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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근심도 비껴가는 여자의 따듯한 시선

  • 불서
  • 입력 2017.03.06 17:34
  • 수정 2017.03.06 20:50
  • 댓글 1

‘대책 없는 여자’ / 안숙경 지음 / 천우

▲ ‘대책 없는 여자’
현대인은 이솝 우화의 개미와 비슷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개미처럼 요즘 사람들도 밤늦도록 일한다. 내 집 마련하려면 주택자금을 꼬박꼬박 부어야 하고, 아이 대학등록금과 어학연수 비용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노년이 길어진 만큼 대책 마련도 젊어서부터 해야 한다. 여름 내내 노래를 부르다 겨울이 오면 음식을 구걸하다 굶어죽는 베짱이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숙경 시인은 어쩌면 베짱이에 가깝다. 다가올 일을 대비해 꼼꼼히 챙기고 차근차근 준비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을 찬탄하고 현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천성은 그의 시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소망이 뭐 특별한가요. 하루 한 끼 먹고도 배고픈 줄 모르고요. 원고지 몇 자 채우고 감동 먹고 낄낄거리다 숟가락 붙잡고 젓가락 두드리며 동백아가씨 한 곡조 때리면 그만이고요.…’(대책 없는 여자 1 일부)

특별한 목표를 세우고 반드시 이뤄야겠다는 야무진 다짐도 찾아보기 힘들다. 외려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인물보다 맨발의 자유를 꿈꾼다.

▲ 안숙경 시인
‘…저는 보살이고 싶고요, 황량한 존재의 아픔을 법(法)으로 나부끼는 바람이고 싶고요, 시인의 오해로 반죽하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개그로 버무려 웃겨주고 싶고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욕심을 버리고 싶고요, 이것저것 삿대질하며 싸움질하는 판을 어깨동무로 가고 싶고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아니라 함께 놀이마당 펼치고 싶고요.’(대책 없는 여자 41 일부)

사실 베짱이의 수명은 6~8개월이다. 추운 겨울이 두렵다고 대책만 세우다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을 수 있다.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걱정하며 지금을 희생한다면 그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또다시 먼 훗날을 걱정하며 괴로워하기 십상이다. 때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의 일상을 외면한 채 먼 미래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과 비슷하다. 대책 없는 여자, 안 시인은 현실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처님도 빈 발우로 돌아올 때도 있었거늘, 수많은 제자들이 모두가 모범생은 아니었거늘, 그래도 늘 살려지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수행하셨기에 오늘날 지구의 스승이 되었거늘, 끼 많은 몸뚱아리 두 팔 벌리고 맨발로 일심의 장단에 맞춰 합장의 춤을 추고 있거늘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를 노래하면서.’(대책 없는 여자 67 일부) 1만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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