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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산 문현동 무문홍법사

문현주민 희로애락 함께한 ‘문 없는’ 열린도량

▲ 무문홍법사는 2005년 관음종 직할사찰로 등록한 이후 자비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판자촌이 다닥다닥 밀집한 부산 문현동 산복도로 사이로 기와지붕의 법당이 보인다. 큰길에서는 한참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막상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법당과 마을은 무척 가깝다. 주민들이 절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만 들어도 몇 시인지 알아차릴 정도다. “어머니가 여기에서 기도한 덕분에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나이 지긋한 거사님들의 이야기도 골목을 다니다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12년 전 새롭게 부임해 온 주지 호명 스님은 마을과 함께해 온 도량의 역사를 바탕으로 주민들을 위한 도량으로 산 문을 활짝 개방했다. 심지어 사명도 ‘문이 없는 절’이라는 의미로 ‘무문(無門)’을 붙였다. 부산 문현동 팔성산 자락에 위치한 무문홍법사다.

1929년 개산한 마을암자서
12년 전 관음종 직할 등록
나눔활동에 적극 나서는 등
지역발전 견인차 역할 담당

무문홍법사는 1929년 창건주 공덕장 보살에 의해 산문을 연 길상암을 전신으로 한다. 지난 2005년 대한불교관음종 직할사찰로 등록된 이후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 회주, 관음종 감찰부장 호명 스님이 주지를 맡아 관음종 부산종무원장을 겸하고 있다. 관음종에서 도량을 인수할 당시만해도 이곳은 폐사 직전이었다. 주지스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요사에는 모포 한 장 없었고, 종무소에는 낡은 신도카드 31장이 전부였다. 이 사실만 봐도 얼마나 쇠락의 길을 걸어왔는지 짐작할 만 했다.

호명 스님은 부임하자마자 새벽과 사시에는 정성껏 예불을 올리고 도량을 정비하는 한편, 오후부터 저녁 무렵까지는 마을 곳곳을 돌며 주민들을 만났다. 도량의 역사는 주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2대, 3대에 걸쳐 절에 다녔다는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산복도로에 위치한 판자촌에 살다 보니 직장을 가진 이라 해도 일용직이거나 비정규직, 공사장 인부 등 힘든 일을 하기에 법회날짜에 맞춰 절에 갈 상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을 위해 스님은 이른 아침과 저녁에도 사중에서 개별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출퇴근길 사찰을 참배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발길을 끊었던 주민들의 참배가 이어지면서 무문홍법사는 자연스럽게 마을 수호공간이나 다름없었던 옛 명성을 되찾았다.

특히 무문홍법사는 마을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세밀하게 점검하며 자비행에 앞장섰다. 2005년 관음종에서 직할 운영을 시작한 이듬해부터 매년 두 차례 부처님오신날에는 쌀과 여름용 이불, 동짓날에는 쌀과 팥죽을 부산 남구청과 용호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독거어르신들과 극빈층 주민들을 위해 회향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보시한 쌀만 1만2000kg에 달한다.

무문홍법사가 위치한 문현3동 주민의 80%가 저소득층이고 이 가운데 77가구는 독거어르신, 60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기에 해마다 나눔을 거듭해도 모자란다는 것이 주지 호명 스님의 설명이다. 동지팥죽의 경우에는 지역 경로당 11곳과 남부경찰서 소속 전경 및 직원 700여명에게도 전달하면서 해마다 동지 전날이면 하루 종일 가마솥에서 2000인 분의 팥죽을 쑤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같은 나눔은 무문홍법사 신행단체인 지장회를 비롯한 신도들의 십시일반 동참과 자원봉사로 전개되고 있다. 관음종사회복지재단에서도 후원금을 더하는 등 나눔의 가치를 종단 차원으로도 확장했다. 

▲ 무문홍법사는 문현동 산복도로 꼭대기 마을과 맞닿은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 주민들을 위해 펼치는 자비행은 연간 두 차례 전달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무문홍법사는 사찰 부지 6600㎡ 가운데 1320㎡를 부산 남구체육회에 무상 대여해 주민들을 위한 생활체육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찰 입구도 세 곳으로 확장해 등산객들이 무문홍법사를 통해 팔성산 등산로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하 200m의 암반수를 끌어 올려 용왕당을 조성하고 식수로 공급하고 있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무문홍법사는 주민들을 위한 나눔을 전개하는 한편 대웅전 증축, 삼성각 신축, 요사채 및 공양간 조성, 해수관세음보살 점안 등 소리 없이 불사에도 앞장섰다. 이와 함께 관음종 부산종무원으로 부산지역 관음종 사찰의 소통창구가 되는 한편, 일한불교문화교류협의회 대표단 초청행사를 정기적으로 마련해 한국과 일본불교계의 우호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어느덧 780여 가구의 신도가 등록된 무문홍법사는 지역불교 발전을 위한 견인차 역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주민과 함께하며 재개발 위기 극복할 것”

무문홍법사 주지 호명 스님

 

 
“재개발로 인해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사찰을 넘어서 고향이자 어머니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 도량을 찾는 단 한 사람의 신도를 위해서라도 항상 열린도량의 가치를 이어갈 겁니다.”

무문홍법사 주지 호명<사진> 스님은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고충을 앓고 있다”며 “사찰 앞 부지에 들어설 고층아파트로 인해 종일 따뜻한 햇살이 비치던 도량은 곧 일조권 침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대웅전 바로 앞까지 계획된 도로 탓에 법당 이전을 추진하려 하지만 관련 단체와의 협의가 쉽지 않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사찰 이전까지 고려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도 스님은 “마을 사찰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스님은 “재개발로 인해 마을을 떠나게 된 불자들이 법회 날이 되면 먼 길을 마다않고 이곳까지 찾아온다. 비록 옛 집은 사라지고 마을의 모습도 바뀌었지만 그들에게는 이 도량이 고향이고 어머니와 다름이 없다”며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사찰의 가치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스님은 마을과 사찰이 하나가 되는 상생을 강조했다. “사중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종무원이나 공양주를 두지 않고 있다”고 밝힌 스님은 “부수적인 비용을 아껴서라도 부처님오신날과 동지 때마다 더 많은 이웃을 위해 자비나눔을 펼치고자 한다”며 “신도들도 항상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정성을 더하며 자원봉사를 실천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신도들은 스님과의 상담을 통해 수행 방법을 택하고 기도를 실천한다. 대웅전 법당에 작은 스탠드를 켜고 사경을 하거나 1080배 정진을 하는 불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 “수행을 기반으로 기도를 해 나가면 불자들이 먼저 불교의 가치에 눈뜨게 된다”며 “재개발로 이 지역에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주민의 입장에서 포교와 나눔을 펼치고 수행을 통해 행복한 삶으로 안내하는 도량의 가치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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