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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시종 편지에 회화적 언어로 답하다

▲ 고윤숙 작가는 3월14일까지 서울 스페이스선+에서 일곱 번째 개인전 ‘화석의 여름-김시종 시에 부처’를 개최한다.

‘돌인들 생각에 잠겨 꿈을 꾼다. 사실 내 가슴속엔 그 여름날 터져 나온 아우성이 운모 조각처럼 응어리졌다.’ (김시종 시 ‘화석의 여름’ 중에서)

고윤숙 작가, ‘화석의 여름’
3월14일까지 스페이스선+
시 11편 소재로 28점 작업
“함께 느끼고 사유했으면”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재일조선인 김시종 시인이 보낸 편지에 고윤숙 작가는 캠버스에 덧칠한 아크릴 바탕 위 부스러기가 주는 거친 질감과 붓이 지나간 흔적으로 답장했다. 고윤숙 작가는 3월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스페이스선+에서 일곱 번째 개인전 ‘화석의 여름-김시종 시에 부처’를 개최한다. 고윤숙 작가는 이번 전시에 28점을 출품했으며 모두 2008년 번역된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에 실린 ‘화석의 여름’ 시집 중에서 11편의 시를 소재로 작업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김시종 시인의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지만 병에 담아 띄운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고 작가는 지난해 10월 김시종 시인을 알게 됐고, 2017년 1월 그의 시에 관한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강연을 들은 후 매료됐다. 고 작가가 김시종의 시어를 회화적 언어로 소화시키고 생성하는 작업에 들어간 이유다. 김시종 작품을 누군가는 강의를 통해, 누군가는 비평으로 전해왔다면, 그는 회화를 통해 함께 느끼고 사유하기를 바란다. 이에 전시는 김시종의 작품 세계로 다가가려는 노력과 시도의 결정체와도 같다.

작품 ‘이카이노 다리’에서는 시인을 따라 이카이노의 다리를 건너고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바다에 잠긴 죽음들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당시 19살 소년이 이국땅에 내딛었던 발걸음의 무게가 전해진다. 작품 ‘번데기’는 나비가 되지 못하고 나뭇가지 그대로 말라 버린,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시인의 삶을 대변한다.

그러나 글과 그림이 선명하지 않다. 고 작가는 서양화를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동양화의 붓놀림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 왔다. 서양화가면서 각종 미술대전 서예·한문부문에서 입상한 서예가이기도 한 그는 아크릴붓이나 유화붓, 수채화붓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획의 운동을 동양화붓을 사용해 표현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 같은 특징은 살펴볼 수 있지만 그동안 봐왔던 선명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김시종 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김시종 시인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비롯해 시어로 수많은 상을 수상한 일본현대문학 대표작가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어를 모르는 ‘황국소년’이었다. 1945년 제주에서 해방을 맞았고, 1948년 4·3사건이 발생하자 살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일본에서 정착한 그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틈새인으로서 재일 1세대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시를 통해 웅변적으로 투영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를 자문하며 그 사색들을 시어로 기록했다.

고 작가 역시 스스로의 삶을 관조하며 ‘무엇’으로부터 해방인지를 되묻고, 어떻게 ‘소통의 언어’가 아닌 기존의 편견과 오랜 관습을 깨는 활달한 생명으로서의 ‘회화적 언어’를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고윤숙 작가는 “좋은 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 색채를 지니고 있다.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이름으로 지칭해 만들기 어려운 형상을 마주치게 한다”며 “시적인 세계뿐 아니라 그 시를 읽는 이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고 창작할 수 있는 ‘심연’의 장을 열어준 것에 대해 그림으로나마 김시종 시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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