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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손녀와 태극기 할아버지

기자명 가섭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3.13 13:13
  • 수정 2017.03.13 13:50
  • 댓글 1

결이 달랐던 낮밤의 광장
태극기 본래 의미 되찾고
이제 화쟁으로 통합할 때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은 뜨거웠다. 낮과 밤으로 나뉜 주장들은 처음엔 결이 달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격이 달라졌다. 한낮의 광장은 주장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관계없는 상징물들이 넘실대고 저주의 소리가 가득했다. 선동을 위한 거짓말들이 가득한 그곳은 우리나라 역사의 변곡점마다 늘 있어왔던 광경들이고, 이를 잘 극복한 역사라 말한다. 하지만 이번은 다른 것 같다. 태극기를 앞세운 모습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던 축제의 장이 아니라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파멸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다.

“선열들이 목 타게 기다렸던 그날이 왔을 때, 이 강토는 태극기의 물결이었다. 온 산하는 감격의 눈물바다였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행길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덩실덩실 춤추며 뒹굴었다. … 어제의 불화가 오늘의 화합이 되고, 어제의 증오가 오늘은 우애로 변했다. 모든 슬픔, 모든 분노,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싹 흘러갔다.”

김병걸 자서전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의 일부다. 36년간의 핍박받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던 모멸의 시간을 끝내고 해방을 맞는 감격의 순간들을 태극기와 함께 절절하게 묘사했다. 해방은 물론이요 광복을 맞는 순간까지 어려운 시절에 버팀목이 되고 조국의 내일을 기약하며 인고의 세월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이 태극기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평소 잊고 있던 태극기도 애국가와 함께 마주하는 순간에 콧등이 시큰하다. 애국자라 선언하지 않아도 한번쯤은 느껴봤을 그런 벅참이 우리 가슴에 있다. 우리 안에 내재된 태극기의 힘이다.

올해 삼일절은 100주년을 두 해 앞둔 해였다. 그러나 여기저기 태극기 물결을 보고 있자니,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굳건했던 민족의 미래를 꿈꾸었을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민망하다. 삼일운동의 발생지라는 곳에서 독립을 외쳤던 그 때의 태극기와 같으나 의미는 다른 태극기가 넘쳐났고 심지어 다른 나라 국기가 넘실거렸다.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의 상징이며 가치표현이 누군가의 정치적 지지나 개인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쓰인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 특히 법률을 전공하고 평생을 헌법수호를 위해 종사했다던 이들과 국민을 대변한다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어깨에 두르고 나온 태극기망토는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들다. 온갖 위선과 거짓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아 형용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든다.

국기인 태극기는 국민정신을 상징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대표하는 숭고한 표현이다. 또한 화합과 함께 우리들의 생명과 인권을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가짜 애국자를 포장하는데 쓰인다면 그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된다. 앞으로도 태극기의 의미가 왜곡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우리는 우리를 하나로 통합하고 화합하게 만들 중요한 매개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선다. 이렇게 쉽게 오염되고 잃어버리기엔 그간 지켜온 역사가 그리고 지켜낸 시간들이 가볍고 간단치가 않다. 

▲ 가섭 스님
조계종 포교부장
얼마 전에 한 장의 그림으로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느 정치인이 스케치한 그 그림은 광장에서 마주한 손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손녀의 손에는 촛불, 할아버지 어깨엔 태극기가 꼽혀있다. 마주한 손녀와 할아버지는 서로 일찍 집에 들어오라는 인사와 함께 손녀는 손장갑을, 할아버지는 목도리를 서로에게 전해준다. 서로를 배려하고 적정하는 눈빛은 우리들의 일상의 모습 그대로다.

이제 갈등을 접고 화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가 담겨있는 태극기의 의미와 쓰임이 회복될 때 가능하다. 그래야 손녀와 할아버지가 이제 서로의 광장을 넘어 하나 된 대한국민으로 만날 수 있으라 생각한다.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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