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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시대서 깨달음 일군 비구니들의 사자후

  • 불서
  • 입력 2017.03.06 17:42
  • 수정 2017.03.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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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가타-장로니게경’ /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테리가타-장로니게경’ /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지난해 11월, 초기불교시대 비구 260명의 오도송을 모은 ‘테라가타’를 최초로 완역해 관심을 집중시켰던 전재성 박사가 이번에는 ‘테리가타’ 완역본을 세상에 내놓았다. ‘테리가타’는 동시대 101명의 비구니가 읊은 시 552수로 구성된 남방 상좌부 경전이며 ‘장로니게경’으로도 불린다. 특히 전재성 박사는 6세기 대학자 담마빨라의 ‘테리가타의석’ 가운데 실려 있는 인연담과 주석을 옮기고 그에 대한 주석까지 달아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여성에게 가혹한 시대상 속에서도 당당하게 깨달음의 사자후를 토해냈던 이야기들의 이번 완역은, 이 시대 불교와 사회가 모색해야 할 지점을 암시하는 의미 있는 결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불교 시대 비구니 101명
오도송 모은 ‘테리가타’ 완역
여성에게 가혹했던 시대에도
당당했던 여성 위대성 드러내
불자에 발심·수행 점검 거울

‘테리가타’는 일찍이 수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의 역사가인 메가스테네스가 자신이 저술한 ‘인도지’(Indica)에서 “인도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거기에는 여성철학자들이 있어 남성철학자들과 겨루어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여성철학자들’은 ‘테리가타’의 주인공 혹은 그 후예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테리가타’가 종교계뿐 아니라 일반 사회 전반에 걸쳐 남성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의 위대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실제 ‘테리가타’에서는 현 시대보다 더 혹독했던 여성차별의 모진 상황에 굴하지 않고 발심해 끝내는 오도에 이른 여성수행자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장로니 끼사 고따미는 “시체가 버려진 곳 한가운데에서 아들의 살이 뜯어 먹힌 것조차 보았다. 가족을 잃고 모두에게 경멸당하고 남편이 죽었지만 나는 불사를 얻었다”며 “불사로 이끄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나는 닦았다. 열반이 실현되었으니, 가르침의 거울로 보았다”고 외쳤다.

남성과 다르지 않은 출가자로서 수행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장로 비자야는 “마음의 적멸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자재를 얻지 못하고, 네 번인지 다섯 번인지 나는 승원을 뛰쳐나왔었다”고 토로한 뒤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면서는 “희열과 행복이 나의 몸에 스며들었다. 어둠의 다발이 부수어졌다”며 깨달음의 환희를 말했다. 장로 웃따마도 선정의 몰입과 해탈의 순간을 “이레 동안 가부좌를 틀고 행복에 충만하여 앉아있었다. 어둠의 다발이 부서지니, 여드레 째 나는 다리를 폈다”고 노래했다. ‘테리가타’는 단지 깨달음을 적시하는 데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세계를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들로 표현해냄으로써 우리의 예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 우리시대 최고의 역경인(譯經人)으로 꼽히는 전재성 박사가 지난해 ‘테라가타’에 이어 초기불교시대 비구니 101명의 오도송을 모은 ‘테리가타’를 완역했다.

초기불교시대 여성수행자들은 해탈의 경지를 발원한 후대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장로 쑤메다는 “시작도 알 수 없는 때부터의 눈물과 젖과 피, 윤회를 새기십시오. 뭇삶들이 윤회하면서 쌓아온 해골들을 새겨보십시오” “눈물과 젖은 피와 견주어지는 사대해(四大海)를 새기십시오. 한 우주기 동안 쌓아온 해골이 비뿔라 산과 같다는 것을 새기십시오”라며 자비에 입각한 올바른 사유를 통해 열반의 세계로 향할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테리가타’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현재 불자들에게 게으름 없는 정진과 열반에의 발심을 북돋워주고 있다. 더욱이 당시 여성들이 당면해야 했던 처절한 고통마저 열반으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는 소소한 일상사조차 대변혁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불자들은 ‘테리가타’를 발심·수행의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거울로 여겨왔다. 수천년 전 여성수행자들과 그들의 말이 기억되고 전승됐던, 어쩌면 불가사의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앞에 현실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재성 박사는 “세계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수행자의 오도송으로서 여성 개인의 운명을 통합하여 시가 형태로 집대성한 작품이자 인류역사에서 본격적인 서정시 도래를 알리는 최초의 여류시인들의 작품”이라며 “여인만이 겪어야 하는 특수한 고통에 대한 감내와 여성적 삶의 진솔함, 수행적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초월적 삶의 심오성을 보여주는 경전”이라고 말했다. 4만원.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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