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6. 쓰레기통 이야기-상

“불자와 제자가 괴로울 때만 찾아오니 쓰레기통입니다”

▲ 성운 대사가 ‘2012 아시아프로농구대회’에서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점프볼을 던지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쓰레기는 태워버려야 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들 수도 있습니다. 빈승도 나중에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를 가져오면 ‘불법이 있으면 방법이 있다’라는 대처방법을 그 사람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남들이 저에게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저만의 방식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분화로’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번뇌의 쓰레기가 생기면 바로 태워서 이 많은 번뇌 쓰레기들이 마음속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의 쓰레기는 태워버려야 하고 일부 변화구 역시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논란이나 시비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인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빈승은 스스로를 ‘빈승’이라고 부르는 것 이외에 자신이 ‘운수납자’라고 느끼고 있는데 빈승이 쓰레기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자신을 쓰레기통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에서 접촉했던 수많은 대중들 가운데 특히 신도와 출가 제자들이 좋은 일은 별로 저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어렵거나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불만이 있거나 망상으로 탐진치(貪瞋癡)가 생기면 다들 저한테 찾아와서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도 인간세상의 즐거움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번뇌에 휩싸일 때만 저를 찾아와서 저의 이 쓰레기통에 가득 쓰레기가 차도록 하는 것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쓰레기는 태워버려야 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들 수도 있습니다. 빈승도 나중에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를 가져오면 ‘불법이 있으면 방법이 있다’라는 대처방법을 그 사람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남들이 저에게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저의 방식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분화로’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번뇌의 쓰레기가 생기면 바로 태워서 이 많은 번뇌 쓰레기들이 마음속에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내려놓자(放下)”를 주장하니까 빈승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이래도 내려놓아야 하고 저래도 내려놓아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데 “내려놓아야 들 수 있다”는 가르침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행을 떠나려면 당신에게 여행 가방이 필요하고 가방이 필요할 때는 들고 나서야 합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면 여행 가방을 끌고 집안의 거실로 주방으로 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나중에는 빈승 자신이 감당하는 힘이 있고 용기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내려놓자”를 “자신 있게 내려놓거나 감당하자(提放自如)”고 바꾸었습니다. 인간세상의 모든 금전과 사물, 심지어 불법에서조차 필요로 할 때는 감당하고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내려놓아야지 그렇게 마음에 무겁게 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던지 참다보면 이 또한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번뇌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내려놓는 것’ 이외에 ‘참는 것’이 있습니다. 수십년전 불학원을 세우려고 할 때로 기억하는데 젊은 학인들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일부 학생 간에 언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언쟁이 자기들끼리 해결되지 않으니 참지 못한 누군가 담임선생님에게 말합니다. 담임선생님은 네가 조금만 참으라고 타이르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은 다시 훈육주임을 찾아갑니다. 네가 조금 참으라고 말하는 훈육주임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학생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원장이었던 빈승은 두 사람의 다툼에 누가 옳고 그른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네가 조금 참아, 조금 참으면 다 지나가게 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은 제 앞에서 “참아라, 참아라, 다들 저보고 참으라고 하지만 참는 것 밖에 없나요?”라면서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한 순간을 참으면 풍파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천지가 더 넓어지는데 다툼이나 따지고 드는 것을 처리하는 방법은 참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빈승은 생각했습니다.

옛날에 어느 집에서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17마리의 소를 남기셨고 유서에 재산을 세 형제가 나누어 가지는데 큰아들은 절반인 2분의 1을 갖고 둘째 아들이 3분의1을 가질 것이며 작은 아들은 9분의 1로 나누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17마리의 소를 2분의 1과 3분의 1과 9분의 1로 나누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어떻게 나누겠습니까? 그래서 세 아들은 매일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어르신이 이를 보고 자신이 기르고 있던 한 마리의 소를 주면서 싸우지 말고 잘 나누어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있던 소 17마리에 이웃집 어르신의 한 마리가 더해지니 전부 18마리가 되어서 큰아들은 2분의 1인 9마리의 소를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3분의 1인 여섯 마리의 소를 받게 되었고 작은 아들은 9분의 1인 2마리의 소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세 형제는 자신들이 받은 9마리와 6마리, 2마리를 다 합치니 부친이 자신들에게 남겨주신 17마리의 소가 남지도 적지도 않게 마침맞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한 마리의 소를 옆집 어르신에게 다시 돌려드렸습니다. 어르신은 조금의 손실도 없었고 도리어 세 형제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렇듯 재산을 나누는 문제에 대해서 빈승 역시 여러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불자는 신앙에 있어서 지역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어느 신도 집에 형제 다섯 명이 재산을 나누면서 분쟁이 생겼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에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50년 전 빈승이 젊었을 때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산을 나누는 것에 대해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특히 다섯 형제가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었고 보는 시각도 달라서 모두들 나름의 이유를 고집하고 있는데 재산을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저는 우스갯소리처럼 당신들의 싸움에 끝이 없으니 가장 공평한 방법은 당신들 집에 있는 모든 탁자를 톱으로 다섯 토막으로 잘라서 한 사람이 한 조각씩 갖고 접시와 밥그릇도 조각조각 깨서 하나씩 나눠 갖고 집도 부셔서 한 무더기씩 갖는 것이 가장 공평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람들은 재산을 나눔에 있어서 너무 따질 수 없고 손해를 보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의란지역에서 포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였고 불자들도 마치 군자(君子)의 교류처럼 담담한 물 같아서 별다른 사고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가오슝으로 왔는데 가오슝은 아주 열정적인 지역이었고 가오슝불교당(高雄佛?堂)에 지역 관념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링야구(?雅區)의 신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중에 저의 관계로 인해서 바로 옆 신싱구(新興區)에서 많은 신도들이 와서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일이 지나고 옌청구(鹽?區)의 신도들도 와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법당에서 수시로 이건 우리 구에서 한 거고 저건 저쪽 구에서 했다고 다들 따지기를 자주 했고 심지어는 이건 가오슝(高雄) 패고 저건 타이난(台南) 패라고 하고 또는 펑후(澎湖) 패라고 하면서 서로 편을 가른 채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모든 대중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따지겠다면 저도 여러분들 지역 사람이 아니니 내일은 저도 여기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부처님은 인도사람이니 인도로 돌아가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지역적 분쟁이나 시비가 실제로 쓸모 없다는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여러 지역 사람들이 불교당에 모여들었지만 출신지역이 다르다고 하나 모두가 같은 신앙의 불제자이기에 다시는 이러한 논쟁이 없었습니다.

40~50년 전의 대만은 사회 경제가 아직 발전하지 못했기에 학교를 졸업한 일부 청년 학생들이 직업을 찾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부 신도들이 직업을 소개해 주기를 바라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빈승은 비록 공상업을 하는 신도가 적지 않았지만 소개를 했다고 바로 그 사람의 신뢰를 얻거나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청년을 위해 적당한 기회인연을 찾아서 직업을 찾아준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한 달, 두 달 심지어는 석 달이 걸려서 적합한 직업을 어렵게 찾고서 면접을 가보라고 하면 자신이 이미 다른데서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몇 개월에 걸친 저의 수고가 쏟아진 물처럼 된 것보다도 일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신뢰를 잃은 것이 저는 가장 민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많은 쓰레기 난제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다보니 나중에는 누군가 저에게 직업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아는 사람 소개나 소개서를 별로 미더워하지 않으니 신문에 있는 작은 광고라도 적합한 것이 있으면 그 책임자를 찾아가서 2~3개월의 수습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부담이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직업을 찾게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