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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종교’ 쇠퇴가 주는 교훈

기자명 이병두

지난 2월 중순 열흘 일정으로 이란(Iran) 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8년에 걸친 이라크와의 전쟁’ ‘40년 가깝게 이어져온 미국과 서방 세계의 경제 봉쇄’를 견디고 살아남아 지역 강자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저력의 바탕에 수천년 전부터 이어온 이란(페르시아) 민족의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도시와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처음에는 사우디 등 순니파 이슬람권 국가와는 달리 화려한 장식으로 눈길을 끄는 쉬아파 사원에 놀라고, 상식으로 알고 있던 바와 다른 젊은 남녀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놀랐을 뿐 아니라 페르세폴리스를 비롯한 키루스(Cyrus, 우리말 기독경에서는 고레스로 표기)  다리우스 대왕의 궁전 유적지를 돌아보며 새삼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힘과 함께 ‘제행무상’을 실감하였다. 무엇보다도 발상지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현실을 보면서 ‘국가 권력과 결탁한 종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가늠해보았다.

조로아스터교는 옛 페르시아 제국에서 시작해 국교로 대접받으며 인도 대륙에까지 퍼져나갔고, 중국에서도 배화교(拜火敎)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지만 이제 이란에는 3만5000명 그리고 인도에 10만 명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본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높은 곳에 시신을 놓아두어 새들이 살을 파먹게 하는 조장(鳥葬)을 하는데, 1960년대에 이란 정부에서 금지하기 전까지 이 전통(또는 풍습)은 수천년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그러나 교도들이 줄어들어, 이들에게는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야즈드(Yazd)의 조장 터와 장례 집행인 가족들이 살던 옛 마을 유적도 인도의 교도들이 보내온 후원금 덕분에 간신히 폐허상태를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제들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경전의 내용을 읽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암송해서 전할 뿐이라고 하니 가늘게 남아있는 조로아스터교의 숨길마저 끊어질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슬람의 침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조로아스터교는 이제 이란의 국교로서 통치권이나 사회, 정부기구의 한 부분이 되었다. (…) 조로아스터교 신앙과 성직 계층은 (성직의 계층화, 이단자의 색출과 탄압 등에서) 국가와의 연계로 인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국가 자체가 멸망했을 때는 국가와의 관계로 인해서 고통을 당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직 편제는 페르시아 제국과 함께 소멸되었다. 그리하여 아랍의 정복으로 페르시아 제국이 와해된 후, 조로아스터교는 심지어 이슬람 시대에 이란의 정치적·문화적 생활이 부활되었을 때 약간의 부흥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이란에서 이슬람의 진출에 대항하여 종교적 저항을 시도한 것은 권위를 행사하는 데만 익숙해 있던 정통 조로아스터교 성직자들이 아니라, 저항과 탄압에 단련되어 있던 조로아스터교 이단자들이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제국 단위의 고유한 정통성을 지닌 최초의 종교였다. 그러나 이란의 종교에 머물렀고, 이란 제국과 문화권 바깥의 어떤 인종에게도 심도 있는 메시지를 제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문명세계의 모든 고대 종교들이 처음에는 윤리적이었다가 점차 도시화·정치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종교적 의식을 유지시켜둔 정치체제에 따라 소멸해버렸던 측면에서 조로아스터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세기 최고의 중동·이슬람 역사 전문가로 인정받는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 교수의 해석이다.

한마디로, 정치적이고 영토적인 근거가 소멸된 후에도 자기 변신의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아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서 쇠퇴하고 미트라교와 마즈다크교 등 조로아스터교와 국가권력에게 이단으로 배척당하던 분파는 이란 바깥 세계로 그 영역을 넓혀 기독교와 이슬람의 극심한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대제국 페르시아의 ‘국가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쇠퇴가 주는 교훈이 무겁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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