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노예에게 전재산 물려준 아버지

동서양의 재산상속에 담긴 지혜롭고 깊은 뜻

▲ 그림=근호

손변(孫)이 경상도 안렴사(按廉使)로 있을 때 남동생이 누나를 상대로 부모의 재산을 다 차지하고 나눠주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누나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문혜·사혜 타종교도 존재
불교에선 증혜까지 제시
현생활에 지혜 실천해야
실용적 종교로 거듭날 것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모든 재산을 저에게 물려주면서 동생에게는 검은 옷 한 벌, 갓 하나,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장만을 물려 주셨습니다.”

손변이 누이에게 물었다.

“그때 너희들의 나이는 각각 몇 살이었더냐?”
“저는 출가해 있었고, 남동생은 여덟 살이었습니다.”

이에 손변이 말했다.

“부모의 마음이란 아들이나 딸이나 같은 것인데 어찌 출가한 딸에게는 후하게 주고 어미 없는 어린 아들에게는 박하게 했겠느냐? 내가 너의 아버지의 지혜롭고 깊은 뜻을 알겠다.

너희 아버지는 재물을 동등하게 나눠 준다면 누나가 아우를 잘 보살피지 않을까 염려하였느니라. 또, 아들이 자라면 유산 상속에 불만을 품을 것까지 짐작했던 것이니라. 즉, 아들로 하여금 물려준 종이에 소장(疏狀)을 쓴 다음 갓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미투리를 신고 관청에 나아가 고소하면 관청에서 자신의 뜻을 미루어 짐작하여 판결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니라.”

손변의 말에 오누이는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손변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절반씩 나누어 갖도록 판결했다.

시골에 살고 있는 한 유태인 부자가 아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아들이 예루살렘으로 떠난 지 3년 만에 아버지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그가 사는 곳까지는 여러 날이 걸려야 올 수 있었다. 부자의 병은 하루가 급한 상황이어서 부자는 자기가 죽기 전에 아들이 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문제는 유산이었다. 그에게는 자손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이었고, 그의 많은 재산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사람은 노예장 예셀이었다. 예셀은 주인의 재산 내역을 소상히 잘 알고 있었다.

부자는 자기가 죽으면 영리한 예셀이 재산을 빼돌리거나 가로채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정황에서 어떻게 하면 재산을 아들에게 잘 전해줄 수 있을까. 위중한 가운데서도 부자는 좋은 계책을 생각해냈고, 그 내용을 유서에 적어 예셀에게 주었다.

부자의 유서를 본 예셀은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준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유서에 의하면 부자의 아들 이스마엘은 아버지의 재산 중 자신이 원하는 것 한 가지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죽었다. 이 소식은 예셀이 보낸 노예를 통해 이스마엘에게 아버지의 유서 내용과 함께 전해졌다. 자신에게 아무런 재산이 남겨지지 않게 된 것을 안 이스마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동안 예셀은 아버지가 남긴 유서의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스마엘은 장례가 준비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노예장 예셀은 이스마엘을 건방진 태도로 맞았고, 모여 있던 친척과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무일푼이 된 이스마엘을 보자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례가 끝나자 이스마엘은 마을 사람들과 노예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예루살렘에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중에는 이번 경우에 쓸 만한 지식도 있습니다. 그것은 큰 것을 가진 자는 그것에 포함되는 작은 것까지 갖게 된다는 이치입니다. 이 이치가 적용되는 사례 중 하나는 왕이 한 지역의 영토를 차지하면 그 영토 안에 있는 백성과 토지에 대해 지배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을 지배하는 황제는 어떨까요. 그는 왕이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됩니다.”

이스마엘이 말을 이었다. “저는 황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남기신 모든 재산 가운데 노예 예셀을 갖겠습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가진 재산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마엘의 지혜로움에 감탄하였다. 이스마엘은 예셀에도 약간의 재산을 나누어 주는 한편 앞으로도 계속 노예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유태교·기독교·이슬람교가 믿음의 종교라면 불교는 지혜의 종교이다. 불교는  지혜를 문혜(聞慧: 들어서 얻는 지혜), 사혜(思慧:생각해서 얻는 지혜), 수혜(修慧:닦아서 얻는 지혜), 증혜(證慧:깨달아서 얻는 지혜)로 분별한다. 증혜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가르치는 반야(般若) 그것이며, 비유로 말하면 80이나 90 정도의 지혜가 아니라 100점 짜리 완전한 지혜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경지인 묘각(妙覺)은 52번째 경지이고, 바로 아래가 준(準)부처로서의 등각(等覺)이다. 맨 아래 지위는 열 단계의 믿음 즉 십신(十信)이다. 그 위로 십주(十住)가 있고, 그 위로 십행(十行)이 있고, 그 위로 십회향(十廻向)이 있다. 그 다음이 41지(地)부터 50지까지가 보살의 열 단계 경지인 십지(十地)이다.

이렇게 층층으로 분별되는 경지 중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중간 지위 이상이라고 자부하는 불제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요점은 화엄 52지 중 중간도 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아직 증혜를 논할 형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꿔 말해서 우리는 문혜와 사혜를 무시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지 않다.

예화에 나오는 손변은 유가(儒家) 수행을 해온 사람이고, 이스마엘은 유태교 신자이다. 그들은 놀라운 수준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불교 교리에 비추어 보면 그들이 얻은 지혜는 문혜를 바탕으로 한 사혜의 경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증혜라면 불교에서만 볼 수 있겠지만 문혜와 사혜라면 다른 종교와 세속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불제자 가운데 손변과 이스마엘, 또는 손변 이야기에 나오는 오누이의 아버지나 이스마엘의 아버지 만큼 지혜롭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백에 하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많은 불교 스승들이 어서 빨리 100점 짜리 지혜를 얻으라고 재촉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불제자 열 명 중 여덟아홉 명이 반야 지혜를 쉽게 입에 올리고 있다.

먼저 내 옆부터 둘러보자. 내가 처해 있는 현실 상황부터 실질적인 지혜로써 뚫어나가자. 52지에서 흘러나온 부처님의 100점 짜리 반야 지혜가 10지, 20지 근처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문혜와 지혜로써 실제적으로 작동될 때야말로 불교가 나에게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종교로 거듭나는 때일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80호 / 2017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