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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겨울딸기

기자명 최원형

먹는 일에도 주체적 자각, 지혜가 필요하다

길을 걷다가 한 카페 유리창에 붙은 딸기 파르페 사진을 봤다. 칙칙한 겨울에 빨간 색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그 사진은 식욕을 자극했다. 딸기는 어느새 겨울의 제철과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런데 한 겨울에 딸기를 만나는 건 못내 불편하다. 몇 년 전 일이다. 유난히 추웠던 터라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까지 낀 채 들른 마트에는 빨갛고 싱싱한 딸기가 박스로 쌓여 있었다. 영하의 기온에 봄 과일인 딸기를 만나고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궁금해서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한 박스 샀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식구들 모두 입맛을 다시며 딸기를 맛있게 먹었다. 제철에 먹던 딸기보다 당도도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옛이야기는 순 엉터리네. 겨울에도 이렇게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걸, 겨울이어서 해충이 없으니까 농약은 덜 뿌리지 않을까’ 딸기를 앞에 놓고 식구들은 가볍게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다 작은 아이가, ‘이렇게 추운데 딸기를 어디서 키워?’ 하고 질문을 했다. 별 생각 없이 딸기를 먹던 식구들은 어떻게 딸기를 키웠을까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겨울에 채소·과일 먹는 대신
땅은 온통 폐비닐에 덮혀 신음

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일까,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음식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어디서 어떤 형태로 생산되는지 알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음식은 본래의 목적을 오래 전에 상실한 것 같다. 겨울은 본래 먹을 게 궁핍할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그게 자연의 이치 아닐까? 나무들도 잎을 떨구고 침잠에 든다. 어떤 동물들은 먹을거리가 풍성한 가을에 잔뜩 먹고는 겨우내 긴 동면에 들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지혜로운 방법 같다. 몸의 구조가 다르니 동면에 드는 일까진 어렵더라도 자연의 이치에 최대한 부응하며 살아보는 게 지구에 부담을 덜 주는 일일 게다. 작물의 수확 시기를 앞당겨 재배하는 걸 촉성재배라 한다. 겨울에도 여전히 푸릇한 채소가 나오고 계절을 당겨가며 과일을 키워낸다. 철모르는 사람이 채소며 과일까지 철이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먹는 사람이 철들 일은 요원하지 않을까?

겨울딸기가 불편한 까닭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 추운 계절에 과일을 키워야하니 자연 상태가 아닌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비닐하우스가 등장하고, 그 안의 온도를 일정정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쉼 없이 공급해야한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건 단순히 딸기가 아니라 에너지를 먹고 있는 셈이다. 더해서 비닐하우스의 비닐은 기껏해야 몇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폐비닐이 된다. 오늘날 농촌에서 폐비닐은 오염원으로 큰 골칫덩이가 됐다. 비단 딸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시사철 비닐하우스 재배로 인해 나오는 폐비닐 양이 엄청나다. 주로 노인들만 살다보니 폐비닐을 수집 장소로 가져는 게 힘에 부쳐 불법으로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은 에너지를 먹고 폐비닐을 남기는 형국이 되었다. 비닐하우스는 땅을 황폐화시키는데도 일조한다.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비닐하우스로 즐비한 수도권의 모습은 마치 들판에 눈이 쌓인 듯 착시를 일으킨다. 비닐하우스가 온통 땅을 뒤덮고 있으니 흙이 햇볕을 쬐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내리는 비는 제대로 땅으로 스며들까? 비닐하우스로 덮인 풍경을 보며 들던 생각이다. ‘농가 소득증대’를 위해서라면 몇 십 년째 오르지 않은 쌀값의 정상화가 먼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농업을 살리는 방법이 왜 철을 잊은 비닐하우스여야 할까? 먹을거리가 풍부한데도 시장엔 멀리 해외에서 수송해온 과일까지 합세한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여념이 없다.

정월대보름날에 먹었던 묵나물을 떠올려본다. 채소가 풍부한 계절에 갈무리해뒀다가 궁핍한 계절에 꺼내 먹으면서 겨울을 지내던 지혜가 우리에겐 있다.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한 채소를 먹어야만 할까? 한겨울에 꼭 딸기를 먹어야 우리가 건강할까? 한겨울에 딸기를 먹음으로 해서 우리도 살고 있는 바로 그 생태계가 나날이 병들어간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공양게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절실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자연을 힘들게 하면서 얻어진 것은 혹 아닌지를 통찰해야할 것이다. 단지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기 위한 음식이어야 할 것이다. 먹는 일에도 주체적인 자각, 나아가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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