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7.27 목 13:37
> 연재 | 채문기의 길따라 절에 들다
51. 스리랑카 성지순례①-캘러니야사원찬탄의 소리 ‘사두’ 가득한 사원서 나를 비워 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penshoot@beop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3.13  16:06: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200여명의 사부대중이 '사두'를 읊조리며 가사불사에 동참하고 있다.

머리에서 가장 먼 신체 부위를 감싸고 있던 신발을 벗고 캘러니야(Kelaniya) 사원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순간, 살갗에 닿은 모래 한 알, 흙 한 줌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부처님 스리랑카 세번째 방문
캘러니야 도량엔 2500년 숨결
맨발로 사원 들어선 순간
성지가 품은 성스러움 느껴져

그늘진 공간에 자리한 사람들
세계 최초 경전 조성 나라답게
독경 삼매에 들며 불심 다져


한국 산사를 순례하다 보면 일주문에서 ‘입차문래 막존지혜(入此門來 莫存知解)’라는 문구가 새겨진 주련을 볼 때가 있다. ‘이 문에 들어서는 사람은 알음알이를 내려 놓아라!’ 집착과 아만으로 채워 진 ‘나’를 세워놓고 가름한 그 모든 상식이나 지식일랑 문 밖에 던져버리라는 메시지다. 신발을 내 던진 찰나 나를 내려놓은 듯하다. 이국 산사에서의 낯설음이 빚은 착각이라 해도 좋다.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싶은 느낌이다. 맨발, 그건 머리가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비움의 시작일지 모른다.

두 손에 물항아리 받든 우바새, 우바이. 보리수 주위를 두 세 바퀴 돌고는 6개의 계단을 올라 불상 앞에 항아리를 내려놓는다. 그 물은 언뜻 보아도 1000년에 이른 듯한 거대한 보리수로 전해진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항아리에 담겨 누군가의 두 손에 받쳐지며 정화수(井華水)로 변하니, 저 보리수는 불자들의 정성이 담긴 정화수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터다.

   
▲ 캘러니야 사원의 보리수는 불자들의 정한수로 1000여년의 생을 이어가고 있다.

부처님께서 정각에 이른 것은 기원 전 535년의 어느 날, 밤에서 아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에는 ‘아루나’가 빛날 때였다. 아루나는 ‘붉은 기운을 머금은 별’이라는 의미와 함께 새벽과 태양의 뜻도 함축돼 있다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 붉은 태양빛을 머금을 수 있는 때는 밤에서 아침으로 바뀌는 찰나, 즉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이다. 한역 경전에서 ‘샛별이 뜰 때’라 한 연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별과 함께 성도 순간을 지켜 본 나무 한 그루 있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다. 저 보리수에 정화수를 올리는 건 ‘부처님 법 받들며 부처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서원이며 ‘무지를 알고 무지를 깨어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정진의 발원이기도 할 것이다. 

   
▲ 캘러니야를 방문하신 부처님은 하얀 의자에 앉아 법을 설했다고 한다.

부처님은 성도 직후 부다가야에서 200Km를 걸어 갠지스 강 인근의 바라나시 사슴 동산(녹야원) 이르러 다섯 명의 사하두(sadhu. 수행자)를 상대로 일성을 터트리셨다.

‘고통과 쾌락의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서 수행하라. 나(여래)는 중도에 의해서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깨달음과 적멸에 이르렀다!’

중도(中道)를 전한 부처님은 이어서 팔정도와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다. 당시의 일대사 사건을 후세 사람들은 ‘녹야원 초전법륜’으로 기록하고 있다. 9개월 후 부처님은 스리랑카로 걸음 하신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인물은 아소카왕. 즉위 7년 만에 불교에 귀의한 그는 BC 248년 자신의 아들 마힌다(Ma hinda)와 승려 4명을 스리랑카로 보내 불법을 전한다. 세계사가 기록해 놓은 스리랑카 불교전래사다. 하나, 스리랑카 사람들은 그렇게만 기억하고 있지 않다.

부처님께서 스리랑카에 세 번 오셨다고 믿는다. 첫 번째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지 9개월 되던 무렵 마히양가나(Mahiyan gana)에 당도하신 때다. 그 당시 부처님은 웨다족을 제도하고 이 땅에 오신 증표로 머리카락을 주셨다고 한다. 사원은 부처님 그 머리카락을 성스럽게 여겨 탑에 봉안했다. 마하세야 다고바(Mahaseya Dagoba)가 대표적이다.

   
▲ 하얀 의자를 안치 했다는 거탑. BC 3세기에 조성됐다.

두 번째 걸음하신 곳은 스리랑카 최북단 나가디바(Nagadeepa). 성도 하신 지 8년이 지난 때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왕좌(王座)를 놓고 마호다라가 동생인 추호다라와 싸우고 있었는데 설법을 통해 이를 해결하셨다고 전해진다. 부처님 설법에 감명받은 형제는 왕권다툼을 참회하는 뜻에서 황금 의자를 부처님께 보시하며 귀의한다. 그 장면이 나가디바 사원 법당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세 번째 방문하신 곳은 콜롬보 시내에서 10Km 거리의 캘러니야(Kelaniya). 이 곳 캘러니야 사원의 하얀 거탑이 자리한 곳에서 법을 설하셨다고 한다. 이미 두 번의 방문으로 부처님 명성은 두루 퍼졌을 터이니 캘러니야 대법회 때는 인산인해의 장관을 연출했을 터. 그 법회 장면, 보리수 옆 본당에 벽화로 남아 있다. 원래의 본당은 남인도의 침략으로 무너졌고 19세기에 새롭게 복원했다. 본당의 벽화는 복원 때 그려졌다.

   
▲ 독경 삼매에 든 우바새.

당시 대중은 부처님이 앉아서 법을 설할 수 있도록 하얀 의자를 드렸는데 그 의자를 본당 옆 하얀 거탑에 안치했다고 전해진다. 스리랑카 사원 입구에 나무로 만든 하얀 의자를 자주 보게 되는 건 이 때문인 듯하다. 하얀 의자에 앉아 법을 설한 대법회를 두고 ‘백좌 법회(白座 法會)’라 하기에 한국에서의 ‘백고좌 법회’와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별다른 관계는 없다. 백고좌 법회의 백좌는 100명의 고승을 위한 100개의 사자좌를 의미하는 ‘백좌(百座)’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스리랑카 방문설은 이곳 사람들이 지어 낸 전설일까? 2500여년 전 당시 인도와 스리랑카는 지금처럼 바닷길을 건너야 하는 육지와 섬이 아니라 하나의 대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인도와 스리랑카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22km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 불자들의 불심을 보여주는 꽃공양.

보리수에 정한수 전한 두 명의 우바새가 꽃 공양 올리더니 이내 본당 계단에 앉는다. 모녀일까? 두 사람은 가방에서 작은 책자 하나 꺼낸다. 그리고는 합장을 올린다. 경전이다.

부처님 입멸 후 긴 세월 동안 부처님 말씀은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다. 그러던 중 BC 1세기 알루위하라에서 부처님 말씀을 야자수 잎에 새겼다. 세계 최초의 필사본 경전이 스리랑카에서 조성된 것이다.

저 두 우바새뿐만이 아니다. 난간이나 회랑, 나무 등 그늘진 공간 속엔 어김없이 대중들이 들어 앉아 염주를 손에 쥔 채 경전을 보고 있다. 최초의 경전이 스리랑카에서 탄생했다는 자긍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온 마음을 내던진 불심(佛心)에서 발현된 자연스런 신행일 터다. 모녀로 보이는 두 우바새가 합장 한 채 이따금씩 무슨 말을 읊조린다.

“사두(sadhu)! 사두(sadhu)!”

은둔 수행자를 일러 ‘사두’라 하는데 스리랑카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직역하면 ‘제발’, ‘부디’. 법회 때 스님이 ‘이 땅에 자비를 내려 주소서!’라 선창하면 대중들은 ‘사두! 사두!’라 응답한다. 이 때는 ‘부디 그렇게 되도록 해 주시옵소서’ 의미의 사두다. 파나두라 대논쟁에서 불교가 기독교에 승리했을 때 대중들은 ‘사두’를 외쳤다. 환희와 감탄의 사두다.

   
▲ 여래종 신도들이 정한수를 들고 보리수 주변을 돌고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항리가 제 자리에 놓인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눴던 사람, 회랑이나 난간에서 경전을 보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두 모녀도 경전을 접고는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내 200여명의 대중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서 도량을 가득 채운다. 어느 틈엔가 그들 손에는 오렌지 빛 감도는 한 가닥의 긴 천이 들려 있다. 대중은 ‘사두, 사두’를 읊조리며 천을 받든 채 본당과 하얀 거탑을 돈다. 스리랑카의 ‘가사불사’ 의식이다. 의식을 마치면 사람들은 저 긴 천을 대탑 주위에 걸어 놓고, 사원은 그 천을 걷어 가사를 만든다.

불심은 관념이 아닌 신행으로 표출되고 다져진다는 사실을 캘러니야 사원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저 대중 속 누군가는 가사불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오늘의 찬란한 하루를 가름하며 ‘사두’를 읊조릴 것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피안에 이른 분입니다. 번뇌를 씻어버린 분이고 깨달은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사두! 사두!”

스리랑카=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채문기 상임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편집국 : 02-725-7014  |  광고문의 : 02-725-7013  |  구독신청 : 02-725-7010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등록일자 : 2005년 11월 29일  |  제호 : 법보신문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