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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프리아모스의 눈물

“장군, 부디 내 아들의 시신을 돌려주시오”

▲ 그림=근호

그리스 신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사과 한 알을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이 저마다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주장하며 사과 갖기를 원했다.

아킬레우스에 아들 잃은 왕
적진 찾아가 돌려줄 것 호소
어떤 상황이든 모든 사람은
본성이 선함을 잊지 말아야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그녀들을 이데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잘 생긴 목동 파리스에게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지 판정해달라고 청했다. 파리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헤라는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노라고 제안했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판정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보호를 받아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 왕에게로 갔다. 메넬라오스의 왕비인 헬레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아프로디테는 그녀를 파리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유혹하여 자신의 고국인 트로이로 갔다.

처녀 시절 헬레네에게는 수많은 구혼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누가 신랑으로 뽑히든 만일 헬레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모두 힘을 합쳐 그녀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했다. 이 약속을 상기한 메넬라오스 왕은 그리스의 전역에 헬레네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곧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한 연합군이 편성되었다.

연합군을 태운 전선은 해안선을 따라 트로이로 향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로 전쟁은 9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때 그리스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과 그리스군 중에서 가장 용맹한 장군인 아킬레우스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아킬레우스가 전리품으로 차지한 미인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겼던 것이다.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자신은 이제부터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 결과는 컸다. 트로이군에게 이름만으로도 공포감을 안겨 주었던 아킬레우스가 빠진 다음 전투에서 그리스군이 대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스군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써보았지만 아킬레우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정은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함으로써 바뀌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한 파트로클로스는 처음에는 적장 사르페돈을 죽이는 큰 전공을 세웠으나 그다음에 벌어진 전투에서 트로이 명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친구의 전사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분노했다. 그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아가멤논과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이 마련해준 무기로 중무장한 아킬레우스는 곧 벌어진 전투에서 트로이군의 용장 아이네이아스를 물리쳤고, 뒤이어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와 겨루게 되었다. 치열하게 맞붙은 끝에 아킬레우스가 던진 창이 헥토르의 목울대를 명중함으로써 승리는 아킬레우스의 것이 되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묶어 전차 뒤에 매달고는 전차에 올라타 채찍으로 말들을 때렸다. 트로이의 성벽 위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가 아킬레우스의 행태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목 놓아 울었다. 죽은 헥토르는 두 사람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튿날 밤, 아킬레우스의 군진에 한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장군, 부디 내 아들의 시신을 돌려주시오.”

노인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였던 것이다. 프리아모스 왕이 말했다.

“장군, 부디 당신의 아버지를 생각해주시오. 죽을 날이 내일인지 모레인지 모르는 노인들은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려움을 견디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는 어려움을 견딜 아무런 낙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 ‘트로이의 꽃’이라고 불리던 아들 둘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지요.”

순간, 아킬레우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그에게 프리아모스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그에게 헥토르는 원수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진영에 숨어들어온, 왕의 신분으로 적장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는 프리아모스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그 또한 어떤 사람의 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백발과 흰 수염이 가득한 프리아모스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왕께서 바라시는 바대로 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혼자이다. 나는 너가 아니고, 너는 나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나 아닌 것과 구별되어 있고, 모든 일은 그에 기초하여 벌어진다. 나와 나 아닌 것을 불교는 십이처(十二處)로 분별한다. 나에 속하는 것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남에 속하는 것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이 분별에 기초하여 나와 나 아닌 것과의 경쟁과 협력이 전개된다.

부모와 자식 간은 그 협력의 맨 첫 번째 단계이다. 이 단계는 부부·형제·친구·동료 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든 협력 관계는 언제든 나는 나로 돌아가 깨어질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의견이 갈리는 때가 있다. 부부는 무촌이라지만 부부 또한 의견이 갈리는 때가 있다. 그때 협력 관계는 깨어져 경쟁 관계로 바뀐다. 심한 경우 경쟁은 격화되어 투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투쟁의 가장 극렬한 상태는 협력 관계인 아군과 또 다른 협력 관계인 적군 사이의 전투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나는 나의 협력자들과 함께 우리 그룹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찌르고 죽이게 된다.

그러나 참혹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을. 인간은 누구나 본성으로서는 부처님이라는 것을. 그 본성에서 볼 때 인간은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존재이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접하고 그의 입장을 헤아렸다. ‘상황은 우리가 전투를 벌이도록 몰아붙인다. 이것이 사람살이의 한 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이자 아들이며,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한다. 이것이 사람살이의 또 다른 한 면이다’인 것이다.

삶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져 간다. 이 치열한 트로이 전투 속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자신의 본성을 돌아보아야 한다. 깊은 인간성을 회복해야 하고, 그 인간성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아야 한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 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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