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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세상 속에서[br]삶과 인간 이해하게 한 51편 산문

  • 불서
  • 입력 2017.03.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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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류시화 지음 / 더숲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강에서 목욕을 하려던 수행자가 물에 빠져 버둥대는 전갈을 보았다. 익사 직전의 전갈을 건저 물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전갈은 수행자의 손바닥에 꼬리의 독침을 박았다. 순간 극심한 고통에 본능적으로 전갈을 떼어낸 수행자는 또다시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전갈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도 물가에 닿기 전에 전갈이 독침을 찔렀고, 처음보다 더 강한 통증에 수행자 역시 손을 흔들었다. 전갈은 또다시 물에 빠졌다. 강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한 남자가 전갈을 내려놓으라고 소리쳤지만 수행자는 다시 전갈을 들어 올렸고, 다시금 이어진 전갈의 독침 공격에 심장까지 통증을 느끼면서도 끝내 전갈을 물가로 내보냈다.

수행자는 더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쓰러져 물 밖에 있던 남자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물가로 나온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전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켜본 남자가 왜 끝까지 전갈을 구했는지 묻자, 수행자는 “전갈의 본성은 찌르는 것이고, 위험에 처한 생명체를 구해주는 것은 수행자의 본성”이라며 “지금의 상황은 전갈과 나 둘 다 자신의 본성을 충실히 따랐던 것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본성에 따른 행위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며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인간의 본성도 그 자체로 완벽하다. 다만, 완벽한 그 본성을 조금은 끌어올리는 일도 가능하다. 획득하고, 소유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본능 차원에서 선하고, 나누고, 서로를 살리는 차원으로. 나아가 연민심을 느끼고, 인내하고, 관용하는 차원으로. 그 차원이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미 본성 속에 그런 긍정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안에는 전갈도 있고, 수행자도 있고, 방관자도 있다. 어느 본성에 먹이를 줄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인간의 본성은 연민과 폭력, 사랑과 증오, 이기심과 이타심, 무시와 존중 등 다양한 속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전갈로 세상과 타인을 찌를 수도 있고, 자기 안의 수행자로 인내하며 관용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관계없이 그 선택이 우리의 본성을 결정한다. 자기 안에 있는 낮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낮은 차원의 자신을 거듭 만날 것이고, 높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면 높은 차원의 자신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류시화의 신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이처럼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51편의 산문이 담겼다. ‘수도승과 전갈’을 비롯해 ‘마음이 담긴 길’ ‘퀘렌시아’ ‘찻잔 속 파리’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마음은 이야기 꾼’ 등의 글은 이미 페이스북에서 수만 명의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은바 있다. 미사여구를 최대한 배제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과정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짐 코벳 이야기’,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친 것은 지금 이 순간들이라는 ‘지금이 바로 그때’, 그리고 눈앞의 세상을 보지 않고 삶을 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혼이 고통 받는다는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더 심화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번째 화살 피하기’,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며 진정한 힐러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라는 ‘운디드 힐러’ 등 51편의 산문 하나하나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글들은 자기를 돌아보며 현재의 삶을 관조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도록 이끄는 안내자 역할도 하고 있다.

더불어 어느덧 공자가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던 나이 이순(耳順)에 이른 저자가 그동안의 삶에서 배운 것들을 담아낸 글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전하고 있다. 1만4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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