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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종, 75년 전 일본 해저 탄광사고 추모법회

  • 교계
  • 입력 2017.02.21 23:27
  • 수정 2017.02.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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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20일, 조세이탄광 추모재 봉행

▲ 대한불교관음종은 2월17~20일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현해탄 바다 위 선상 및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추모비 앞에서 ‘국태민안 기원 수륙영산재 및 일제 강점기 장생탄광 희생자 위령대재’를 봉행했다.

“차디찬 바다에 묻혀 버린 안타까운 영령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75년 전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며 평화를 발원하는 추모의 장이 대한불교관음종의 주최아래 현해탄 바다 위와 일본에서 엄수됐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183명이 바다에서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일본 최대 탄광사고이지만 아직 유골수습조차 되지 못했다. 희생자 가운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의해 끌려간 한국인들만도 136명이나 포함돼 있다.

스님 40명 등 사부대중 추모단 210명 동참
현해탄 선상·사고 현지 등…유골 수습 호소

대한불교관음종(총무원장 홍파 스님, 이하 관음종)은 2월17~20일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현해탄 바다 위 선상 및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추모비 앞에서 ‘국태민안 기원 수륙영산재 및 일제 강점기 조세이탄광 희생자 위령대재’를 봉행했다. 이 법회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 스님, 이하 종단협)가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으로부터 사고에 대한 소식을 접한 뒤, 지난해 처음 종단협 차원 추모법회를 봉행하면서 한국불교계의 관심이 촉발됐다. 이후 종단협은 해마다 종단협 소속 종단이 돌아가며 추모법회를 갖기로 결정했고 올해 한국 불교계 차원으로는 두 번째, 단일종단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관음종이 추모의 법회를 주최하게 됐다. 특히 관음종은 한일불교교류협의회를 통해 일본 불교계와의 소통이 어느 종단보다 활발, 이번 추모 행사 역시 장엄하게 봉행하면서 일본 불교계 및 민간단체의 신뢰를 더 깊게 구축했다는 평가다.

▲ 선상 수륙재에서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장엄물로 야단법석이 마련됐고 준비된 불단 옆으로는 관음종 신도들이 올린 위패 단이 조성됐다.

추모법회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현해탄 바다 위 선상 그리고 조세이탄광 수몰사고현장 인근에 위치한 추모비 앞에서 각각 봉행됐다. 관음종이 한국에서 일본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항공이 아닌 배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바다에서 수몰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그들과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어야 할 법회이기 때문이었다.

▲ 1차 수륙재는 저녁공양 후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현해탄 바다 위, 선내에 마련된 대형 홀에서 엄수됐다.

동참자들은 17일 오후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성희호를 타기 위해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모였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포교원장 대홍, 종회 부의장 혜산, 총무부장 도각 스님 등 관음종 소속 스님들과 종단협 사무처장 성공, 한일불교교류협의회 사무총장 향운 스님, 수륙재 시현을 맡은 법문고연회 등 스님들은 40여 명이 함께했다. 묘각사 합창단을 포함해 관음종 산하 17개 사찰 신도 및 김형수 조세이탄광희생자 유족회장 등 추모 법회를 위해 성희호에 오른 사부대중은 총 210명에 달했다. 관음종이 법회를 기획할 초기 예상한 150명을 훌쩍 넘긴 인원이었다.

▲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포교원장 대홍, 종회 부의장 혜산, 총무부장 도각 스님 등 관음종 소속 스님 등 스님들은 40여 명이 함께했다. 관음종 산하 17개 사찰 신도 및 김형수 조세이탄광희생자 유족회장 등 추모 법회를 위해 성희호에 오른 사부대중은 210명에 달했다.

1차 수륙재는 저녁공양 후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현해탄 바다 위, 선내에 마련된 대형 홀에서 엄수됐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장엄물로 야단법석이 마련됐고 준비된 불단 옆으로는 관음종 신도들이 올린 위패 단이 조성됐다. 본격적이 수륙재 의식은 삼귀의, 반야심경, 내빈소개, 대령, 신중작법, 청법, 음성공양, 천수다라니, 복청게, 천수바라, 도량게, 거불, 유치, 착어, 창혼, 권공, 봉송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법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오늘처럼 차가운 밤바다 위 똑딱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을지도 모를 일”이라며 “대한민국이 혼란하고 어지러운 상황에서 봉행되는 이 수륙재가 가깝게는 조상, 멀게는 유주무주 고혼들의 넋을 달래며 이 땅의 안녕을 기원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취지를 전했다. 법회 내내 눈시울을 붉히던 한 보살은 “3개월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함께 오려 했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리 허망하게 보내고 나니 죽음은 언제 어느 때 찾아올지 모른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며 “탄광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유족들에게도 위로와 희망의 법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수륙재 의식은 삼귀의, 반야심경, 내빈소개, 대령, 신중작법, 청법, 음성공양, 천수다라니, 복청게, 천수바라, 도량게, 거불, 유치, 착어, 창혼, 권공, 봉송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 선상 수륙재 의식.

▲ 97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정에 동참한 김인분 보살.

다음날 오전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일행은 조선통신사 객관이었던 아카마진구, 철도박물관이 있는 모지코 항을 거쳐 사고 현장인 야마구치현 우베시로 향했다. 추모식에 앞서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은 민단 야마구치헌 지방본부(단장 강창헌)의 협조로 오찬을 준비해 한국 일행을 맞이했다. 이 자리에는 스에쓰쿠 노부유키 우베시 부시장도 동참하는 등 지난해보다 높아진 일본 측의 관심을 반영했다.

▲ 추모식에 앞서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은 민단 야마구치헌 지방본부의 협조로 오찬을 준비해 한국 일행을 맞이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가 발생된 마을은 고요한 일본식 어촌의 풍경이었지만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망망대해에는 커다란 콘트리트 기둥 두 개가 탄광 위치를 증명했다. 콘크리트 기둥은 해저터널 형태인 탄광 내부로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환기구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1991년부터 조세이탄광의 역사를 세상에 밝혀 온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모임)’이 조성한 추모의 장소에는 추모비와 함께 183명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나무 위패, 추모의 글 등이 새겨져 있었다. 이날 관음종 측이 불단을 추가로 조성하면서 이곳은 더욱 장엄한 법석이 됐다. 한국 일행과 더불어 일한불교교류협의회,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 새기는 모임,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 등 한국과 일본에서 3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엄숙한 추모식이 봉행됐다.

▲ 한국 일행과 더불어 일한불교교류협의회,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 새기는 모임,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 등 한국과 일본에서 3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엄숙한 추모식이 봉행됐다.

▲ 추모비 앞에서 봉행된 추모식.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추모사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목숨이 석탄 채굴에만 열을 올리던 일본 제국주의 야망에 의해 희생됐다”며 “이 사실을 세상에 밝히고 해마다 추모식을 가져온 새기는모임에 경의를 표한다. 창종 52주년을 맞이하는 관음종은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이 법석이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의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고 취지를 전했다. 종단협의회장 자승 스님은 종단협 사무처장 성공 스님이 대독한 조사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마지막은 어두운 해저에 잠들어 계신 영령들을 다시 빛이 있는 곳으로 모시고 나오는 것”이라며 “일본 당국과 탄광회사의 측의 책임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속히 시작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일불교교류협의회 사무처장 향운 스님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조속히 유골이 수습될 수 있기를 기원하고 관심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스님은 “한국 스님들이 추모법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사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며 “슬픔의 역사이지만 다음 세대로도 계속 이어져 양국이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니시오카 일한불교교류협의회 이사장 역시 “한국 스님들의 초대로 이 자리에 오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홍파 스님은 추모사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목숨이 석탄 채굴에만 열을 올리던 일본 제국주의 야망에 의해 희생됐다”며 “창종 52주년을 맞이하는 관음종은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이 법석이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의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고 취지를 전했다.

▲ 종단협의회장 자승 스님은 종단협 사무처장 성공 스님이 대독한 조사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마지막은 어두운 해저에 잠들어 계신 영령들을 다시 빛이 있는 곳으로 모시고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스님은 “한국 스님들이 추모법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사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꾸준히 추모 사업을 전개해 온 이오누에 요우코 새기는모임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지난해 종단협에 이어 이번에는 관음종에서 많은 스님과 신도들의 참석해 큰 힘이 된다”며 “조세이탄광은 사고 희생자들의 이름, 연령, 주소, 매장 장소, 유족까지 판명된 만큼 일본정부의 관심으로 꼭 유골발굴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해탄을 건너 온 김형수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장도 “일본정부가 외면해 온 사고 희생자들에 대해 한국 불교계에서 위령재를 봉행해 주신데 깊이 감사드린다”며 “(일본 정부는) 이 기회를 저버리지 말고 첨단 기술로 유족회의 할아버지, 아버지 시신을 발굴해 대한민국 땅에 안장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고 호소했다. 서장은 주일히로시마총영사도 “벌써 75년이 지난 사고의 안타까운 희생자들에 대해 넋이라도 뭍으로 올리기 위한 노력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부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의 원력과 가피 속에서 억울함을 내려놓으시고 안식을 찾으시고 영면하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 1991년부터 조세이탄광의 역사를 세상에 밝혀 온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이오누에 요우코 공동대표.

▲ 김형수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장.

참가 단체 대표의 추모 발언에 이어 한국불교 전통방식의 위령재가 전개됐으며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추모의 꽃을 바다에 띄우고 종이 위패가 바다에 잠기는 것으로 의식이 마무리됐다.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참가자들은 연신 옷깃을 붙들어야 했고 때때로 바람이 휘몰아쳐 스님들의 가사 자락이 휘날렸지만 의식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일본 참가자들은 한국 불자들의 정성어린 기도에 감동을 전했다. 새기는모임의 한 원로회원은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며 “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사고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이 땅에 평화를 새겨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한국 일행과 더불어 일한불교교류협의회, 주일히로시마총영사관, 새기는 모임, 조세이탄광희생자유족회 등 한국과 일본에서 3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엄숙한 추모식이 봉행됐다.

▲ 한국불교 전통방식의 위령재가 전개됐다.

▲ 수륙재를 시현한 법문고연회.

▲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참가자들은 연신 옷깃을 붙들어야 했고 때때로 바람이 휘몰아쳐 스님들의 가사 자락이 휘날렸지만 의식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 추모의 장소에서 사고 현장 앞바다까지 이동하는 참가자들.

이틀에 이어진 수륙재와 추모재에 동참한 한국 불자들도 염원을 공명했다. 97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정에 동참한 김인분 보살은 “18세 때 가족들과 일본으로 건너가 8년의 시간을 지낸 뒤 해방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일본에서 희생된 가족들이 있을 정도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수많았던 시절”이라며 “종단 어른 스님들이 추진하는 이 법회에 생의 마지막 원력으로 꼭 참석하고 싶었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고인들께서 극락왕생하시길, 양국이 평화의 협력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 드린다”고 두 손을 모았다.

▲ 바다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참가자들.

▲ 참가자들이 함께 추모의 꽃을 바다에 회향했다. 바다 방향으로 조세이탄광 환기구로 사용됐던 두 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보인다.

▲ 종이 위패가 바다에 잠기면서 의식이 마무리됐다.

예정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현해탄 바다는 거칠게 휘몰아쳤다. 방향 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어둠 속 11시간을 뜬눈으로 보낸 이들이 많았다. 힘겹게 부산항에 도착한 20일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그쳤고 촉촉한 단비가 내렸다. 바다 속에 잠든 희생자들이 극락왕생하기를,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하루 속히 유골 발굴이라는 소식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동참자들의 마음과 마음이 현해탄을 넘어 시방세계를 환하게 비추는 빛으로 회향된 것일까. 모든 참가자들이 인사를 나누며 헤어질 즈음에는 비 그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빛났다.

▲ 동참 사부대중은 한 목소리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일본 정부 측에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을 호소했다.

일본 우베시=주영미 기자 ez001@bepopbo.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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