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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땅에 전해진 ‘인왕 자비심’ 사리로 기억되다

  • 동행취재
  • 입력 2017.03.06 14:00
  • 수정 2017.03.08 16:06
  • 댓글 0

인왕 종정 사리봉안 스리랑카 대법회

▲ 묘선 스님이 인왕 종정 스님의 사리를 이운하고 있다. 여래종 총무원장 명안 스님과 도반 메타난다 스님이 뒤를 잇고 있다.

2017년 2월20일 오후 3시. 스리랑카 엘비티야 아무고다 지역 산간에 자리한 자야수마나라마야 사원에는 한국 여래종과 스리랑카 아마라푸라종 사부대중을 비롯해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 및 인근주민 등 1000여명이 운집했다.

인왕·담마누까 두 스님 인연
한·스 양국 불교교류로 확대

쇠잔해진 고찰 중창불사 지원
인재양성·포교확대 저변 다져

‘보시’ 근간한 동체대비 정신
스리랑카 불교중흥 토대 평가

“한국 인왕 스님의 자비심이 실론 땅에 닿으며 스리랑카 불자들의 마음은 더욱 더 청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청정심을 간직할 수 있었기에 수많은 번뇌를 깨뜨리며 해탈의 길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왕 스님을 기억하며 더욱 더 정진할 것입니다.”

스리랑카 불교 중흥에 30여년을 헌신한 여래종 종정 인왕 스님을 스리랑카 불교계는 그렇게 새겼다. 여래종 총무원장 명안 스님 또한 인왕 스님의 원력을 간단없이 이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 여래종 총무원장 명안 스님은 사드하르마그라 사원의 노인요양원을 방문했다.

“양국 불교 도반의 정으로 켜진 법등은 더욱 더 찬연하게 빛날 것입니다. 인왕 종정 스님의 사리 봉안은 한·스 불교교류의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강(江)은 처음부터 강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 개의 샘물이 만나면서 강은 시작되었다. 여래종과 아마라푸라종이 형성한 강 또한 1980년대 초반 이뤄진 인왕 스님과 담마누까 스님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당시 인왕 스님은 자리이타행을 토대로 한 보살 사상과 선 수행에 밝았고, 담마누까 스님은 교학에 정통했다. 스리랑카의 전통 승가는 크게 수행 승가와 교육 승가로 구축돼 있다. 아마라푸라는 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는 종파다. 그 종파의 부종정을 지낸 담마누까 스님은 경율론 삼장을 통달한 담마까띠까, 즉 대법사였다.

▲ 메타난다 스님은 스리랑카 불교계 최초로 사원 직속 노인요양원을 사원 안에 설립했다.

두 스님은 양국을 오가면서 스스로 갈무리 한 법을 나누며 정진을 거듭해 갔다. 인왕 스님은 대승불교권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남방불교 경전인 니까야에 담긴 부처님 말씀에 신선함을 느꼈고, 담마누까 스님은 유무정의 모든 존재들을 부처님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동체대비의 자비심을 발현하는 한국불교 실천사상에 매료됐다.

자연스럽게 스리랑카를 자주 방문하게 된 인왕 스님은 스리랑카 불교의 현실을 목도하기에 이른다.

스리랑카(Sri Lanka)는 산스크리트어다. 스리(Sri)는 ‘빛’이고, 랑카(LanKa)는 ‘땅’이기에 ‘빛나는 땅’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스리랑카 불교전래(BC 256) 이후 2000여년의 시공간 속에서 불교문화의 찬란한 꽃이 피었지만 영국 식민지 치하(1815년)로 들어서며 스리랑카 불교는 침체일로를 걷는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급속도로 성장해 갔는데 유럽에서 밀려들어 온 선교사들은 불교를 조롱하며 불자들을 노골적으로 개종시키려 했다.

▲ 사드하르마그라 사원에 건립된 ‘인왕 도서관’.

이때, 젊은 사미승 모홋띠왓떼 구나난다(Mohottiwatte Gunananda)가 기독교 성직자들을 상대로 대토론을 벌인다. 첫 번째는 1866년 우단비따에서, 두 번째는 1871년 감뽈라에서, 세 번째는 1873년 파나두라(Panadura)에서 열렸다. 최종 승자는 구나난다였고, 이는 ‘불교 승리’를 의미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사건을 일러 후학들은 ‘파나두라 논쟁’이라 이름했다. 불교부흥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1900년대에 접어들며 스리랑카 불교 지도자들은 불교부흥이 곧 국가의 부흥이라 인식하고 실천운동에 돌입한다. 교육기관을 통해 수많은 학자들이 배출됐고, 경전과 주석서가 편찬됐다. 1948년 스리랑카 독립을 기점으로 불교계는 재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전(內戰)으로 인해 불교중흥의 동력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고, 복원불사가 진행되어야 할 고찰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라푸라종 소속 사찰 또한 예외일 리 없었다. 담마누까 스님이 인왕 스님에게 간청했다.

“스리랑카 불교 중흥에 여래종이 나서달라!”

인왕 스님이 항상 대중에게 전한 메시지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 하면 분수껏 마음을 다해 나누어 주라! 그 공덕으로 구경열반과 해탈에 이를 것이다.”

▲ 축하 공연단이 환영식과 함께 인왕 종정 스님의 사리이운을 선도했다.

인왕 스님의 가르침은 부처님 말씀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아함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늘 내 손으로 청정한 보시를 하라.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이 일지 않아 그 마음이 바르고 곧다. 그 불제자는 흉하고 험한 중생들 사이에서도 아무 장애 없이 성인의 대열에 들고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담마누까 스님의 요청을 받은 인왕 스님은 숙고 끝에 스리랑카 불교 지원을 결정했다. ‘여래구도봉사단’을 주축으로 한 전 종도들은 인왕 스님의 뜻에 따라 물심양면 지원에 나섰다. 인왕 스님과 담마누까 두 스님 간의 왕래 차원을 넘은 한국과 스리랑카, 여래종과 아마라푸라종 사이의 본격적인 불교 교류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왕 스님이 스리랑카에 갈 때면 항상 두 제자가 뒤따랐다. 명안, 혜안 스님이다. 담마누까 스님이 인왕 스님을 맞이할 때면 늘 두 제자가 함께 했다. 메타난다, 소마난다 스님이다.

메타난다 스님은 승가대학이 설치된 사드하르마그라 사원을 맡고 있었는데 그 절은 파나두라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파나두라에 세워진 사찰들이 생생하게 펄떡여야 불법이 융성해질 것임을 통찰한 인왕 스님은 중창불사 원력을 세웠다.

▲ 인왕 종정 사리봉안 대법회에는 사부대중 1000여명이 운집했다.

쇠잔한 기운만 가득했던 도량에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섰다. 보리수 옆에 스리랑카 특유의 하얀 대탑도 세워졌다. 그리고 2000여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들어섰다. 1997년에 이르러 절의 사격은 물론 승가대학의 면모를 온전하게 갖췄다. 제2의 파나두라 논쟁 승리를 담보한 대작불사가 아닐 수 없다. ‘인왕 스님 사리 봉안 대법회’ 봉행 하루 전인 2월19일 이 절에도 인왕 스님의 사리가 봉안됐다.

어느 날, 소마난다 스님은 도반 메타난다 스님과의 연락마저 끊고 만행을 떠났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인왕 스님은 스리랑카 불교계의 인맥을 총동원해 찾아 나섰다. 엘비티야 아무고다 지역 중에서도 오지인 산간 지대의 허름한 산사에 소마난다 스님은 머물고 있었다. 놀라운 건, 궁핍한 생활의 힘겨움 속에서도 지역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인왕 스님은 창건에 버금가는 중창원력을 세우고 일심으로 지원했다. 2017년 2월20일 오늘, ‘석인왕 스님 기념관’ 낙성으로 중창불사는 회향됐고 대법회와 함께 사리가 봉안됐다.

▲ 마이트 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과 여래종 대중이 함께했다.

인왕 스님은 절 불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구호(救護) 불사에도 마음을 다했다.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스리랑카 불교계로 전해 내전(內戰)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옷이라도 제대로 입을 수 있도록 힘썼다. 때로는 단 몇 끼의 식사라도 할 수 있도록 정성을 보탰다. 또한 한국불교문화를 전하는 데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미륵반가사유상과 탄생불 등 한국 전통 양식의 불상을 스리랑카 사원에 봉안한 게 대표적이다. 한국 내 다문화가정과 노인복지, 노숙자 무료급식 등의 사업에 만전을 기하면서도 스리랑카에 남다른 정성을 쏟았던 인왕 스님이다. 

1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올린다. 인왕 스님이 전하고자 했던 동체대비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는 서원의 합장이다. 여래종 사부대중은 스리랑카 불교 중흥의 토대를 다지는 데 큰 힘을 더했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법하다.  한편 마이트 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담은 대통령 표창장을 명안, 묘선 스님과 최희숙, 이삼미 불자에게 수여했다.

스리랑카=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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