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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연희 작가

기자명 김영욱

불국토, 금속으로 빚다

▲ 김연희, ‘삼신불 불감’, 적동과 순금박, 17.3×14.0×5.5㎝ (좌측부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하늘은 만월(滿月)을 단장시켜 사방불을 마련했고, 땅은 명호(明毫)를 솟구어 하룻밤에 열렸도다.
교묘한 솜씨로 다시금 만불을 새겼으니, 부처님의 풍도를 삼재(三才, 하늘·땅·인간)에 두루 퍼지게 하리.

타출로 입체적 공간 표현
‘쓰임’을 위한 공예 지향

‘삼국유사’ 제3권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의 마지막에 적힌 찬시(讚詩)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742~764)이 당나라 대종황제(代宗皇帝)가 불교를 숭상한다는 말을 듣고 만불산(萬佛山)을 조성토록 공장에게 명하였다. 침단목(沈檀木)을 새겨 만든 만불산에는 온갖 산천의 형상 안에 만불을 모셔놓았는데 그 정교한 솜씨에 대종이 탄복했다고 전한다. 이는 전각형(殿閣形) 불감(佛龕) 제작을 방증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불감은 불상(佛像)을 봉안하는 감실(龕室)을 말한다. 승려와 불자들이 구도와 수행에 정진할 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늘이 만들었다고 하는 정교하고 교묘한 불감 제작 기술은 1000여년의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김연희는 지금의 금속공예기법으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이다. 부안으로 갔다. 때마침 만물이 소생한다는 입춘(立春)이다. 산과 나무에 쌓인 하얀 눈이 촉촉한 흔적만을 남기며 사라져가는 풍광이 시간 때우기는 그만이다. 즐거운 눈요기가 산수에서 건물로 채 옮겨갈 무렵 버스는 부안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합실 난로 열기에 몸을 맡긴지 몇 분 뒤, 터미널에 마중 나온 작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첫인상처럼 아담한 작업실이다. 화로 벽에 가지런하게 정리된 끌과 정(綎), 책상 위에 놓인 불상과 불감 도면 등에서 꼼꼼하여 빈틈없는 작가의 성향이 읽혀졌다. 작업에 필요한 크기와 용도를 고려하여 자신이 직접 정을 만들어 사용한다고 하니 그 내공 또한 단단함을 짐작케 했다. 라디에이터의 온기가 작업실의 한기를 누그러뜨릴 즈음, 적동(赤銅)으로 제작한 삼신불(三身佛) 불감이 선보였다.

다이포밍(die forming. 틀을 이용해서 금속판을 입체적으로 성형하는 기법)한 세 불감의 문은 문양을 투각하고 2중 구조로 제작되었다. 문고리를 잡아 천천히 문을 여니 화려한 광배 앞에 앉은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은사 금동불감의 돋을새김 기법에 착안하여 만든 불상들은 주물(鑄物)보다 가볍고 유려한 선의 묘사를 보여준다. 돋을새김이란 금속판을 부조적인 무늬나 입체감을 두드려서 표현하는 타출(打出)기법을 말한다. 작가는 금속의 앞과 뒤를 번갈아가며 정과 망치로 두드려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가는 매력에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돋을새김은 작가의 주력(主力)이다. 끊임없는 인고(忍苦)의 두드림이다. 하여 “금속을 빚는 작업”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오래 두드려 빚는다. 끊임없이 두드려가는 무량겁(無量劫)의 시간은 잘 빚어간다는 생각 하나이며, 그 생각은 곧 무량겁의 시간이다. 그 시간과 생각을 반영하듯 작가의 꼼꼼한 기법에 의한 작품의 곰곰한 면모는 정교해서 탁월하다.

김연희는 특히 ‘영감’과 ‘테크닉’의 두 요소를 발전시켜나가는 작가이다. 한국전통문화대 학부 시절을 거쳐 국민대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여러 선생님들에게 사사한 다양한 금속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아직 신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규장각의 능화판이나 간송미술관 족자고리못 제작 등을 꾸준히 의뢰받고 있다는 점도 작가의 탄탄한 기량을 증명한다.

지금 작가는 전통문화의 복원과 금속공예의 창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쓰임’의 공예와 맞닥뜨렸다.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탈(脫)’의 노선은 아직 걷지 않겠다고 한다. 일상에서의 ‘쓰임’을 위한 공예가 작가의 오롯한 이정표이다. 지금 제작하는 불감은 그 여정의 첫 걸음이자, 자신의 작업관을 다져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쓰임을 위한 공예 작가의 다음 행보가 어떤 발걸음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김영욱 zodiacknight@hanmail.net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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