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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부처님과 중생세계

기자명 이제열

부처님과 법에 대한 믿음 없이 깨달음은 없다

“부처님은 위신력으로 여러 개 일산을 합쳐 하나가 되도록 하시더니 그것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셨다. 그러자 세계의 깊고 넓은 모습들이 일산 가운데 나타나고 여러 산과 바다와 강과 개천과 샘물과 달과 별과 여러 신들의 세계가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시방에 계신 여러 부처님과 그 부처님들이 법문하시는 모습도 일산 가운데에 나타났다. 모든 대중은 일찍이 보지 못한 부처님의 거룩한 신통력에 부처님의 존안을 우러르며 눈을 잠깐 사이도 돌리지 않았다.”

신심은 진리 완성의 선결조건
공덕·복락도 신심 있어야 가능
누구든 깨달으면 그 세계 이해
남방의 ‘무불시대’와는 큰 차이

지난 호에서 밝힌 것처럼 장자는 부처님을 상징하고, 보적과 친구들은 뭇 중생들을 상징하며, 부처님께 올린 일산은 신심을 상징한다. 대승의 가르침에서 진리를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선행되어야 할 항목으로 부처님과 교법을 향한 신심을 꼽는다. 부처님과 교법에 대한 신심이 없으면 어떠한 공덕과 복락도 기대할 수 없다. 일체의 선근과 삼매와 깨달음이 모두 신심을 통해 성취된다. 보적 장자의 일산은 바로 이러한 신심의 징표라 할 수 있다.

이제 부처님은 위신력으로 보적 일행이 바친 500개의 일산을 하나로 합친다. 이는 모든 중생의 신심은 결국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하나로 회향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수많은 중생이 저마다 다르게 신심을 일으켰다 해도 마침내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한 곳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의 깨달음은 부처님 한 분만이 누리는 경지가 아니다. 삼천대천세계, 즉 온 우주를 모두 덮고 여기에 존재하는 일체의 만상들을 드러내 보인다.

중생의 신심과 부처의 깨달음과 일체의 세계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이는 ‘원각경’에 ‘부처님이 성취한 원각은 일체의 부처님들과 모든 중생과 온갖 세계가 둘이 아니며, 이로써 정토를 나타낸다’는 말씀과 일치한다.

500개의 일산은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하나로 돌아가고, 그 깨달음은 다시 불계와 중생계가 되어 평등한 세상을 이룬다. 모든 부처님과 그 부처님들이 누리고 있는 공덕이 전부 중생이 사는 이 땅에서 실현된다. 여기에서는 부처님이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한다. 끊임없이 법을 설하면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중생 구제의 일을 멈추지 않는다. 또한 부처님은 한 국토 한 시대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에는 한량없이 많은 국토가 있고,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시면서, 한량없는 많은 법문을 설한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모든 이치가 중생의 마음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본성을 밝힌다면 부처님의 일들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응당 불자라고 한다면 대승경전의 이 같은 말씀을 의심 없이 수용해야 한다.

같은 불교라도 남방의 소승교법은 대승과 같은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부처와 중생과 세계의 관계를 별개로 보고 있으며 질적으로도 다르게 여긴다. 부처님은 한 시대 한 분 밖에 없고 현재는 무불시대(無佛時代)로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도 56억7000만년의 세월이 지나야 이 세상에 출현한다. 또한 소승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부처님 한 분의 몸과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한정 짓는다. 대승처럼 온 세계에 부처님의 깨달음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신심의 폭이 매우 얕고 견해가 좁을 수밖에 없다. 문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500개의 일산을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그 안에 무슨 수로 중생세계와 부처님세계가 나타날 수 있느냐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과대포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만 고차원의 비유와 상징으로써 ‘진실’을 알리려는 것이다. 혹 마음이 어리석은 중생 중에 본문의 구절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전혀 나쁠 것은 없다. 장자의 아들 보적과 부처님 사이에서 전개되는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거룩해지고 깨끗해지지 않는가?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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