기관답게 창립 직후부터 오대산 월정사 발굴조사, 군위 인각사지 종합정비 발굴조사, 미황사 부도군 실측조사 그리고 금강산 신계사지 발굴조사 등 전방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2002년 시작한 ‘전국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은 성보의 체계적인 보존·관리·정비·활용 방안 마련에 있어 획기적인 계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연구소 자체적인 역량 강화에도 분기점이 됐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차 기초조사 기간 동안 전국 3400여개 사찰에서 무려 16만3300여점에 이르는 불교문화재를 목록화하는 대불사였다.

여기서 축적된 역량은 2014년 사찰 소장 목판에 대한 정밀조사로 이어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2019년까지 진행될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사업은 2016년까지 정밀조사 1만8992점, 인출 8406장 등의 성과를 통해 목판의 체계적 관리와 훼손 대비, 학술적 자료 조성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총 2만7003점에 대한 정밀조사와 1만8000여장의 인출이 마무리되면 종합색인집과 함께 관리매뉴얼도 발간한다는 계획이어서 목판 보존 체계와 관련 인식의 대대적인 전환이 예상된다.

조계종 소유 국가지정문화재 중 건축문화재가 41.3%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안전진단, 종합정비계획 수립, 관리 매뉴얼 제작 등에도 주력하고 있다. 대구 파계사 원통전 등의 구조정밀안전진단을 진행했으며 공주 마곡사와 고창 선운사 등에서 전통문화의 보존·전승에 필요한 기능과 체험 편의성을 동시에 고려한 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정책연구실을 통해서는 문화재 관련 부서 정부기관의 사업과 예산을 분석하는 한편, 종단이 추진해야 할 정책과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 2015년 ‘국가지정문화재 소유 및 예산 분석’ 연구보고서를 발간해 문화재보호기금의 상당부분이 국가기관 운영, 시설 건립, 국유문화재 관리에 할애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불교문화재연구소의 강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매장문화재조사다. 2007년 법인 전환 전까지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만큼, 매장문화재 조사·발굴과 정비·활용에 있어 발군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 군위 인각사에서 통일신라시대 불교의식구들을 대거 발굴해 “9세기 한반도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많이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6년에는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국보급 정병을 완벽한 상태로 발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10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폐사지 기초조사사업’도 눈여겨볼 만하다. 앞서 ‘한국사지총람’을 발간해 기본자료를 확보한 뒤 집계한 5400여개 사지 중 현존하는 4500여개 사지를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한국의 사지’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다. 이는 상당수 폐사지가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 등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규명조차 없이 멸실되는 가운데 체계적 보호·관리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술조사와 문화재 지정, 활용에 도움이 되도록 폐사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보존현황표와 상태점검표도 표준화했다.

이처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1700여년 동안 한민족 정신문화에 뿌리내렸던 불교와 그 신심을 기반으로 소중한 성보를 세상에 드러내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면 조계종이 설립한 전문기관으로서 높은 평가는 없었을 것이다. 단순하게 기초조사나 발굴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학술연구, 정책 수립 등을 통해 보존·관리·정비·활용 방안까지 제시해오며 성보들이 후손들에게 올곧이 전달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제정 스님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할이다. 폐사지 조사와 발굴 등 기초작업보다 중요한 것은, 원형 복원을 통한 사찰기능 회복 혹은 템플스테이와 연계한 치유적 공간 조성 등 다채로운 정비·활용 방안에 있다. 이때 불교가 가진 무궁무진한 소프트웨어는 이 땅의 유구한 역사와 정신을 포괄하며 각 성보별 특성에도 부합하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님은 “저가입찰제와 지역제한 제도, 100여개 민간 연구기관 난립으로 성보가 성보로서 존중되지 못하는가 하면 돈벌이 수단으로까지 취급되며 훼손되거나 멸실되는 통한의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축적한 탄탄한 하드웨어에 불교라는 소프트웨어를 얹어 해당 불교문화유산의 울림까지 담아내기 위해 매진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보는 신심과 책임감, 주인의식을 가지고 대할 때 비로소 가치가 발현되며 나아가 미래의 불자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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